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의 해, 곰과 호랑이 '단군'의 진실! | ||||||||||
'사람이 되기로 하여 수행에 들어갔던 동굴 수련에서 실패한 호랑이?' | ||||||||||
리복재 칼럼 | ||||||||||
아주 옛날 어느 마을에 한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논밭에서 일을 할때는 야산에서 한마리의 짐승이 나타나 할아버지의 일하는 모습 등을 항상 지켜보았다. 할아버지는 일하는 중간 중간 쉴 때마다 담배를 꺼내 장대에 말아 넣고 맛있게 피곤 했다. 매번 이를 지켜본 짐승은 호기심이 발동 할아버지가 자리를 비운사이 담배를 훔쳐 할어버지 시늉을 내며 담배를 피워댔다. 그런데 처음 피우는 담배인지라 그만 어지러움에 그 자리에서 누워 잠을 자게 되었고 담배 불은 주변으로 옮겨 붙어 자고 있던 짐승의 몸에도 불이 붙었다. 깜짝 놀란 짐승은 기겁을 하여 연못에 뛰어 들어갔는데 불에 타다만 눌은 곳은 누렇게 되고 불에 직접 탄 곳은 새까맣게 되었으며 조금 탄 곳은 붉게 되어 지금의 털 색이 되었다해서 '호랑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호족과 웅족을 이해 못했을리 없는 고려시대 때 중 일연이라는 자가 '삼국유사'를 지으면서 단군부분에서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 위하여 환웅에게 빌어 곰은 신의 계율을 지켜 사람이 되었고, 호랑이는 그렇지 못했다는 내용을 중국 사서 고기와 위서에 기록되어 있더라는 식으로 왜곡시켜버려 우리민족과 땅을 '불국정토'로 만들 음흉한 마각을 드러내고 말아, 결국 일제와 부왜역적들에 의해 '단군 어미가 짐승 곰 이었구나'로 해서 뒤집어씌운 '단군신화'가 지금까지도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뒤흔들고 있다. 호랑이에 관한 기록 중에서 후조선 초에 쓰여진 <용제총화>에는 정월 초하루 이른 새벽에 닭이나 호랑이 등의 그림을 문에 붙인다고 하였으며, 단오 일도 쑥호랑이를 문에 거는 풍습을 기록하였다. 이러한 풍습은 도교적인 요소로서 후조선 후기까지 전해져 <동국세시기>에도 정월 초하루 날 벽에 닭, 호랑이 그림을 붙여서 액운을 몰아내는 풍습이 있음을 보이고 있다. 우리 민족은 백수의 왕인 호랑이를 경이적인 신으로 숭상하여 왔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의 사신도에는 주작, 현무, 청룡과 함께 백호를 각 방위를 수호하는 신수로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호랑이와 곰 그리고 단군과는 어떠한 진실이 숨겨져 있을까? [각주: 1931년 일제가 월간지 '혜성'을 통해 발표한 종교전선종횡기(김병순 기자)에 따르면, 당시 우리나라 종교인 현황을 알 수가 있다. 당시의 서양종교를 믿는 사람은 28만 여명, 불교(총칭)를 믿는 사람들은 16만여명이었으며, 동학(민족신앙)를 믿는 사람은 무려 610만여명이나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당시 2천만명 정도의 민족이라고 보면 민족신앙을 믿는 사람이 절대적이었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즉, 우리나라를 세우신 세 분의 국조에 대해 어떠한 종교를 통해 믿었던 것이 아니라 직접 모시고 믿었던 한민족 이었던 것이다.] 이는 본지 임록단 고문께서 '단군과 호랑이'에 관한 진실 아시나요? (부제:뒷전에 초라하게 숨겨져 있던 빛나는 참 진실) ' 에서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그 해결점을 제시했기에 옮겨 본다. 또한 현재의 불교 사찰에 가게 되면 단군 할아버지와 호랑이, 곰에 대한 진실을 알 수 있도록 자세히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제위분께서 많은 홍보와 계몽을 해주시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단군시대 또는 단군에 대하여서, 아직까지 세상에 알려져 있는 바는,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환웅(桓雄)과 지상의 웅녀(熊女), 또는 웅족(熊族)의 지배계층의 여인과의 만남으로 인하여 단군이 세상에 출생케 된 것으로 대개는 믿고있다. 즉, 사람이 되기로 하여 수행에 들어갔던 호족(虎族)과의 동굴 수련에서 승리한 웅족(熊族)의 왕녀(王女)와 환웅(桓雄)이 결혼하여 단군(檀君)을 출생시켰다는 이야기인데..., 이 것은 왜곡된 말로서 진실이 아니니, 그 실상은 이러하다.
(이 사실은 근자에 이르러 상당수의 단군 연구자들에 의하여 이해되어지고 있다.) 둘째로 당시 동방 인류사의 중심적 세력은 호족(虎族)과 웅족(雄族)이었는데, 환웅(桓雄)이 이후의 인간 세상사 경영의 주체로서 선택한 종족은 웅족이 아닌 호족(虎族)이었으며, 이후에 천손족과 호족, 웅족등은 모두 동이족(東夷族)으로 불리게 된다. 이러한 천지인(天地人)의 세 무리는 후대에 사실상 인류사의 근간을 이루게 되는 중심부류이다. 세째로 호족(虎族)보다는 숫적으로 우세해 가던 웅족(雄族)은, 후대에 이르러 세상의 흐름을 타고 일종의 반정과 같은 역전?에 성공하여 천제(天帝)의 지위를 양위받게 되니, 그 이후로 인류의 역사는 서서히 웅족중심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이는 우주와 세상의 기운 흐름이 땅(地)의 시대 즉, 음(陰)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호족과 웅족은 이후로 오랜 세월을 서로 각축아닌 각축을 벌이며, 동이족내의 형제사이 이면서도 마치 원수 아닌 원수같은 처지로 지내게 되는데, 한참의 후대에는 자신들이 어느 부류인지도 정확히 모를 정도로 혼혈 되고 섞이기도 한다. 현재까지의 세상은 음(陰)의 세상으로 웅족과 기타의 세력이 주도하여 오고 있다. 허나,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선현들은 도(道)에 통했던 분들이었던지라, 훗날에 음(陰)의 기운이 점차 강성해 짐에 따라 세상이 어지럽게 돌아가, 모든 것이, 혼돈과 거짓속으로 묻히게 됨을 미리 알수가 있었고, 그러한 것들을 대비하여 최소한의 진실보존장치를 준비해 두게 되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우리 동이백성들의 "삶과 생활방식"속에 도(道)와 참된 역사의 진실들을 은밀히 묻어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네 삶속엔 비록 허름하고 초라하나, 뛰어난 문명의 진수가 숨어 있게 되고, 우리네 말(한글, 한문) 속에도 그러한 역사의 진실과 문명의 지혜가 살아있도록 하는 것이엇다. 또 인격적으로 사람이 덜 되었거나, 아예 되지 못한 못된 자들에게는 인류가 깨우쳐 놓은 대부분의 뛰어난 정신적인 비술, 법이나 물질적 기술등을 함부로 전하지 않는 것이었다. (非人不傳) 즉, 인류(人類)에 영향을 미칠만한 정도의 중요한 비술(秘術)들은, 반드시 일정 수준 이상의 상당한 깨달음을 가진 자들(대체로 천손족과 호족, 그리고 일부의 웅족)만이 알 수 있게 하고, 일반의 속인들은 이에 근접치 못하게 하여 어리석은 자들에 의한 인류의 환란을 어느정도 방비하게 하여, 이것들은 소수의 지혜자들에게만이 은밀히 비전 전승 되어 면면불절 간신히 맥을 이어 내려왔다.
이후 밝음의 때가 이르게 되면, 자연스러이 뛰어난 선조들의 후손인 동이족의 손에 의하여 특히나 그중에서도 가장 지혜(智慧)가 밝은 천손족(天孫族)의 후예(後裔)들에 의하여 세상에 묻혀버렸던 그 모든 것들이 다시금 빛을 발하여 드러나도록 하였던 것이다... 어느 나라나, 이와 유사한 신화와 전설 같은 이야기들은 대부분 존재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신화와 전설은 그 내용에 있어 세밀함과 정확함, 진실성이 매우 높고그 의미가 깊으며, 지극한 순수(純粹)함과 권선징악(勸善懲惡)이 매우 뚜렸하다. 지구상의 여타 민족의 신화나 전설은 우리네와 사뭇 그 정서를 달리한다. 특히나 서양(西洋)의 그것들은 파괴와 섹스, 잔인, 살상, 비인간적인 것...등이 그 중심을 이루며, 가까운 일본(日本)의 경우도 비록 우리와 제법 흡사한 면도 없지 않으나, 다분히 잔인하고 살상적이며, 영적모습으로는 요괴적인 면이 많이 있다. (참고로, 일본의 중심 혈통은 우리네 동이족 선조의 일부, 특히 후대의 백제계(百濟係)이다.) 세상의 많은 신화적 이야기들은 사실상 그 근원에 우리의 창조적 상황과 인류문명의 시작과 흐름의 과정등을 담고 있는 것이 많으나 아직은 이러한 실체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우리 선조대의 찬란한 문화와 문명의 영향을 받은 곳은, 세계의 도처에 산재해 있다.) 다시, 본 이야기로 돌아가서... 우리나라의 전통 불교를 한번 살펴보자. 우리의 불교(佛敎)는 그 모습이 인도나 티벳, 지나(중국), 및 여타 지역의 일반불교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특색을 띄고있다. 즉 우리의 불교는 우리만의 것이라고 할 수있는 독특한 불교문화와 모양새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원래의 불교가 아닌, 마치 다른 종교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특이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 특징은 우선, 모든 사찰의 중심 자리엔 가장 우두머리격의 본존(本尊)을 모시게 되어 있는데, 그 장소의 이름을 대웅전(大雄展)이라고 명칭하여, 비록 그 안에 부처를 앉혀 놓기는 하였으나, 사실상 그곳이 환웅(桓雄)의 집이라는 사실과 이 세상의 어떤 신들보다도, 환웅이 우선한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다. 또한 사찰의 가장 높은 곳에는 반드시 산신각 (삼성각 또는 삼신각이라고도 한다)을 두어 절의 최고 신이 되는 부처와는 또 다른 산신령(山神靈)을 받들어 모시고 있다. 이 산신령(山神靈)이 조금전에 말한 대웅, 즉 환웅<한웅천제 - 단군 한배검>인 것을 아는 자는 지혜가 밝은 사람일 것이다. 사찰의 본당인 대웅전에는 속인들의 눈을가리기 위해 어쩔 수없이 부처상을 대신 앉히고 이름만을 대웅전이라하여 그 본당의 사실적 주체를 이름으로서만 암시 하였던 환웅이 이 산신각속에서는 실체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단군에 대한 연구를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우리 단군들(환국 배달국 고조선을 망라하여)이, 그 사명을 다하고 어디로 떠나 갔는지 알 것이다. 환국시대부터 배달시대와 고조선시대 등 모든 시대를 막론하고, 우리의 뛰어난 숫컷 즉 환웅 또는 단군들은 그 임기를 마친 뒤에, 대부분 산으로 들어가 버렸다. 즉 산신(山神)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자고로 환웅(桓雄)은 모두 산신(山神)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때에 함께 산으로 들어간 일부의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바로 단군들과 같이 정사를 돌보았던 가장 측근의 호족(虎族) 사람들이었다. 이미 세상의 이치와 진리를 알았고, 상당수준의 깨달음을 얻은 이사람들은 속세의 미련같은 것은, 한 터럭 만큼도 남아있지 않았으므로 기꺼이 또 당연한듯이 속(俗)을 떠났던 것... 고로 산신각에는 어김없이 산신과 함께 호랑이가 항상 함께 등장하고 있는데 이 호랑이는 바로 호족의 이름이며, 이들은 언제까지나 산신을 지키는 수호자이며 동반자요 심부름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