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개석 총통이 인정한 대륙 백제와 고조선역사
일찍이 단재 신채호 선생은 중국의 역사왜곡과 날조를 통렬하게 비판한 바 있거니와 이러한 비판은 오늘날에도 고스란히 유효하다고 강조되어야 마땅하다.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해서는 주은래(周恩來) 전 수상도 지적한 바 있다.
주 전수상은 동북 지역의 역사가 조선인에게 귀속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인식또한 시대상황에 따른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중국 지도층의 역사인식과 관련해서 백범 김구 선생의 일화가 문득 머리에 떠 오른다.
일제의 대륙침략에 따라 중경(重慶)으로 후퇴한 장개석(蔣介石) 총통은 함께 피난 온 상해임시정부의 김구 주석 일행을 위로하기 위해 만찬에 초대했었다고 한다.
이때 장 총통은 자기 고향이 옛 백제 땅이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우의를 다졌다고 한다. 장 총통은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는 동지적 입장에서 이런 역사인식을 말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들은 김구 주석은 충격과 함께 자괴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고 뒷날 술회한 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백제가 중국 땅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김구 주석은 전혀 알지 못했었다고 한다.
장개석의 고향은 양자강(揚子江) 남쪽 절강성(浙江省)이므로 옛 백제는 양자강 이남지역까지 지배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서량지나 임혜상 같은 양심있는 중국사학자들은 중국역사의 상고사는 한민족의 역사라 말한다.
그리하여 가시마 노보루같은 일인학자는 한(漢)족은 기껏해야 한(韓)을 흉내내어 이름 붙인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상고사는 밝혀져야 한다.
중국의 식자층은 양자강 유역이 전통적으로 동이 9족의 것임을 너무나도 잘 안다.
장개석은 이 사실을 너무 잘알고 있어서 임정의 이시영 전 부통령에게 "역사는 제대로 알고 독립운동하시는가 " 하고 물었던 것이다.
한데 오늘날의 우리나라 역사교과서에는 어느 한구석에도 이런 기록이 없다. 오늘날의 역사교과서 뿐만 아니라 김구 주석이 듣고 배웠던 당시의 역사책에도 이런 기록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 기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하게 왜곡되었음을 반증해 주는 하나의 예증에 불과하다.
[출전 : 시대소리웹진 역사방 www.sidaesori.co.kr ]
이시영도 김구도 몰랐던 대륙조선사의 정체와 왜곡
"우리나라 초대 문교부장관을 역임한 안호상(1902-1999)박사가 문교부장관 재직시에 중국의 저명한 문학자이며 평론가인 림어당(1895-1976) 선생을 만나 여담으로 "중국이 한자를 만들어 놓아서 한자를 사용하는 우리 나라까지 문제가 많다" 고 하자 림어당 선생은 "그게 무슨 말입니까 ? 한자는 당신네들 東夷族 조상이 만든 문자인데 그것도 모르고 있소?" 라고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한글재단 이사장인 한갑수 박사가 미국 공군지휘참모대학에 입교했을 당시 같은 입학생인 중국 학자 서량지(徐亮之)가 한박사를 찾아와 말하기를 "귀국 한민족은 우리 중국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위대한 민족인데 우리 중국인이 한민족의 역사가 기록된 포박자(抱朴子)를 감추고 중국역사를 조작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으므로 본인(서량지)이 학자적 양심으로 중국인으로서 사죄하는 의미로 절을 하겠으니 받아 달라며 큰 절을 올렸다." 고도 한다
1930년대 장려화와 그 문하생들의 노력으로 중국 고금지명대사전이 편찬되면서 우리 조선의 역사가 완전히 중국인의 입맛에 맞게 조작되었으며 해방후 백화사기의 편찬으로 다시 한번 조선의 역사는 지나인들에 의하여 삭제 왜곡 조작이 되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위에 림어당, 서량지 같은 학자들은 그나마 양심이 있어서 자기들이 역사를 수정하였노라고 실토하고 있지 않는가. 서량지 같은 사람은 그의 저서 중국사전사화를 통하여 모든 중국의 역사를 동이족의 것으로 인정하였던 사람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1930년대 미국에서 출세한 중국인 학자들과 해방후 홍콩 대만 등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조선역사말살작업이 진행되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산해경에 나오는 조선고대사 약 4천 2백년전에 쓰여진 책이라하는 산해경(山海經)이라는 중국 고대 책이 있다. 후대에 학자들이 원문에 해설을 붙여 놓았다.(약 1천 7백년전 인물인 중국 진(晋)나라의 학자 곽박(郭璞) 등) 그 산해경(山海經)에 보면 고조선에 대한 글들이 나온다.
동해의 안쪽, 북해의 주변에 나라가 있으니 조선천독(朝鮮天毒)이라 한다. 곽박의 말은 고조선에 대한 극찬이다. 천축국(天竺國)의 竺 자는 [독 (두터울 독)]으로도 읽힌다.
[해석] : 부도(浮屠)가 이 나라(조선)에서 나왔다. (浮屠出此國中也) 그러한 학자가 고조선이 천축국이라고 하고 있다. 도대체 곽박은 왜 그랬을까. 곽박 뿐만이 아니다. 왕념손(王念孫)도 덧붙여 말한다.
이와 같이 왕념손(王念孫)도 곽박의 말이 맞다고 하면서 홍명집(弘明集)이라는 약 1천5백년전 중국 양나라때의 유명한 불교서적을 인용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4천2백년전 [산해경 원문]에서도 불교가 [만주 배달문명]에서 나왔다고 [조선천독(朝鮮天毒)]이라는 말을 쓰고 있으며 1천5백년전 중국의 불교인들도 역시 불교가 원래는 [만주배달문명]에서 나왔다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가부좌를 튼 채 두손을 다소곳이 모은 이러한 형상은 중국 다른 지역에서는 출토되지 않는 것인데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바로 불교의 수도법 중 하나인 [가부좌]와 [손모으기]이다!
석가모니께서는 3천년전 분인데 이 여신상은 그보다 2천년 더 전인 5천년전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 당대의 유명한 학자였던 곽박이 그토록 단정적으로 "고조선(배달국 포함)은 천축국이다. 불교 (붓다= 부처)는 고조선에서 나왔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 : 아도기라(阿道基羅)>를 보면, 고구려의 아도화상(阿道和尙)의 어머니 고도령(高道寧)이 그의 아들 아도를 신라에 보내면서 말한 내용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이곳 고구려는 불법을 알지 못하나, 그 나라(신라)의 경도(京都)안에는 절터 일곱 처가 있으 또 고려 충숙왕 15년에 인도의 108대 조사(祖師)인 지공선사(指空禪師)가 양주(楊州) 천보산(天寶山) 회암사(檜巖寺)에 와서 그 절터를 둘러보고 말하기를, "상세7불(上世七佛) 시절의 대가람(大伽藍) 터이다" 라고 얘기를 한 것도 있다. 한국은 [고인돌의 종주국]이다.
즉 석가모니께서 불교를 일으키기 수 천년전에 고대한국(환웅 배달국)에서는 이미 불교가 있었다는 얘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