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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증산도 도전11:248
증산도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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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불선[儒.佛.仙]철학과 종교

성경과 예수의 진실이 무너졌다!

 

 

★ 성경(Bible)은 언제, 어떻게 쓰여졌는가?

★ 성경(Bible)의 제작 과정 및 초창기 문서들

★ 성경(Bible)의 역사적 한계와 문제점

★ 예수의 진짜 생일은 12월 25일이 아니다.

★ 기독교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역사 과정

★ 성경(Bible)의 역사적 오류와 모순들

★ 예수 어머니 마리아(Maria)는 동정녀 아니였다!

1) 페르시아의 미트라(기독교 600년 전)도 동정녀 처녀에게서 태어났다.

2) 인도 흰두교의 크리슈나(기독교 600년 전)도 십자가에서 부활했다.

3) 이집트의 호루스(기독교 이전)도 12월 25일에 태어났다.

4) 기독교의 주일(일요일)은 조로아스터교의 표절?

5) 부활절(Eeaster)행사는 토속종교의 모방?

★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 라는 부인이 있었다.

★ 예수에게 부인 있었다! 4세기 문서 공개

★ 다빈치 코드와 예수의 아내 ‘막달라 마리아’

★ 예수가 하느님 아들이라고 조작한 사건의 배경

★ 성경(Bible)의 역사와 예수 신분의 격상(格上)

★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도, 부활하지도 않았다!

★ 예수의 진짜 사명 (天命)과 예수의 실제 일대기

★ 예수 후원자와 켈트 크리스천(Celtic Christian)

★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족과 아랍족간의 중동 분쟁

★ 여호와(Jehovah)는 하느님이 아니라, 유대민족의 민족신!

★ 성경의 ‘아담과 이브’는 인류의 조상이 아니다.

1) 뱀이 이브(여자)에게 유혹을 걸었고, 여자 때문에 죄악이 생겼는가?

2) 아담과 이브는 과연 인류의 조상인가?

 

★ 성경(Bible)은 언제, 어떻게 쓰여졌는가?

 

성경은 B.C 1,500년에서 A.D 100년까지의 기독교의 가르침을 담은 것으로, 구약(舊約) 성경은 유대교의 가르침이고 신약(新約) 성경은 예수(Jesus)의 가르침을 적어 놓은 것이다. 303년, 당시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안(Diocletian)에 의해 크리스천에 관한 모든 서류는 보이는 대로 없애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 결과 로마 일대에서는 크리스천에 관한 책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5000종 이상의 현존하는 신약 성서와 관계되는 문서 중 단 하나도 4세기 이전의 것이 없는 것이다.

 

325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성경을 다시 쓰라고 했을 때에는, 신약성서의 많은 부분이 당대의 구미에 맞게 둔갑을 했고, 예수의 신분이 격상되어 기록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약성경은 모두 4세기 때의 작가와 편집자들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그동안 몹시 박해받아 오던 그리스도교가 로마 국교로 되었고, 325년, 1차 니케아 종교회의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주관아래 소집되었으며, 종교회의에 의해 기독교(基督敎)의 성경(聖經)이 완결지어 졌다. 그런데, 325년의 종교회의에서 발탁된 여러 가지 자료들 중에서 그들의 목적에 적합하지 않는 45권의 책들은 삭제해 버렸다. 그리고, 이런 책들은 사회적으로 통용될까 두려워 아예 없애 버렸다.

 

또한, 야고보서(Book of James)나 도마(Thomas) 복음서 및 유아(幼兒) 복음서 등등도 당시 성경을 만드는 사람들의 목적에 부합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의 채택되지 않았다. 한편, 종교 개혁을 주도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성경의 내용에 대한 해석이 바티칸의 교황청과 매우 달랐다. 그래서, 루터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무조건 수정하거나 혹은 삭제해 버렸다. 그는 마카베(Machabees) 상.하권을 비롯한 7권의 책과 에스더(Esther)와 다니엘(Daniel)의 일부를 없애 버렸다.

 

또한, 칼빈(John Calvin)은 자기의 교리가 확고해짐에 따라 절대 군주의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칼빈의 주장에 의하면, 정부는 교회에 속해야 하며, 모든 성경적 해설은 칼빈주의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리적인 폭군이었다. 성경의 내용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변질되어 온 것이다. 또한, 1844년 시나이(Sinai) 사원에서 4세기의 성경 기록인 “시나이 사본(Codex Sinaiticus)”이라는 문서가 발견되었다. 이 문서를 보면, 최소한 7명의 저자가 1만 6천 부위를 정정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성서의 내용도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도 발견되었다. 성경의 내용들은 이처럼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차례 수정되고 변질된 것이다.

 

 

★ 성경(Bible)의 제작 과정 및 초창기 문서들

 

 

지금의 성경313년에서 325년 사이의 12년간의 세월에 걸쳐 여러 가지 자료들을 재조합해서 쓰여진 것이다. 예수의 기록은 마가복음(A.D 60년대), 누가복음(A.D 80년대), 마태복음(A.D 85년대), 요한복음(A.D 100년대)이 전부이다.

 

12-24세의 예수가 인도, 티벳 등 동양으로 건너가 동양의 진리를 습득했다는 기록은 교회와 기독교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내용은 삭제해서 기록했다. 지금과 같은 신약성서는 여러번의 공의회에서 주교와 장로들의 동의를 거쳐 성립되었다. 그 과정에서 “성경”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정경(正經)”이고, 그외의 교회의 신성을 모독하거나 교회의 이익을 크게 해친다는 이유로 누락시킨 것은 “외경(外經)”이라하여 구분했다.

 

복음서는 마가, 누가, 마태, 요한 복음의 네 권을 말하고, 신약성경의 처음 네 권의 책을 말한다. 마가복음은 서기 60년경 희랍과 로마인을 상대로 로마에서 씌여진 책이다. 이때는 유대인들이 로마에 항거하거나 진압되어 유대인들이 처형을 당하고 있을 때였으므로, 로마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씌여진 부분을 많이 볼 수 있다. 누가복음은 서기 80년경 희랍인 의사였던 누가(Luke)가 당시 팔레스타인의 수도 시자리아(Caesarea)에서 로마 고위 관리들을 상대로 쓴 책이다. 마태복음은 서기 85년경 희랍어로 희랍풍으로 씌여졌지만, 절반 이상이 마가복음에서 직접 빌려온 내용이다. 마태팔레스타인 출신 피난민 유대인으로 알려져 있다. 마태복음을 쓴 마태를 예수의 제자 마태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요한복음은 서기 100년경 에페수(Ephesus)라는 한 희랍의 도시에서 씌여진 책이다. 그런데, 요한이 썼다는 사실적 근거는 전혀 없다. 그러나, 네 개의 복음서에서 요한복음은 가장  신빙성이 있고 역사적으로도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성경(Bible)의 역사적 한계와 문제점

 

 

성경의 역사에는 중국이나 한국, 또 다른 대륙역사는 다루지 않았고, 전 지역을 상대로 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유대인역사를 근거로 하고 있으며 예수(Jesus)의 행적은 유대인을 위한 것이었다. 지구는 둥글며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를 억압하고 재판했으며, 사람은 환생(還生)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지오다노 브루노(Giodano bruno) 같은 사람을 불태워 죽였다. 성경기독교의 역사는 이미 오점(汚點)으로 얼룩져 있다. 기독교인들은 종교적 이단들을 마녀사냥이란 미명(美名)아래 처형했다. 기독교의 틀을 벗어나면 마녀(魔女)사냥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페르시아의 전성시기에 페르시아 제국은 지금의 중동지역에서부터 이집트까지를 영토로 만들었으며 고대 희랍 지역(유럽)은 차지하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586년 페르시아 제국의 왕들은 바빌로니아에서 탈출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정착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 후 로마제국 시대에 유대인 민족메시아로서 예수가 왔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묶이어 죽임을 당하는 일이 생겼다. 예수 이 후 로마제국은 크리스천(christian)이란 말만 들어도 잡아 가두고 죽였다. 크리스천에 대한 박해는 네로(Nero) 황제 때 극에 달했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 국교로 인정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 이후의 역사는 반대로 크리스천들의 이방인과 합리적 사상가들에 대한 억압과 박해로 점철되어 왔다.

 

성경은 또한 수학, 과학, 철학, 심령학, 고고학, 인류학 등 많은 현대의 학문과 합치되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역사를 6,000년으로 못 박아 놓고 있다. 아담과 이브가 인류의 조상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6,000년 전의 아담이브를 인류의 조상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과 크게 다르다. 아담(Adam)과 이브(Eve)는 6,000년 전의 역사 인물이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에 살 때, 에덴 동산 밖의 다른 지방에도 그 이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기록이 성경의 창세기(4:14-15)에 나온다. 아담과 이브가 최초의 인간이라는 성경의 내용과 서로 모순(矛盾)된다. 인류 고고학역사학에서는 몇 십만년, 몇 백만년 전의 생물과 인간의 유물 및 기록을 들춰 내고 있다. 6,000년 전의 아담과 이브 보다 먼저 인류는 지구상에 살고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종주인 바티칸에서는 수학을 몹시 싫어하여 계산하는 산수(算數)의 영역을 넘어 그 이상의 수학(數學)을 공부하는 것을 무척 꺼려했고, 천기(天氣)를 누설하는 일이라 하여 생각조차 못하게 했다. 그러다가 뉴튼 (Isaac newton)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重力)이라는 자연법칙을 찾아냈을 때에야 겨우 (零)의 관념을 허가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零, zero)을 수학이나 철학의 중요한 인자(因子)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감옥에 투옥되거나 지하로 들어가야만 했다.

 

한편, 현대의 신학자들은 세례(洗禮)의 목적에 대해 비관(悲觀)해 하며, 세례의 효과와 결과에 대해 믿으려 하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태어나 교회에 가서 머리에 물 몇 방울 뿌렸다고 천당에 갈 자격이 부여되는 것도 아니며, 반대로, 물 몇 방울을 뿌리지 않았다고 죽은 후 평생 지옥에서 고생해야 할 것이라고 믿는 신학자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초창기 미국 교회에서는 일요일에 태어난 아이에게 세례를 주지 않았었다. 그 이유는 크리스천들은 그 사람이 잉태한 요일같은 요일에 태어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요일에 태어났다는 것은 일요일에 성교를 했다는 증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요일은 주님의 날이기 때문에 성교로 몸을 더럽힌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고 부정을 타는 일이라고 믿었었기 때문이다.

 

 

★ 예수의 진짜 생일은 12월 25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예수 사망 이후 4세기(A.D 300년)까지는 예수의 생일을 1월 6일로 알고 생일 잔치를 했다. 서교(西敎), 즉 기독교를 최초로 로마 국교로 인정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는 원래 페르시아의 태양신인 미트라(Mitra)를 신앙했던 사람이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말년에 병상에 아파 눕게 되었을 때, 그리스도교의 영세를 받게 됨으로써 종교를 바꾼 사람이다. 서기 313년, 그는 기독교(基督敎)를 로마 국교(國敎)로 인정하였다. 그래서, 초기의 기독교는 페르시아의 태양신인 미트라(Mitra) 신앙의 교리나 의식, 제도, 관습 등을 대부분 모방하거나 그대로 수용하였다.

 

결국, 예수님의 생일을 페르시아의 지방의 축제일을 모방하여 12월 25일이라고 했고, 서기 353년, 로마 교황 리베리우스(Liverius)는 예수님의 생일을 12월 25일로 제도화시켰다. 한편, 태양신을 믿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에서는 12월 25일은 곧 축제일이자 조로아스터생일이었다. 12월 25일은 동지(12월 22일)를 지나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므로 태양이 다시 태어난다 라고 생각했다. 이 날은 고대로부터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축제일이었다.

 

한편, 예수의 탄생지는 베들레헴(요르단 서부 도시)이라고 한다. 그런데 성경의 여러 곳에서 마리아와 요셉의 고향나사렛이고 예수를 나사렛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 당대에는 나사렛이라는 마을있지도 않았다. 나사렛이란 마을은 예수가 죽고 800여년이 지난 다음에 생긴 마을이다. 최근에 출간된 “기독교 역사”와 관련된 책자를 보면, 여러 가지 잘못된 성경의 역사와 모순된 기독교의 진리들이 아주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다. 

 

 

★ 기독교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역사 과정

 

 

“성부(聖父,하나님)와 성자(聖子,예수)와 성신(聖神)은 곧 하나로 똑같다.”라는 삼위일체(三位一體) 사상은 진리 왜곡의 표본이다. 성부(聖父,하나님)와 성자(聖子,예수)와 성신(聖神)은 원래부터 하나가 아니였다. 우선 성경에서도 삼위일체에 대한 설명이나 어휘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예수님이 즐겨쓰는 언어는 인자(人子)이다. 인자(人子)는 사람의 아들이란 뜻이다. “인자가 말하노니” “진실로 인자가 너희들에게 말하노니” 라고 예수는 말하곤 했다. 2세기 중엽부터 로마에서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가 쇠퇴하고, 기독교가 중.상류층까지 전파되기 시작했다. 그후 로마 교회에서는 예수가 인간인가? 아니면, 하느님과 동등한가? 라는 논쟁이 일어났고, 국론이 분열되는 양상을 보였다. 분열된 국론을 규합하고, 넓은 제국을 통치하기 위한 강력한 교리가 필요했다.

 

서기 313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는 원래 페르시아의 태양신인 미트라(Mitra)를 신앙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로마 황제는 말년에 병상에 아파 눕게 되었을 때, 교회의 영세를 받게 되었는데, 이 때 자신의 종교를 기독교로 바꾸었다. 그리고 나서, 콘스탄티누스 로마 황제는 서기 313년에 기독교를 로마 국교(國敎)로 인정하였다.

 

삼위일체라는 용어는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가 처음 사용했고, 서기 325년,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는 제 1차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예수 지위격상시켜야 하므로 “예수는 하느님과 같다” 라고 일방적으로 의결했다.

 

그 후, 악의 폭군 “테오도시우스 1세 (Theodosius,서기347~395)”는 제 2차 종교회의에서 “삼위일체(三位一體) 신관(神觀)”을 확정한다. 강력한 로마 제국 건설을 위해 소모적인 종교적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국론(國論)을 통합하기 위해서였다. 그 이후로 예수님이 곧 하느님이며, 예수님이 곧 하느님 아버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삼위일체(三位一體) 사상은 힘의 논리로 사람이 만든 것이며, 사람이 의결해서 확정지어 놓은 것이다. 그런 것을 오랜 시간이 흐른 현대에 와서 사람들은 당연시 하고, 처음부터 삼위일체라는 관념이 있었던 것처럼 여긴다.

 

 

★ 성경(Bible)의 역사적 오류와 모순들

 

 

기독교의 성경은 사람의 필요에 의해 혹은 절대 권력의 필요에 의해 여러번 고쳐졌다. 그래서, 기독교의 성경은 여러 가지 모순(矛盾)들과 잘못된 오류(誤謬)들이 존재한다. 다음은 그 중에서 기록(記錄) 상의 오류만 발췌(拔萃)해서 적어 놓은 것이다.

 

첫째, 예수탄생시기에 대한 기록의 불일치이다. 누가복음(1-7)의 기록에 의하면, 기원 (after) 6년으로 기록되어 있고, 마태복음(2:1-23)의 기록에 의하면, 기원 (before) 6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양자간에 예수 탄생 시기가 무려 12년이나 차이가 난다. 누가복음(1-7)에서는 아구스도의 호적령과 인구조사 때, 즉 기원 (after) 6년에 예수가 탄생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마태복음(2:1-23)에서는 헤롯 왕(기원전 4년에 죽음)이 죽기 2년 전, 기원 (before) 6년에 예수가 탄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둘째, 예수탄생장소에 대한 기록의 불일치이다. 마태복음(2:11)에서는 예수가 태어난 장소를 (house)으로 기술하였고, 누가복음(2:7)에서는 마굿간(stable)으로 기술하였다. 마태복음(2:11)에서는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라고 하여, 예수가 태어난 장소를 (house)으로 기술하였으나, 누가복음(2:7)에서는 “맏아들을 낳아 강보에 싸서 구유(마굿간의 먹이통)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여인숙)에 있을 곳이 없음이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가 태어난 장소를 마굿간(stable)으로 기술하고 있다. 예수가 태어난 장소를 한 곳에서는 집(house)로 기록하고 있고, 다른 한 곳에서는 마굿간(stable)으로 기록하고 있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세째, “예수 마지막 한 말”의 불일치이다. 요한복음에서는 “다 이루었다.” 라는 말만 하고 머리를 떨어 뜨렸다라고 기록 하였고, 마태복음에서는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기록하였으며, 누가복음에서는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라고 기록하여 서로 각각 다르다.

 

네째, “예수처형된 날짜”의 불일치이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가 처형된 날짜를 “유월절 전날”로 기록하고 있으나, 마가.마태.누가복음에서는 “유월절 다음날”로 기록하여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다섯째, 예수의 12-24세간의 생애에 관한 기록이 신기할 정도로 공백 상태이다.

 

여섯째, 예수의 모친이었던 마리아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성경은 성령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과오모순이 없다라고 말하지만, 성경이 쓰여진 내역을 보면, 성경은 예수가 죽은 후 300년이 지난 후에 성경을 만든다고 모임을 가졌지만, 예수에 대한 자료와 문서를 모두 수집하려는 노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 후에도, 성경은 종교 권력자들의 뜻에 따라 여러번 변형되었으므로, 신비로운 거짓말을 보태기도 하고, 절대 권력의 뜻에 부합하지 않으면 내용을 삭제하기도 하였다.

 

 

★ 예수 어머니 마리아(Maria)는 동정녀 아니였다?

 

 

예수(Jesus)가 동정녀(童貞女)에게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수많은 처녀들을 두고, 남편(요셉)이 있는 성모 마리아(Maria)를 택할 이유가 있었겠는가? 전혀 있을 수 없는 얘기이다. 성경의 내용들은 메소포타미아, 고대 이집트, 가나안, 시리아, 고대 희랍 등의 신화들 중에서 모방해 왔다.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내용은 고대 신화들을 모방한 것이다. 흰두교크리슈나(Krishna)의 어머니도 동정녀였고, 이집트호루스(Horus)의 어머니도 동정녀였고, 메소포타미아 조로아스터(Zoroaster)도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고, 이브의 어머니 소피아(Sophia)도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고, 희랍신화디오니소스(Dionysos)도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

 

고대 신화종교의 바탕은 동정녀 출산이었다. 마치 신격화된 숭배의 대상은 모두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고 그래야만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얻고 들어갔다. 그래서 “예수(Jesus)가 동정녀의 몸을 통해 태어났다.” 라고 둔갑시켜 놓았다. 고대 신화나 고대 종교를 모방한 것이다.

 

예수가 살았던 로마제국 당시, 중동과 지중해 일대를 풍미하면서 기독교의 성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수많은 종교들이 있었다. 초창기의 기독교 교부들은 “옛날에는 신화에 지나지 않던 형상들이 우리 구세주 예수 안에서 되살아난다.” 라고 말했다. 이것은 모방의 근거를 신비로운 표현 속에 그대로 남겨 놓은 것이다. 이같은 표현은 성경의 내용이 옛 신화에게서 모방해 왔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1) 페르시아 미트라(기독교 600년 전)도 동정녀 처녀에게서 태어났다.

 

 

B.C 7세기경(약 2,600년전) 페르시아의 미트라(Mitra)는 12월 25일 동정녀 처녀에게서 태어났다. 그는 위대한 방랑교사였고, 기적을 행했으며, 12명의 제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무덤에 묻혔으며 3일 후에 다시 부활해서 일어났다. 미트라가 부활한 날에 미트라 교도들은 축제를 벌였는데, 이것은 나중에 기독교의 부활절과 일치되었다. 미트라(Mitra)의 기원은 고대 인도. 이란의 민족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 미트라 숭배는 B.C 3세기경에 페르시아에서 성행하였다. 따라서 페르시아의 발전에 따라 그리스로 건너가게 되었으며, 거기서 자연히 로마로 전파되었다. 고대 신화종교의 바탕은 동정녀 출산이었다. 마치 신격화된 숭배의 대상은 모두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고 그래야만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얻고 들어갔다. 예수의 동정녀 출산도 마찬가지이다.

 

죽어서 부활하는 신인(神人)의 고대신화가 있는데, 이 신인(神人)은 지역에 따라 미트라(페르시아), 오시리스(이집트), 디오니소스(그리스), 아도니스(시리아), 바쿠스(로마)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 졌다. 오시리스 그리고 디오니소스는 육체를 가진 신(神)이며, 구세주이고 하느님의 아들로 묘사된다. 하느님의 아들로서 처녀(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난 그들은 세 양치기가 찾아오기 전인 12월 25일에 동굴이나 누추한 외양간에서 태어났고, 믿는 자들로 하여금 세례의식을 통해 다시 태어날 기회를 주고, 결혼식장에서 물을 술로 바꾸는 기적(奇蹟)을 보였으며, 세상의 죄를 대신 지고 부활절(復活節) 무렵에 죽었으며,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復活)했다고 한다.

 

 

2) 인도 흰두교의 크리슈나(기독교 600년 전)도 십자가에서 부활했다.

 

 

인도의 크리슈나(Krishna)는 힌두교에서 두 번째로 추앙받는 위격의 성자(聖子)이다. B.C 7세기경(약 2,600년전) 크리슈나(Krishna)는 인도의 한 부족에서 태어나, 스스로 태양신을 숭상했으며, 실천윤리를 중시하는 통속종교를 창도(唱導)했다. 천사와 현인들 그리고 목동들이 크리슈나의 탄생을 지켜봤다고 한다. 크리슈나(Krishna)는 동정녀 처녀에게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목수였고, 갠지스강 강가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크리슈나는 나무 위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그는 그를 죽인자들 가운데에서 일어나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해진다. 그는 하나님으로 불리워졌으며 구세주로 불리워졌다. 그는 흰두교의 삼위일체 가운데 두 번째 위격이었고, 자신을 아버지에게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많은 기적과 이적을 행했으며, 나환자와 맹인, 귀머거리를 치료했다. 성경의 내용을 보면, 2,600년 전의 크리슈나의 행적(行蹟)을 그대로 모방한 흔적이 보인다.

 

크리슈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모든 것의 생명이며, 세상을 떠받치는 자이며, 세상의 길이며, 그 피난처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말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크리슈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사물의 시작이며, 중간이며, 끝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말했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 크리슈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삶을 여러 번 반복하여 윤회전생(輪廻轉生)하고, 너희들도 삶을 여러 번 반복한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삶을 알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말했다. “나는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있다. 그러나 너희들은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3) 이집트의 호루스(기독교 이전)도 12월 25일에 태어났다.

 

 

이집트의 호루스(Horus)는 고대 이집트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의 신(神)이며, 오시리스의 아들이다. 호루스(Horus)는 12월 25일 동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을 가르쳤으며, 30살 때 세례를 받았고, 12 제자가 있었다. 그는 기적을 행했고, 죽은자를 살렸으며, 물위를 걸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으며, 무덤에 묻혔고 부활했다. 호루스는 길이요, 진리요, 빛이요, 메시아로 칭송되었다. 아들로서의 '유아(幼兒) 호루스'는 아기 예수의 원형으로 비교되기도 한다. 성경의 내용을 보면, 고대(古代) 이집트의 호루스(Horus)의 행적(行蹟)을 그대로 모방한 흔적이 보인다.

 

 

4) 기독교의 주일(일요일)은 조로아스터교의 표절?

 

 

유대인들이 중요하고 성스럽다고 여기는 날은 일요일이 아니고 토요일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크리스천들은 토요일보다 일요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원래 일요일을 중요시 여기는 것은 태양신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의 관습이다. 원래 조로아스터교를 숭배했던 로마의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주님의 날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꾸었다. 조로아스터교의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예수 이전 (기원전) 약 600년경에 페르시아에 “조로아스터” (Zoroaster, B.C 628-551)라는 현인(賢人)이 있어 현재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서양문명의 한 근원을 이루는 중요한 신앙적 사상을 전파하였다. 조로아스터는 12월 25일 동정녀(童貞女) 처녀에게서 태어났고, 그는 위대한 방랑교사였고, 기적을 행했으며, 12 제자가 있었다. 그는 무덤에 묻혔으며 3일 후에 다시 부활(復活)했다. 그가 부활한 날에 페르시아의 교도들은 축제를 벌였는 데, 나중에 기독교의 부활절과 일치된다. “그리스도교”라는 것이 생긴 것은 예수 이후 300여년 후의 일이다. 물론 그 전에 지하조직으로 명맥을 유지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교와는 본질과 진리의 틀이 완전히 달랐었다.

 

 

5) 부활절(Eeaster)행사는 토속 종교의 모방?

 

 

부활절의 축제일은 원래 그리스도교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모두 파간(pagan) 토속종교에서 얻어 온 것이다. 그래서, 그 날짜가 매년 변한다. 파간의 부활절은 3월 21일 춘분(春分)이 지나고 첫 보름달이 지난 후에 첫 월요일을 부활절이라 한다. 토속종교를 크리스천들은 이단이라고 했고, 그들을 파간(Pagan)이라고 했다. 파간은 원래 파구스(pagus, 시골사람)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파간(pagan)의 부활절은 음력 달력에 의해 만들어졌고 월요일이었는데, 그리스도교에서 변형하여 일요일로 하였다. 토속종교인들은 월요일을 중시하며 월력(月曆)인 사용하는데, 그리스도교에서는 페르시아의 태양신(男神) 종교를 모방하여 일요일을 중요시 했다. 그래서 그 당시 주일을 일요일로 바꿨다. 춘분(春分)부터 부활절이 되는 일요일까지의 기간은 에오스트라 여신(Eostra, 라틴어,땅의 여신)의 배란기로서 임신하는 기간이었다. 가나안 지방에서 입춘(立春)이 되어 비가 오는 때에 땅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이 임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도 임신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하여 성교를 위한 축제를 했던 풍습과 마찬가지인 신앙이다.

 

또한, 부활절계란에 붉은 색을 칠하는 것이 관례인데, 서양의 전설에서는 계란은 다시 태어난다는 “환생”과 “부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활절 때 특히 동구 유럽에서는 계란에 붉은 색을 많이 넣어 아름답게 칠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예수 사후 약 500년간의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많은 기독교인 (특히 gnosis파)들이 인간의 환생 윤회설을 자유로이 신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라는 부인이 있었다.

 

 

성경을 보면 예수의 결혼(結婚)이나 그의 성(性)생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그런데, 예수는 유대인으로서 랍비(rabbi, 율법사) 훈련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랍비 훈련유대인 율법에 의하면 결혼을 하지않은 사람은 절대 허락되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예수결혼 상태에 대해서는 자명(自明)한 일이었다. 예수가 결혼을 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특히 유대인의 풍습을 보면 성인이 되면 결혼(結婚)은 당연한 사회조건이었고 결혼을 하지 않으면 가문의 수치로 여겼을뿐 아니라, 심지어는 독신생활하는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었다.

 

성경의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가 선교활동을 하는 초창기인 갈릴리에 있을 때부터 “막달라 마리아(Maria Magdalena)”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녀는 계속 예수와 동행하여 유대아 지방까지 함께 동행했다고 한다. 예수 당대의 풍습으로 결혼하지 않은 독신 여성이 혼자 한 남자와 함께 동행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예수의 마지막 생애에서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사도 베드로와 함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그 당시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는 좋지않은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성경에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종교의식을 담당하는 사원(寺院)의 여자 따위로 표현해 놓았다. 마가.마태.요한의 세 복음서를 보면 예수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때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 옆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의 무덤에서 시체가 없어진 것을 처음 발견한 것도 막달라 마리아였고, 예수부활했다고 처음 알려준 상대도 막달라 마리아였다. 복음서 전반에 걸쳐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는 독특했다.

 

그런데, 유대인의 풍습은 원래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극심했었다. 지금의 이스라엘 여자들도 그 족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부인이면서도 대접받는데에는 한계가 있었고 특히 사도들의 마음에 걸리는 존재였다. 특히 성경의 기록에서는 애써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에게 부인 있었다! 4세기 문서 공개

 

 

예수(Jesus)가 ‘나의 아내’를 직접 언급한 것을 기록한 4세기 콥트어(Coptic language) 문서가 2012.09.12일 국제 학회에 정식으로 보고됐다. 예수(Jesus)가 결혼해 자신의 아내를 제자로 삼고, 자녀를 낳았다는 설은 그동안 각종 성경 외경과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Da Vinci Code)’ 등에서 제기한 적이 있지만, 예수가 ‘아내’를 언급한 것이 기록된 문서가 학계에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뉴욕 타임스(NYT), 보스턴 글로브, 하버드 대학 매거진은 초기 기독교 연구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를 지닌 캐런 L 킹(58) 하버드(harvard) 대학 신학부 교수가 2012.09.18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개최된 국제 콥트 학회에 4세기 콥트어(Coptic language)로 작성된 파피루스(papyrus) 문서 파편을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킹 교수는 ‘예수 아내의 서(書)’로 명명한 이 문서 파편의 콥트어 텍스트를 해독한 결과, “예수(Jesus)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의 아내(Wife)’…” “그녀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리아는 그럴 만하다” 등의 내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는 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을 통해 이 문서를 “예수(Jesus)가 자신의 아내(Wife)를 지칭한 현존하는 유일한 텍스트”로 평가했다.

 

 

★ 다빈치 코드와 예수의 아내 막달라 마리아

 

 

책 ‘다빈치 코드(댄 브라운 지음)’에서는 ‘예수(Jesus)가 신의 아들이 아니라 인간이고, 막달라 마리아(Maria Magdalena)와 결혼해 자식을 두었다’는 파격적인 내용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다빈치 코드'는 국내에서 2004년 6월에 번역 출간된 뒤, 20주 이상 베스트셀러 순위에 머물 정도로 인기가 있는 파격적인 책이다. 이 책에 따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vinci)는 예수의 숨겨진 비밀을 지켜 온 시온(Zion) 수도회의 멤버였고, 자신의 그림을 통해 후세에 무언가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최후의 만찬(IL Cenacolo)은 예수가 제자들과 식사를 하면서 “너희들 중 하나가 나를 배신할 것”이라고 예언한 직후의 미묘한 분위기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다. 분명 예수와 12명의 제자만 등장해야 할 장면에 웬 여자가 등장한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의 오른쪽 옆에 앉아 있는 제자가 여성으로 그려졌다. ‘다빈치 코드’에 따르면, 이 인물은 막달라 마리아(Maria Magdalena)이다. 수염이 없는 갸름한 얼굴, 흰 피부와 긴 머리가 여성의 모습이다. 더욱이 예수(Jesus)는 붉은 겉옷에 푸른 망토를 걸쳤고, 막달라 마리아(Maria Magdalena)는 푸른 겉옷에 붉은 망토를 두르고 있어서 전통적인 부부(夫婦)의 의복(衣服) 차림으로 입혀져 있고,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막달라 마리아를 그려 놓음으로써, 기독교가 예수의 결혼을 숨기기 위해 여성성을 철저히 배제해 왔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 인물의 오른쪽 옆에 앉아 말을 걸고 있는 인물은 ‘베드로(Peter Simon)'이다. 그는 막달라 마리아를 향해 위협적으로 몸을 기대며 손을 마치 칼날처럼 펴서 그녀의 목에 들이대고 있다.

 

다빈치 코드는 이를 예수가 자신의 후계자로 마리아를 지명한 데 대해 베드로가 반발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전통적인 해석에 따르면 여성처럼 보이는 이 인물은 사도 요한(John the Apostle)이었다. 사도 요한은 12명의 제자 가운데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미소년이었다. 예수의 사랑을 특별히 많이 받은 제자로 알려져 있어서 최후의 만찬을 그린 다른 화가의 그림에서도 언제나 예수의 바로 옆자리에 앉은 것으로 묘사된다. 심지어 예수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슬퍼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초기 기독교의 한 기록인 ‘빌립 복음(Gospel of Philip)’에서도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아내였다. 그리스도는 모든 제자들보다 그녀를 더 사랑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기독교 교회를 세우라고 지시를 내린 사람은 베드로가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였다. 베드로는 그 일에 불만을 가졌다. 초기 기독교는 예수가 신이 아니라 사실은 인간의 혈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실질적인 증거인 막달라 마리아의 존재를 묻어버리기 위해 그녀를 창녀로 덧씌우고, 예수가 그녀와 결혼한 증거를 은폐시켰다.

 

 

★ 예수가 하느님 아들이라고 조작한 사건의 배경

 

 

최근에 출간된 기독교에 관한 여러 책자에서는 기독교의 역사와 성경의 내용들을 심도(深度)있게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의 자료에 의하면, 예수는 요셉(Joseph)이라는 아버지와 마리아(Maria)라는 어머니 사이에서 정상적으로 태어난 보통 사람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보통의 가정에서 태어난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아버지 요셉(Joseph)은 나이가 아주 많았고, 마리아(Maria)의 아버지 뻘 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요셉은 이미 리디아(Lydia)와 리시아(Lysia)라는 이 있었고, 그들은 이미 결혼하여 출가한 상태였다. 그리고 야고보(James)와 시몬(Simon)이라는 두 아들을 가진 홀아비였다. 요셉 성모 마리아(Maria)를 두 번째 부인으로 맞이하고자 6월에 정혼(定婚)했다고 한다. 이 때, 요셉은 이스라엘 다윗 왕 종손이었기 때문에, 요셉과 그의 부인 될 사람은 제사장엄격한 규율을 따르게 되어 있었다. 정혼이 확정된 다음 3개월 후인 9월에 1차 혼인 선언을 하고, 12월 첫 보름 동안만 두 사람의 동침이 허락되었다. 그 이유는 다음해 9월에 아이를 출산하기 위함이며, 9월은 성스러운 기름부음의 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 발생했다. 요셉은 제사장이 명령한 12월 초순까지 기다리지 않고 6월에 정혼을 하자 마자 곧바로 마리아(Maria)와 동침을 한 것이다. 율법을 어긴 임신을 하게 되자 요셉은 몹시 난처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제사장 뿐이었다. 그래서 요셉은 제사장을 찾아갔고, 제사장은 요셉과 마리아의 경우를 특별히 취급하도록 했다. 즉 하느님에 의해 잉태하게 되었다고 발표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하느님의 잉태에 의해 태어났다고 알려지게 된 것이다.

 

2세기나 그 이전에 씌여진 것으로 추측되는 “유아(幼兒)복음서”는 예수가 아주 어렸을 때의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는 어린 예수가 아주 영리했지만 난폭하고 버릇이 없고 신경질이 대단히 심한 어린이였음이 묘사되고 있다. 그 중에는 자기 심기를 건드린 다른 아이죽인 일도 있었고, 자기의 가정교사를 죽도록 두들겨 팬 적도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는 성경을 만드는 목적을 예수의 성(聖)스러움과 예수의 신격화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예수어린시절이나 혈통관계는 성경의 기록에서 고의적으로 제외시켰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예수의 어린 시절이 완전히 삭제되어 있는 것이다.

 

 

★ 성경(Bible)의 역사와 예수 신분의 격상(格上)

 

 

예수가 죽은지 4년 후인 36년, 유대인 자치의회인 “산헤드린(Sanhedrin)" 의회는 한국의 반공법과 같은 반유대인법을 제정하여 예수의 일당을 잡아 죽이기 시작했다. 예수가족은 물론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모두 피신을 해야만 했다. 303년, 당시 로마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안(Diocletian)에 의해 크리스천에 관한 모든 서류는 보이는 대로 없애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 결과 로마 일대에서는 크리스천에 관한 책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5000종 이상의 현존하는 신약 성서와 관계되는 문서 중 단 하나도 4세기 이전의 것이 없는 것이다.

 

325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성경을 다시 쓰라고 했을 때에는, 신약성서의 많은 부분이 당대의 구미에 맞게 둔갑을 했고, 예수의 신분이 격상되어 기록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약성경은 모두 4세기 때의 작가와 편집자들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그동안 몹시 박해받아 오던 그리스도교가 로마 국교로 되었고, 325년, 1차 니케아 종교회의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주관아래 소집되었으며, 종교회의에 의해 기독교(基督敎)의 성경(聖經)이 완결지어 졌다.

 

그런데, 325년의 종교회의에서 발탁된 여러 가지 자료들 중에서 그들의 목적에 적합하지 않는 45권의 책들은 삭제해 버렸다. 그리고, 이런 책들은 사회적으로 통용될까 두려워 아예 없애 버렸다. 또한, 야고보서(Book of James)나 도마(Thomas) 복음서 및 유아(幼兒) 복음서 등등도 당시 성경을 만드는 사람들의 목적에 부합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의 채택되지 않았다.

 

야고보서(Book of James)는 예수의 이복 동생 야고보가 쓴 글인데, 이 책은 예수가 어렸을 때의 이야기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썼으나 거의 채택되지 않았다. 도마(Thomas) 예수의 동생이라고 믿어지는 사람인데, 그도 예수어린 시절 이야기를 두 권이나 썼고 복음서도 썼으나 하나도 채택되지 않았다.

 

한편, 예수를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바울(Paulus)의 이야기는 매우 중요시 여겨지고 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성경을 성령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과오나 모순이 있을 수 없다고 믿고 있지만, 성경이 쓰여진 내역을 보면 의문모순 투성이이다. 예수가 죽은 이후 300여년이 지나서 성경을 만든다고 모임을 가졌지만, 예수 행적에 대한 자료를 제대로 수집하려는 노력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성경의 번역은 하나님이 성령을 내려 다만 사람의 손만 빌린 것이고 누가 쓰든 관계없이 그 결과는 하나님이 쓴 글이기 때문에 모두 똑같다는 교회측의 설명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공룡이나 아틀란티스문명, 아즈텍 문명, 고대 4대 문명, 지구와 인류의 역사, 북극과 남극의 유래, 우주와 천체 등의 이야기는 성경의 차원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더욱이, 종교개혁 당시, 마르틴 루터는 기존 성경에 대한 불만이 대단했었다. 그는 1534년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성경의 형태로 성경을 마름질하고 편집했다. 종교 개혁을 주도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성경의 내용에 대한 해석이 바티칸의 교황청과 매우 달랐다. 그래서, 루터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무조건 수정하거나 혹은 삭제해 버렸다. 그는 마카베(Machabees) 상.하권을 비롯한 7권의 책과 에스더(Esther)와 다니엘(Daniel)의 일부를 없애 버렸다.

 

또한, 칼빈(John Calvin)은 자기의 교리가 확고해짐에 따라 절대 군주의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칼빈의 주장에 의하면, 정부는 교회에 속해야 하며, 모든 성경적 해설은 칼빈주의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리적인 폭군이었다. 성경의 내용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변질되어 온 것이다.

 

또한, 1844년 시나이(Sinai) 사원에서 4세기의 성경 기록인 “시나이 사본(Codex Sinaiticus)”이라는 문서가 발견되었다. 이 문서를 보면, 최소한 7명의 저자가 1만 6천 부위를 정정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성서의 내용도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도 발견되었다.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치면서 성경의 내용들은 사실과 다른 이야기가 삽입되었고, 마음에 들지않는 진실들은 성경의 내용에서 삭제되어 졌다. 성경의 내용들은 이처럼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차례 수정되고 변질된 것이다.

 

 

★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도, 부활하지도 않았다!

 

 

1886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베드로 복음서(Gospel of Peter)의 자료에 의하면, 예수가 죽은 후 들어갔던 무덤은 요셉(Joseph)의 정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리마태아 요셉과 본디오 빌라도 로마 총독은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 당할 때의 조작극(造作劇)을 잘 설명해 주는 대목이다. 한편, 독일의 신학자(神學者)인 홀거 케르스텐(Holger Kersten, 1951~)이 쓴 『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라는 책을 보면,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도 않았으며, 십자가에서 부활하지도 않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예수는 이스라엘 유대인의 아브라함 후손이며, 이삭, 야곱, 다윗의 후손이다. 예수는 혈통적으로 유대인의 왕이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러나, 예수가 추구한 것은 바로 유대민족의 메시아(Messiah)가 되는 일이었다. 그가 필요로 했던 것은 절대 다수의 유대인들이 예수 자신을 유대인메시아(Messiah)로 믿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일이었다. 그래서, 예수는 고대의 신화와 종교에서 언급되는 십자가 부활(復活)이라는 조작극이 필요했던 것이다. 기존의 유대인으로 하여금 자신을 유대인 메시아로 믿게 할 종교적 필요가 있었다.

 

성경을 보면 예수로마을 어기거나 로마 당국과 충돌한 일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예수원수로 생각했다면 로마 당국의 본디오 빌라도 (Pontius Pilate)의 손을 빌리지 않고 자기네의 율법으로 직접 돌로 쳐서 죽이는 사형법으로 예수를 죽였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로마의 사형법인 십자가형으로 죽었다. 그리고 원래의 로마 당국의 십자가 사형법은 죄수의 시체를 말라 비틀어질 때 까지 십자가에 놓아 두는 법인데, 예수의 경우는 죽은 것만 확인하고 곧바로 쉽게 내 주었다. 기존 유대인의 집권층에서 볼 때, 불과 몇 년 사이에 불쑥 나타난 예수라는 사람이 갑자기 인기가 높아지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예수가 인도티벳이집트에서 수행을 하고, 의술을 배우고, 고전(古典)을 공부하고 돌아오더니, 만민 평등을 주장하며 유대민족 메시아 행세를 하고 다녔다.

 

예루살렘의 유대인 자치의회인 “산헤드린(Sanhedrin)”을 비롯한 기존 유대인의 세력과 로마 당국은 그들의 권익위협을 느꼈고, 이들은 예수제거하려고 계획했다. 이 때, 예수는 이 사실을 미리 알아차렸고, 그래서 부패한 로마 집권층의 본디오 빌라도매수했다. 본디오 빌라도는 잔악한 폭군이었으며, 반면에 부패하여 뇌물을 좋아했다. 그리고, 아리마태아 요셉과 본디오 빌라도 로마 총독은 아주 가까운 친구 사이였다. 그래서, 예수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찾아갔고, 예수는 자기가 원하는  모든 형태의 것을 부탁했다.

 

마가복음 15장 44절에 보면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을 때, 본디오 빌라도 역시 예수가 그렇게 빨리 죽는 것에 대해 놀랐다.” 라고 한다. 요한복음 19장 32절에 보면 “로마 형리들이 예수다리부러뜨리려 했을 때에 예수는 이미 죽어 있었다.” 라고 한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의 발이 십자가에 고정되어 있었고, 다리가 부러지지 않았다 라고 했으니, 정상적인 십자가형의 경우 2~3일 정도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수 있었다. 이 대목을 보면 예수가 십자가에 묶였을 때 탈진 상태의식을 잃었든지 혹은 예수가 시간을 맞추어서 적절하게 죽은 것이다.

 

이렇게 죽은 혹은 실신 상태의 예수는 미리 준비된 왕릉 같은 동굴 형태의 무덤에 안치 되었고, 마태복음 27장 60절에 의하면 “이 무덤은 아리마태아 요셉개인 소유”라고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 23장 49절에 보면 “예수의 아는 자들과 따라온 여자들이 모두 멀리 서서 구경했다.” 라고 한다. 이것을 보면 예수의 십자가 사형은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것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만 모인 십자가 사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개인 소유지에서 가족 몇 사람과 로마 당국자들이 모여서 행해진 조작극이었고 깜짝 쇼였다는 것이다.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되는 연극을 꾸미고 그럼으로써 유대교파의 질시와 저주를 모면하게 되고 동시에 유대인메시아(Messiah)로서의 명분을 얻게 되었다. 예수십자가에 매달린 후, 가사(假死) 상태에 있었고, 예수의 후원자인 아리마태아 요셉은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예수의 몸을 인수받아 동굴무덤에 안치시킨 후 다시 비밀리에 후송시켰고, 3일간 정성껏 치료한 후 회복되었다. 그리고 그는 3일 후에 가까운 소수몇 명에게만 나타났다. 이 때, 예수는 모든 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활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와 가까운 몇 사람에게만 나타나서 마치 부활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진짜 예수가 부활했다면 분명 여러 사람과 대중들 앞에 나타나 의심할 여지없이 증명해 보이며 당당하게 설파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 예수의 진짜 사명 (天命)과 예수의 실제 일대기

 

 

예수는 예수의 아버지 하느님이 보내신 인간 성자(聖子)이며, 천명(天命)을 받으신 분이다. 예수는 어린시절 목수 일을 했고, 아버지 일을 도왔으며,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다. 이 때 인도의 오릿사 지방의 왕족인 라반나가 유대나라의 제례(祭禮)에 참석하러 왔던 차에, 성전에서 말하고 있는 예수의 명석함에 반하여, 예수의 부모님을 만나 인도 유학을 주선한다 (성약성서 21:1-20).

 

예수는 인도 오릿사 지방의 쟈간나스의 절에 들어가 제자가 되고 4년 동안 수행한다. 다시 예수는 인도의 의술을 배우기 위하여 당시 인도 최고 의원이었던 우도라카의 제자로 입문한다. 예수는 유대의 시편과 예언 시를 읽고, 베다경전, 페르시아의 아베스타 경전, 석가 부처님의 지혜를 읽었다. 예수는 인간평등을 주장하다, 인도의 신분제도(카스트) 제도를 파괴한다고 해서 인도 승려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결국 네팔로 피신한다.

 

예수는 다시 티벳의 랏사에 있는 사원에서 티벳의 수많은 고전(古典)을 공부한다. 그 후 24세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 페르시아에 들러서 24년 전 자신을 찾아준 마기교 승려인 동방박사 3인을 만났다. 25세가 되어 이집트의 헬리오폴리스로 가서 성자들의 모임인 형제단에 입회한다. 이집트에서 거룩한 스승의 제자가 되어 애굽 밀교의 비밀, 태양계 바깥세계의 비밀, 생사의 문제 등등을 공부하고 거기에서 “그리스도” 라는 최고의 법명을 받는다. 그 후 다시 인도로 건너가 승려가 되어 수도생활을 한 후, 29세가 되어 티벳을 거쳐 귀국한다.

 

유대나라에서 예수는 인간의 절대 신성과 인간 평등과 신의 사랑을 전파한다. 예수는 이스라엘 유대인의 아브라함 후손이며, 이삭, 야곱, 다윗의 후손이다. 예수는 혈통적으로 유대인의 왕이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고, 실제로 그가 추구한 것이 유대인의 왕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유대교파의 질시와 저주를 받게 되었다.

 

이 때, 예수는 예수와 전혀 적대관계가 없는 로마 총독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되는 연극을 꾸미고 그럼으로써 유대교파의 질시와 저주를 모면하게 되었다. 동시에 유대인메시아로서의 명분을 얻게 되었다. 예수십자가에 매달린 후, 가사(假死) 상태에 있었고, 예수의 후원자인 아리마태아 요셉은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예수의 몸을 인수받아 동굴무덤에 안치시킨 후 다시 비밀리에 후송시켰고, 3일간 정성껏 치료한 후 회복되었다.

 

 

★ 예수 후원자와 켈트 크리스천(Celtic Christian)

 

 

예수의 아버지 요셉(Joseph)은 예수가 어렸을 때 죽었다. 요셉이 죽은 후 어린 예수를 교육시키고, 예수의 경제적 뒷받침을 해준 사람은 아리마태아 요셉(Arimathea Joseph)이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묶이어 죽었을 때 예수의 시체를 거두어 왕릉 형태의 무덤에 안치시킨 후 모든 뒷바라지를 다했고 예수를 소생시킨 사람도 바로 그였다. 예수의 가족피신시켜 끝까지 돌보아 주고 그리스도교의 창설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그에 대해서 잘 모른다. 예수가 죽은 후 300년 후에 쓰여진 기독교 성경에서는 이 사실을 왜곡하여 그를 예수의 제자라고 서술하고 있다.

 

아리마태아 요셉 (Arimathea Joseph)은 원래 유대인으로서 이집트에서 태어났으며, 후에 유대인이 많이 사는 예루살렘에 근거를 두기도 했으며 당대 최고 갑부 두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영국의 주석과 납광산을 비롯하여 중동지방과 인도지방에 광산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또한 유대인으로서 로마 시민이었고, 로마제국의 무기제작에 필요한 철 자재를 공급하는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로마의 상원의원보다 높은 직위도 부여 받았다. 동시에 그는 예루살렘의 유대인 자치의회인 “산헤드린(Sanhedrin)"의 의원이었다.

 

예수의 사형 언도 이 후, 로마 당국과 예루살렘의 산헤드린의 명령에 의하여 예수의 가족들을 모두 체포하라는 포고령이 내려졌고, 이 때 아리마태아 요셉 (Arimathea Joseph)은 마리아(예수 어머니)와 막달라 마리아(예수 부인), 예수의 유모 등의 가족들을 피신시켰다. 그리고 본인은 예루살렘에서 산헤드린에게 체포되었고, 나중에 부하 직원들에 의해 구출되어 영국에 정착하였으며 거기에서 큰 성당을 짓고 선교사업을 벌였다. 이 때의 그리스도교의 신도들을 “켈트 크리스천(Celtic Christian)"이라고 한다.

 

로마제국이 영국을 점령하고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려 할 때, 이미 영국에 나름대로 크리스천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랬다고 한다. 로마 사람들이 서기 196년경에 크리스천이 되기 시작한 것 보다 훨씬 이전에 영국이 먼저 크리스천화 됐다는 기록이 있다.

 

 

★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족과 아랍족간의 중동 분쟁

 

 

유대인의 경전에 의하면, 아브라함(B.C 2,000년경)사라(Sarah)를 아내로 맞이했으나, 사라(Sarah)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 그래서 아브라함(Abraham)은 이집트 출신의 종(從)인 하갈(Hagar)과 동침하여 이스마엘(Ishmael)이라는 아들을 얻었다. 그러나 나중에 사라(Sarah)도 임신하여 이삭(Isaac)을 낳게된다. 그 후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자기가 낳은 이삭이 적자(嫡子)임을 주장하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도록 한다.

 

나중에, 이삭(Isaac)에게서는 “유대족”이 나오고, 이스마엘(Ishmael)에게서는 “아랍족”이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서자(庶子)인 이스마엘에게서 나온 아랍족은 유대인과 기독교인들로부터 2류 민족으로 취급되었다.

 

서기 570년경, 마호메트가 나타나서 아랍 민족을 통합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마호메트는 이슬람교(회교)를 창도(唱導)하였다. 마호메트는 천사 가브리엘의 계시를 받아 박해받는 아랍족의 무리를 이끌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유대인과 기독교에 대한 아랍 이슬람교의 반목은 계속되었다. 중동(中東)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은 아브라함(Abraham)의 적자(嫡子) 자손인 유대인과 서자(庶子) 자손인 아랍 민족 간의 분쟁이며, 역사적으로 4,000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

 

 

★ 여호와(Jehovah)는 하느님이 아니라, 유대민족의 민족신!

 

 

유대인의 초창기 민족신은 “(El)”이었다.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Mose)”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규합하여 이집트의 노예생활로부터 민족해방의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는 과정에서 새로운 신의 이름을 여호와(Jehovah)라고 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여호와”에게서 조상 전래의 하느님을 재인식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여호와(Jehovah)는 창세기 첫 장부터 나오지 않고, 출애굽기에서 부터 (구약성서 3:15) 등장한다. 여호와(Jehovah)는 유대민족의 전쟁신이다.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복수하도록 지시한 자가 바로 여호와이며 (출애굽기21:23-25), 끔찍한 살인을 예사로이 지시하고, 여인을 강제로 탈취하여 동침까지 한다. (민수기 31:25-40). 여호와는 사람까지 죽여서 제물로 바치기를 요구하고, 유대민족에게 다른 민족침략하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학살할 것을 지시하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신(神)이다. (사무엘기상 15:2-3, 신명기 17:2-5, 19:1, 민수기 15:32-36, 출애굽기 21:20-21, 22:18, 22:20, 레위기 20:27).

 

 

★ 성경의 아담과 이브는 인류의 조상이 아니다.

 

 

구약(舊約)성서, 창세기에서는 “아담(BC 4004년 탄생)이 잠잘 때에 갈비뼈 하나를 뽑아서 여자를 만들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같은 기록은 자연의 이치(天理)를 거역하는 선천(先天)시대 억음존양(抑陰尊陽)의 낡은 세계관의 전형적인 궤변(詭辯)이다.

 

현생 인류는 약 5만년 전, 천지만물의 조화 기운과 음양의 조화 기운을 받아서 남자와 여자가 지구상에 생겨났다고 한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남자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기 때문에, 남자 갈비뼈가 여자 갈비뼈 보다 숫자가 하나 적다고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 모두 갈비뼈는 12개씩이다. 남자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성경의 내용은 잘못된 것이다.   

 

‘유대인 신화’에 의하면, 하나님이 흙을 빚어 남자여자의 형상을 동시에 만들었고, 남자는 아담(Adam), 여자는 릴리스(Lilith)라고 하였다. 그런데, 아담과 릴리스는 성교(性交)를 하면서 곧 싸움을 시작하였다. 릴리스는 아담 밑에 깔리지 않겠다며 꼭 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담은 “나는 너보다 윗 사람이니, 너는 내 말에 복종해야 한다.” 라고 대꾸했으나, 릴리스는 “우리는 둘 다 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동등하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복종해야 할 이유가 없다.” 라고 하면서 조물주에게 입으로 담을 수 없는 욕지꺼리를 하면서 도망가 버렸다. 그래서 아담은 이 사실을 하느님에게 보고했다. 하느님은 3명의 천사를 보내 릴리스를 데려 오도록 했다. 그러나, 릴리스는 아담에게 돌아 가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그리고 릴리스는 천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고, 마귀 사탄들 하고 친하게 지냈다. 그래서 유대인 풍속에 릴리스는 밤의 마귀로 통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릴리스를 포기한 하나님은 이번에는 아담에게 절대 복종하는 여자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아담(Adam)의 갈비뼈 하나를 뽑아 여자를 만들었고 "이브(Eve)"라고 하였다. 유대인의 문화에는 이런 신화 때문에 철저한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존재하고 있고, 그리스도교 문화에서도 여자는 남자보다 죄의식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 라는 사상이 깔려있다.

 

로마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 때 이런 남성 우월적인 신화가 마음에 들어서 성경 속에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었으니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되야 한다” 라는 사상을 집어 넣었다.

 

한편, 초기 그리스도교의 그노시스(Gnosis) 학파에서는 합리적 이성과 개인적인 수행 및 참선(參禪)을 중요시 여겼는데, “그노시스(Gnosis)” 학파에서는 구약성서 혹은 유대인 신화와는 달리, 『여자는 신(神)을 이해하는 영(靈)을 가졌고, 남자는 신을 이해하는 영(靈)이 없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못한다. 그리고 여자가 남자에게 영적인 의식을 일깨워 주어야 하며, 남자는 영적인 의식을 일깨워 준 여자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1) 뱀이 이브(여자)에게 유혹을 걸었고, 여자 때문에 죄악이 생겼는가?

 

 

성경은 “에덴 동산(Garden of Eden)에서 뱀이 이브(Eve,여자)에게 유혹을 걸어 죄악의 씨를 전염시켰고, 그 후 여자 때문에 이 세상이 오염되고 혼란과 파괴의 아수라(阿修羅)장이 되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성경은 왜 여자에게만 모함(母艦)과 누명(陋名)의 화살을 던지는 것일까? 창세기 1, 2장은 제사문서(priest writing)라고 불리우며, 서기 전 400년 전후에 기록된 내용들이다. 이 때는 이스라엘 남북 왕조가 모두 망하고, 모든 사람들이 실의(失意)에 잠겨,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왜 해야 하고, 왜 망했는지 대해 스스로 자탄(自歎)하던 때였는데, 이런 심리 상태에서 희생(犧牲)제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여자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비참해진 것은 바로 “여자”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구약성서의 창세기(2장)에 의하면, 태초에 하느님이 인류의 시조 아담(Adam)과 이브(Eve,하와)를 에덴 동산에서 살게 하였는데, 에덴 동산(Garden of Eden)에는 중앙의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중심으로 각종 나무가 울창하였으며, 들에는 짐승이 뛰어 놀고, 하늘에는 새가 날았다. 여기에서 강이 발원하여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비손. 기혼의 4개 강이 이루어 졌다고 한다. 이것은 모두 하느님이 창조한 것으로 아담에게, “나무의 열매는 먹어도 좋으나 선악(善惡)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는 따먹지 말아라. 그것을 따먹는 날에 너는 죽을 것이다.” 라고 가르쳤으나, 아담(Adam)은 아내 이브(Eve,하와)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는 바람에, 결국 선악과(善惡果)를 따 먹고 그 죄로 인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과연, 구약성서 창세기(2장)의 내용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일까?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었지만 아담은 그날 죽지 않았고, 아담은 계속 살았다고 한다. 역사적인 자료 의하면, 이런 내용들은 한낱 거짓된 내용에 불과하다.

 

 

2) 아담(Adam)과 이브(Eve)는 과연 인류의 조상인가?

 

 

기독교에서는 아담(Adam)과 이브(Eve)가 인류의 조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담(B.C 4004년 탄생)과 이브는 지금부터 6000년 전의 실존 인물이다. 기독교의 얘기처럼 아담과 이브가 인류의 조상이라면, 인류의 역사는 6000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기와 같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Garden of Eden)에 살 때, 에덴 동산 밖의 다른 지방에도 그 이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기록이 성경의 창세기(4:14-15)에도 나온다. 서로 모순된다. 아담(Adam)과 이브(Eve)가 인류의 조상이라는 성경의 내용은 잘못된 것이다. 인류 고고학역사학에서는 몇 십만년, 몇 백만년 전의 생물과 인간의 유물 및 기록을 들춰 내고 있다. 현생 인류는 약 5만년 전, 지상에 출현했고, 약4만년 전~약1만년 전까지 구석기 문화를 형성하고,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약 300~400만년 전에 최초의 인류라고 불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가 출현했고, 약 250~150만년 전에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가 나타났으며, 이 때, 구석기의 전기(前期) 문화가 등장했다. 이들은 불을 사용하고 사냥 채집을 하며 살았었다. 약 150~50만년 전에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곧선사람)”가 출현했으며, 약 20만년 전에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슬기사람)”가 출현하는데, 네안델탈인, 자바인, 베이징인이 여기에 속한다. 약 4만년전 지금의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 슬기슬기사람)”가 출현했다. 크로마뇽인, 그리말디인이 여기에 속하는데 이들의 체질상의 특징이 오늘날의 인류와 거의 똑같다.

 

현생 인류는 약 4만년 전부터 1만2천년 전까지에 걸쳐 구석기 후기 문화를 이룩하였다. B.C 10,000년 경에 구석기 시대가 끝나고 점차 신석기 시대가 전개 되었다. 신석기 시대는 농경목축을 하기 시작했으며 토기를 사용하고 정착 생활과 촌락을 형성하여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였다. 그 후,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 성서의 뿌리(산방, 민희식), 숨겨진 성서(문학수첩, 윌리스 반스토운), 교회에서 쉬쉬하는 그리스도교 이야기(대원출판, 이리유카바 최), 기독교의 고뇌(평민사, 우나무노),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동국출판, 엘리자베스 C 프로펫트), 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고려원, 홀거 케르스텐), 성약성서(대원출판, 리바이 도우링), 신약외경(성인사, 일본 성서학 연구소),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아침이슬, 엘마그루버), 예수는 없다(현암사, 오강남), 다빈치 코드(베텔스만코리아, 댄 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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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받은 메일 내용 ]---------- 제목 : 여전히 꼬인 지식   1. 아직도 불교와 도교의 차이점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겠어. 좀 다르지만 서로 비슷한 거 같아. 2. 기독교와 도교가 각각 0무극과 10무극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설명을 못하겠어. 이 두...  
10 불교의 기원 맑은바람 243 2008-09-15
안창범 교수님의 '한민족의 신선도와 불교' 제 2편 불교의 기원 Ⅰ. 서론 제1편에서 상고시대부터 우리나라에는 한인●한웅●한검의 三聖(三神)에 의하여 설하여진 신선도가 있었고, 신선도는 도●불●유 三敎一體의 합리적 성립종교임을 밝혔다. 그렇다면 노자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