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 ‘이(夷)족’ 아시아족 뿌리…대한민국의 자존심 |
우리민족은 이족’이라고 하여 모든 아시아족의 뿌리(根)라고 하고, 아시아 역사의 시작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고고학 발굴로도 약 1만년의 역사가 이미 내몽고 적봉(赤峰)지역으로부터 증명되고 있다.
사실은 수십만년 전부터 현재의 우리나라 땅에 공룡과 같이 인류는 살았었고, 기록이 전해지지 않아 발굴에 의지하고 있지만 구석기와 신석기 유적 유물이 우리나라의 도처에서 발굴되고 보니 우리민족의 역사를 다시 봐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충북대학교 발굴팀이 발굴한 “두루봉 유적”에는 40~50만년 전 코끼리상아, 쌍코뿔소, 원숭이, 사슴, 하이에나, 멧돼지 등의 뼈가 발굴되어 당시의 기후변화에 많은 연구가 필요함을 느끼지만, 가까이는 7만년 전의 사람들이 살던 유적과 동물들을 잡아먹고 뼈를 한곳에 모아둔 유적들은 요즈음의 쓰레기 처리장을 보는 듯하고, 4만 5천년 전 5세가량의 어린아이 가슴에 가을 국화꽃이 뿌려져 있는 상태로 발굴된 ‘흥수아이’유적, 2만년 전의 유적들이 계속 발굴되고, 드디어는 인간이 생활하기 위해 기본으로 먹어오던 쌀의 재배지가 밝혀지면서 전 세계의 이목은 한국으로 쏠리기 시작하였다. 바로 충북 청원군 옥천면 소로리 157번지에서 2003년 10월 22일 ‘충북대학교 이융조(선사고고학)
교수팀’이 발굴한 1만 5천년 전의 재배 탄화볍씨 59톨이 발견되면서, 이를 영국의 BBC 방송(인터넷), 필리핀 ‘제4회 국제벼유전학술회의’(전 세계 500여명 학자 참여),
미국 방사선 탄소연대측정기관 지오크론(Geo chron), 한국 서울대학교 AMS연구팀 등의
공식발표로, 그동안 중국의 호남성 지역의 볍씨 발굴이 제일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중국보다 약 3천년이나 앞선 시기에 벼를 재배하면서 생활하였다는 선조들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세계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고인돌’은 우리나라가 전 세계의 절반가량이나 된다는 사실은 모든
문화와 문명이 상고대 이전 이곳으로부터 이웃으로 퍼져 나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거나 발굴된 세계최초를 살펴보면
1. 선박(경남 창녕 부곡면) - 기원전 6천년 이전
2. 고래잡이(경남 울주군 반구대) - 기원전 6천년 이전
3. 신석기 시대 유물(전남 장흥) - 기원전 1만 8천년 이전
4. 토기(제주도 고산리) - 1만 수천년 이전
5. 고인돌(전남 화순) - 기원전 6천년 이전
6. 쌀(재배 쌀 : 탄화 미) - 기원전 1만 3천년 이전
7. 빛살무늬 토기(강원도 양양) - 기원전 6천년 이전…
우리 민족의 선민인 동이족의 일파인 선비족 나라 ‘진(秦)시황’까지 만해도 중국의 동북삼성과 한반도는 신선들의 나라로서 ‘불로장생의 명약’이나 구하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고구려라는 거대한 나라를 상대해 보려고 같은 뿌리종족인 선비족 ‘수(隨)나라’가 여러 번 공격하다가 제풀에 지쳐 망하고, 당나라도 고구려의 속국이었던 신라와 힘을 합쳐, 역사 깊은 고구려를 상대하였는데, 한문자를 중국 한나라 쪽에서 수입한 것처럼 모든 표현을 하고 있는 국사교과서의 ‘한(漢)자’는 ‘가림토(다)’와 같이 고조선 훨씬 이전부터 우리민족이 사용해오던 문자였지만, 뜻글자(표음문자)이니 일반백성들이 사용하기가 불편하여 한글의 원형인 가림토(다) 문자로서 보완하여 사용하였다.
한자는 본래부터 우리민족(은나라 이전부터)이 사용하던 문자인 것인데 마치 수입한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기원전 3500년경의 수메르민족은 아시아로부터 왔다. 수메르민족은 단군조선을 어머니 나라라고 하였다.
수메르인들의 언어도 우리와 같은 교착어(膠着語)인데 머리가 검고 곧으며 언어의 어법과 생활 습성이 단군조선과 동일하다.
예) 교착어 = 접두사 + 접중사 + 접미사가 있으니
* 韓國사람은(접두사<표의문자> + 접중사<표음문자> + 접미사<토씨>) 나라를(표음문자 + 토씨) 위하여(표음문자) 忠誠을(표의문자 + 토씨) 다한다(표음문자).
* 韓國사람은(표의문자 + 표음문자 + 토씨) 東夷族이다(표의문자 + 표음문자).
* 한江(큰강 : 표음문자 + 표의문자), 한川(큰내 : 표음문자 + 표의문자)
* 수메르어와 우리언어의 비교
Gir = 길(路), Bad = 밭(田), Nim(존칭어) = 님, Abba = 아빠, Umma = 엄마, Abi = 아비…
한족의 시조를 황제헌원(B.C 2692~B.C 2592)이라고 하며 실제적인 한족의 나라는 한고조 유방이 세운 한나라(B.C 206~AD 8) 때부터 라고 젊은이들은 배우고 있다.
왜냐하면 공자님과 맹자님이 말씀마다 성인의 시대라고 하던 요(堯)임금(B.C 2357~B.C 2256)과 순(舜)임금(B.C 2255~B.C 2208)은 모두가 이족(夷族)인데 요임금은 북적(北狄) 사람이라고 송나라 때의 저서 ‘태평어람’에 적혀있고, 순임금은 동이(東夷) 사람이라고 ‘맹자’ 책에 기록되어 있다. 동이나 북적이나 다 같은 뿌리인 이족인데 동쪽에 살았다고 하여 동이(東夷)라고 하고 북쪽에 살았다 하여 ‘북적’이라고 하였다.
즉 중국 사람들이 자기들은 중앙(중원 : 섬서성과 하남성 일대)이라고 표현하고 동서남북으로 나누어 서쪽은 서융(西戎), 남쪽은 남만(南蠻)이란 표현을 사용하였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나, 그들은 잘못된 줄 알면서 모자란 역사를 채우기 위해 꼭 표현을 이렇게 하였다.
그들 민족의 뿌리이며 문화 역사를 만들어준 사람들이 이(夷)족임을 알면서 말이다.
요임금과 순임금을 이어 받은 사람은, 하(夏)나라를 세운 우(禹)임금인데, 이분은 단군(지도자의 명칭)조선의 수도가 있는 동북삼성의 ‘도산국’으로 장가들어 실패한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고, 치산치수 하는 법을 배워 13년간이나 고생하다 성공하여 순임금으로부터 왕위를 넘겨받아 하나라(BC 2205~BC 1767)를 세웠다.
그 뒤 은(殷)나라(상(商) : BC 1766~BC 1123)까지는 나라 안에 덕(德)이 있는 성인에게 나라를 물려주는 전통이 있었으며, 모든 백성들이 하늘에 직접 제사지내는 풍속이 살아 있었다.
은나라가 있던 터에서 거북의 배 쪽 껍질에서 글자가 있는 것을 발견하여 이 글(契)자가 한자로 만들어진 초기글자(금문)라는 것을 많은 학자들이 밝혀내고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은나라를 혁명으로 이은 주(周)나라(BC 1122~BC 771)부터 성인에게 나라를 물려주지 않고 자식에게 왕위를 대물림하면서, 하늘에 제사지내는 모든 행사를 국가에서 주관 하도록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즉 왕권독재의 시작이 ‘주나라’부터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춘추전국시대(BC 770~BC 221)를 거쳐 진시황의 진나라(BC 246~BC 206)는 동이족계인 선비(鮮卑)족이 세운 나라이니 굳이 ‘동이족’ ‘한족’을 따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든 문명과 문화의 뿌리가 ‘이족’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구분하지 않았다.
다만 공자 같은 분은 어려서부터 불우한 가정(아버지가 70세에 어머니가 16세 둘째 부인)에서 태어나 어렵게 살아왔기 때문에 보호국인 ‘주나라’의 많은 영향을 받아 주공을 하늘같이 여기고 받드는 자세가 이미 굳어져 있었다.
그래서 공자의 책은 ‘춘추필법’으로 주나라 왕 위주로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주나라 주변에 있는 많은 동이족의 나라들 중 ‘조선(朝鮮 = 아사달 = 광명의 땅)’같은 큰 나라는 관심 밖이었다가, 하도 변란이 많고 살아가기가 어려워지니 노후에는 ‘동이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을 정도이다.
한족의 시조라고 만들어놓은 ‘황제’는 지금의 산동성 지역에 있었던 ‘유웅국 군주 소전의 둘째 아들’이라고 한(漢)나라 때의 역사학자 ‘사마천의 사기오제본기’에 정확하게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곰을 토탬으로 하는 나라 지도자의 둘째 아들이니 동이족 후손임이 확실하다.
(史記卷一 五帝本記 黃帝者 爲五帝之首 有熊國君 小典之次子 生黃帝於壽丘 在魯東門之北 今在?州 阜曲縣東北之十里)… 황제는 유웅국의 수구에서 출생했는데 수구는 노나라지방의
동문북쪽 지금의 연주 부곡현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실이 이러하니 현 중국 사람들 특히 중국 공산당은 ‘한족의 시조’로 받들어 모시는 황제뿐 아니라 같은 시기의 ‘자오지천왕(치우천왕)’과 500년이나 앞선 시기의 ‘염제신농씨’를 같은 한족의 시조로 새로 조작하여 모시고 있다.
한자(漢字)의 뿌리인 ‘갑골문자’가 동이족 지역인 ‘은나라 터’에서 발굴되었고 미국, 일본, 중국의 약 500명이나 되는 많은 학자들이 갑골문을 연구하여 그 논문이 3천여 편이나 되지만, 우리나라 학자는 아직 한 사람도 선조들이 만든 문자인 갑골문에 대한 논문이 한 편도 없는 것이 부끄러운 현실이다.
‘은나라’ 때 수도를 여러 곳으로 옮겼는데 옮긴 곳마다 장소의 이름을 ‘밝(? : 서울경 + 집택 : 밝은 땅. 광명 땅 = 아사달)’이라고 하였다고 역사학자 심백강 박사는 증언하고 있다.
송나라 때 고려에 전해졌다고 기록되어 있는 ‘보허자(步虛子: 허공을 거닌다)’ 라는 곡은 도교의식의 음악이지만, 사실은 고조선 때부터 전해 내려온 세계 최초의 우리 민족음악인데 수나라와 당나라 때에도 57자의 곡이 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고려 때 송나라로 보낸 책 중에 ‘영추경(靈樞經(침 : 鍼))’이 있었는데 처음으로 침에 관한 책이 송나라로 전해졌고, 춘추시대 ‘황제내경’에도 ‘침은 동방의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송사 : oo 高麗所獻 黃帝鍼經 于天下…)
고려선종 9년(1092 :
고려사 선종세가<宣宗世家), 송나라 철종 원우(元祐) 7년 “고려의 사신 황종각(黃宗慤)이 황제침경을 전했다. 8년 1월 경자에 조서를 내려 고려에서 바친 <황제침경>을 천하에 반포하게 하였다.”
이러한 훌륭한 선조들의 문화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지혜가 없이는 나타날 수가 없는 것들이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대륙에 흩어져 살던 많은 소국(小國)들이 조선(朝鮮)을 바라보면서 기록하기를 ‘천손’ ‘대인’ ‘군자’ ‘백의민족’ ‘도둑이 없는 나라’… 등의 표현을 하였으며, 일본 또한 일본을
건국하게 해준 ‘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를 ‘하나님’이라고 역사서인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기록해 놓고 있다.
지금의 중국 수도 북경은 거란족(契丹)의 요나라(遼 : 916~1125) 남쪽수도(南京)였으며 당시까지만 해도 북경을 발음할 때 일음절로 ‘북경(北京)’이라고 말하였는데, 송나라(宋 : 960~1279) 말경부터 ‘북경’에서 ‘베이징’으로, 입성발음인 ‘북’이 일음절에서 이음절로 ‘베이’ 로 발음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즉 북(北 : 필묵절<必墨切 : 발음기호>. 입성발음<겨울발음 : 동이족발음>. ㅍ+■ㅜㄱ = 푹)
중어발음 = 베이(북 : 발음이 안 됨). “ㄱ” 받침이 없어졌다.
* 일(一 : 익실절<益悉切 : 발음기호>. 입성발음<겨울발음 : 동이족발음>. ㅇ+? = 일)
중어발음 = 이(일 : 발음이 안 됨). “ㄹ”받침이 없어졌다.
* 십(十 : 식입절<寔入切 : 발음기호>. 입성발음<겨울발음 : 동이족발음>. ㅅ + ■ㅣㅂ=십)
중어발음 = 쓰(십 : 발음이 안 됨). “ㅂ” 받침이 없어졌다.
* 한자는 사성(4聲)발음으로 하여야 소리의 높고 낮고 길고 짧고 하는 것을 조절하기 때문에, 평성(平聲)발음은 봄소리, 상성(上聲)발음은 여름소리, 거성(去聲)발음은 가을소리이며, 입성발음은 겨울소리를 대표하여 말한다.
글자의 받침이 <ㄱ, ㄹ, ㅂ>인 것은 모두<입성발음>이 된다.
‘입성발음’은 바람이 많이 불고 시끄러운 추운겨울에 소리를 잘 전달하기 위해 발음을 ‘세게 짧게’하는 것이다. 겨울이 없는 곳에서 자란 사람들은 입성발음을 하기가 어렵다.
발음도 할 수 없는 문자는 만들 수조차 없기 때문에 유일하게 ‘동이족’만이 한(漢)문자를 만들 수 있는 민족이 되며, 동이족이 세운나라라고 세계가 인정하는 “은(殷)나라 터”에서 처음으로 갑골문자가 발굴되었던 것이다.
543년 양(梁)나라 때 처음 만든 한자 옥편에는 약 35%의 글자가 동이족만이 발음할 수 있는 ‘겨울발음인 <입성(入聲) 발음>’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입성>발음을 할 수 없는 한족의 글자가 아닌, 동이족이 만들었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된다.
한자 약 5만자 중에 현재 중어(中語)로 발음되는 것이 약 6천자인데 이것도 당나라와 송나라 때 제일 많이 변했다고 한다.(
국어고전문화원 윤경혁 원장 증언)
송나라는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에 매년 조공하였다.
80만 대병으로 침략한 거란족을 고려의 장수 서희는 해박한 국제정세와 역사인식으로 고구려를 이어받은 ‘나라’임을 설명 설득하여 옛 고구려의 땅 일부 육진을 회복하기까지 하였다. 그 후 물러갔던 거란족의 3차 재공격을 ‘강감찬 장군’이 물리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상고대 중국 지역으로부터 퍼져나가기 시작한 우리민족은 한편은 인도 쪽으로 내려가 인도인들의 시조가 되었고, 서쪽으로 계속 나아가면서 돌궐(터키)족을 탄생시키고, 헝가리와 불가리아를 만들고 핀란드를 만들면서 이라크 지역의 갈대야 우르 지방으로 진출하였다.
지금도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서 서남쪽 약 70km를 내려가면 갈대가 많은 동네인 ‘갈대야 우르’지역이 있는데 ‘우르’라고 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동쪽은 약 1만 5천년 전부터 일본 북해도 쪽으로 이동해 간 “아이누 족” 또한 우리민족의 일파인 것으로 밝혀지는 것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에서 발견하였다고 언어역사학자인 박병식 선생은 책으로 밝혔다.
* 동생 = 아그, 아저씨 = 아자포, 알타(痛) = 알가, 앞으로 간다 = 앞가스, 자기 자신 = 지 = 시
일본 전체가 가야, 신라, 백제, 고구려의 속국들로 가득 차 있으면서 그들이 사용하는 말 또한 우리 고어가 전부인데, 647년 신라 김춘추가 당나라로 건너가기 일 년 전에 일본 왕가를 방문하여 서로 외교관례로 대화한 내용들이 있다.
그곳에는 김춘추가 인물이 잘 생겼고 대화도 잘하는 것으로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다.
660년 한반도 백제는 망하고, 중국에 있었던 백제는 나중에 1200년대 원나라 때까지도 건재하였다고 ‘만주원류고’에 기록되어 있는데, 670년경부터 일본말에서
모음이 셋(ㅓ?ㅐ?ㅡ)이 빠져서 우리와는 말이 달라지게 되었지만, 그래도 우리말과 비슷한 단어들이 아직도 살아있다.
* ‘졸졸’ 따라 다닌다 = 조로 조로, ‘슬슬’ 끌어당긴다 = 스루스루, ‘터벅터벅’ 걷다 = 도보도보, 냄비(국 끓이는 것) = 나베, 그래도 마(경상도 말) = 게레도모, 마마(경상도) = 마마…
가야의 김수로왕 7아들들이 규슈의 가고시마에 도착하여 7곰(김=검=곰)의 마을을 형성하며 살았는데 지금도 그 동네의 산 이름은 “한국악(韓國岳= 가라꾸니 다께= 가야의 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6대 후에 동북쪽(일본 본토)으로 정벌을 하여, 제2기 야마도(라마터 = 야마터 = 야마도 = 경북 고령 우가야) 정권을 세웠고, 거의 비슷한 기간(157년 신라8대 아달라왕) 경북 포항에서 해류를 타고 ‘시마네현 이즈모(出雲)’에 도착한 연일만 오씨(연오랑)가 ‘이즈모’에서 오나라를 세우고 7대를 통치하였다.
이곳 이즈모국은 ‘석탈해’가 태어난 곳이며, 일본씨름의 원조인 ‘노미노 스쿠네<노미마을의 석씨 : 野見宿?>’와 일본 학문의 신으로 받들어 모시는 ‘스가하라미지자네<管原道眞 : 781년>’도 이즈모 출신인데, 석탈해는 ‘썩 일찍 도착했다고 하여’ “석”이 되었고, 이즈모의 옛 이름이 ‘스가하다 = 좋다’는 뜻을 따라서 “스가하라(管原)”라고 이름을 정하였다고 박병식 선생의 책 “어원으로 밝히는 우리 상고사<용인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발행>”에 기록되어 있다.
지금 일본 천황의 성씨는 “김씨(金)”이며 일본 국가가 “천황의 나라는(김씨의 나라는)”이며, 일본 국호론(지명대사전)에는 “일본(日本)이라는 말이 삼한(마한, 진한, 변한)사람들이 사용하던 말인데 그 뜻이 너무 아름다워
만년에 변치 않을 국호로 삼는다.”라고 적혀있다.
캐나다 인디언들의 말속에도 우리말들이 많다.
그들은 우리 쪽에서 오랜 옛날 건너간 우리와 같은 한 뿌리이기 때문이다.
쌀 = 살, 이랑, 고랑, 호미 등등… 너무나도 많다.
이렇게 동과 서쪽으로 우리민족이 옮겨간 역사가 시작 된지 대략 1만 5천년이 넘는다.
이제는 국사교과서에 우리 선조들이 유럽이나 서부 중국지역에서 왔다는 등의 애매모호한 표현들을 하지말자.
말과 언어. 의?식?주 그리고 문자문화가 증명해 주듯 괜히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지 꼭 중국 어디에서 왔다는 등의 표현으로 얼버무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우리민족은 지혜로운 민족이다.
어떠한 문명도 문화도 우리 쪽으로 오면 더욱 더 발전하고 빛나는 문화와 문명으로 만들어진다. 아시아의 종가집이요 큰집은 땅이 넓다고 해서가 아니고 홍익인간 정신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hanminjock1944@hanmail.net *필자/강동민. 한민족문화연구원 이사장.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