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운은 동경대전과 용담유사에서 ‘하날님, 한울님, 천주님, 상제님’등의 호칭을 번갈아 쓰면서 이 우주를 주재하시는 인격적인 존재를 말하였다. 최수운은 자신이 동학을 창도하게 된 것이 자신의 개인적인 사고와 노력의 결정이 아니라고 밝혔다.
놀랍게도 1860년 음력 4월 5일에 이 우주를 주재하는 상제님(천주님, 하날님)께서 자신을 선택하여 온 인류에게 하느님의 새로운 도를 선포하라고 천명을 내렸다는 것이다.
한울님이 내몸 내서 아국운수 보전하네 <안심가> |
그렇다면 동학의 도의 연원은 어디인가? 그것은 바로 이 우주를 주재하시는 하느님이다. 물론 동학은 최수운이라는 역사의 인물이 세상에 폈지만 수운에게 도를 내리신 분은 수운의 말 그대로 상제님이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上帝)라 일컫는다.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나 또한 공(功)이 없는 연고로 너를 세상에 낳아서 이 법(法)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게 하겠다. 의심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라. ” "그러면 서도(潟)-기독교-로써 사람들을 가르칩니까?”(최수운) "그렇지 않다.” <동경대전 포덕문>
“나의 주문(呪文)을 받아서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위하게 한다면, 네가 또한 길이 살아서 덕을 천하에 펼 것이다.” <포덕문> |
동학의 창도자는 역사의 표면으로 볼 때는 최수운이었지만 한 차원 높은 우주사의 차원으로 보면 최수운을 선택하여 천명을 내리신 하느님이다.
1860년 천명을 받은 최수운은 불과 3년여 정도밖에 포교활동을 하지 못하고 1864년 사도난정(邪道亂正, 사악한 가르침으로 세상을 어지럽힌다) 이라는 죄목으로 효수되었다.
그러나 동학은 영남과 호남은 물론 충청도와 경기도까지 교세가 급속도로 확대되고, 이 후 동학은 한국 근대사의 큰 물줄기를 형성하여 갑오 동학혁명과 3.1운동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게 됨으로써, 동학을 얘기하지 않고는 한국 근대사를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위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세상에 동학이 널리 알려지면 질수록 동학의 본질은 왜곡되어 갔다.
동학은 본래 그 시작이 하느님(=상제님. 천주님)을 신앙하는 종교였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강세에 의해 새로운 무극대도가 열리며, 장차 사람으로 강세하시는 천주님을 모셔야만 3년병겁에서 살수 있다는 시천주(侍天主)신앙이었다.
그러나 동학의 2세교조 해월 최시형에 와서는 '사인여천(事人如天)' - 사람을 섬기되 하늘같이 하라 - 이라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사상으로 변질된다.
그리고 1905년 제3세교조 의암 손병희에 의해 천도교라 교명이 바뀌면서 '인내천(人乃天)' - 사람이 곧 하늘이다 - 이라는 종지가 되고 만다. 이렇게 되면 동학은 더이상 하느님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인간 중심주의의 추세에 따른 인간 종엄성에 바탕한 근대적인 인권사상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최시형이나 손병희는 최수운과 같이 하느님을 직접 만나는 강렬한 종교적인 체험을 전혀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해월과 의암에게 있어 천주(天主)는 단지 관념의 천주일뿐이요, 이 우주를 주재하는 인격적인 천주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명을 받은 최제우마저도 조선 중심적 세계인식과 유교적 교양인으로서의 한계성을 극복하지 못했고, 상제님의 실체를 체계적으로 밝히지 못하였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이 '시천주(侍天主)'를 해석함에 있어 갖는 태도는 '한울님을 모신다는 것을 다른말로 표현하면 맑고 깨끗한 한울님의 성품을 품부받게 된다' 는 식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의 내면에 한울님을 모시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본원적인 면에서 평등하다는 만민평등주의의 사상으로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최수운을 선택하시어 시천주 주문을 내려주시고 개벽세계를 선포하시게 한 상제님께서 의도하신 시천주(侍天主)의 의미는 모든 인간의 내면에 하느님의 신성이 있다는 불교적인 그런 의미가 전혀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