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 수행은 어떻게 하나요? 수행이 뭘까요? 수행이란 닦는 것이다. 뭘 닦는 것일까요?
기존종교의 수행관을 주욱 돌아보자. 유교는 성인聖人을 목표로 몸을 닦는(修身) 수행관을 가지고 있다. 유교의 수행관은 성誠, 정일집중精一執中, 건중건극建中建極 등의 용어로 정리된다. 건중건극 같은 단어는, 한 인생의 수행의 지표로서 더 없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불교의 수행은 깨달아 부처가 되는 것으로 집약된다. 불교의 수행법은 좌선이니 화두니 복잡다단하지만, 대체로 마음법을 바탕으로 인생의 본질문제를 참구하는 수행법이다.
기독교의 수행법은 하나님에게,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여, 믿고 신앙하는 것에 있다. 하나님만 잘 섬기면 천국에 이르고, 개인의 인격도 완성된다고 본다.
증산도의 수행법은 어떤 것일까? 증산도의 수행법은 인간 삶과 관련한 총체적 수행법이다. 수행인 것도 없고 수행 아닌 것도 없다. 삶의 모든 것이 수행이다. 앉아서 명상하는 것도 수행이요, 결혼해서 사는 것도 수행이요, 사회생활하는 것도 수행이다. 삶과 수행이 따로 떨어져있지 않다고 본다. 자아성숙, 영혼성숙의 길은 여러갈래가 있는 것이다. 앉아서 주문만 읽는다고 수행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생활 속에 인간삶의 보편성과 공익성을 획득해야 사람은 성숙되는 것이다. 그래서 증산도에서는 가족과 사회를 떠나 산속에서 홀로 수행하는 것을 옳은 길은 아니라고 본다. 사람과 사회를 떠난 산속에서 구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증산도의 수행법은, 당연 증산상제님께서 가르쳐주신 수행법이라고 본다. 그러면 증산상제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수행법을 가르쳐주셨을까?
증산도의 첫 번째 수행법은 “천지이치天地理致”를 배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우주간의 모든 만물은 천지를 바탕으로 하여 소생되었다. 내가 무엇인지, 인생이란 무엇인지를 알려면, 가장 먼저 인간과 삼라만상의 부모격인 천지天地부터 알아야 한다.
천지를 알아야 나를 알 수가 있다. 증산도 우주관의 주요한 명제이다. 증산도는 천지이법, 천지부모, 천지조화, 천지개벽, 천지공정公庭, 천지도수, 천지공사, 천지사업 등 “천지”를 배우는 곳이다.
증산상제님께서는 여섯 살 때 아버지가 글을 가르치려고 훈장을 데리고 오자, 상제님께서 스스로 하늘 천자와 따지 자를 읽으시고, “하늘 천자에 하늘 이치를 알았고 땅 지자에 땅 이치를 알았으면 되었지 더 배울 것이 어디 있습니까” 라고 말씀하시며 훈장을 돌려보내도록 하신 적이 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또 어릴 때에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들이 뭐하느냐고 묻자, 상제님께서 “나는 천지이치를 배운다네.”라고 대답하신 적이 있다.
증산상제님께서 증산도를 한다는 것은 “천지이치”를 공부하는 것임을 밝혀주고 계신 것이다. 인간과 세상일을 알려면, 인간의 바탕을 이루는 천지부터 알아야 되지 않을까. 옛말에 상통천문上通天文과 하찰지리下察地理라는 말이 있다. 천지이치를 깨달으면, 도가 통한다는 뜻이리라.
두 번째 증산도 수행법은, 천지와 합일하는 수행을 하는 것이다. 증산도는 어떻게 우주의식과 합일하는 수행을 하는가?
증산도는 태을주를 읽는다. 태을주의 태을천太乙天은 하늘 중에서도 가장 근원하늘을 일컫는다. 우리가 태을천을 소리 높여 읽으면, 우주의 가장 근원 하늘과 합일하여, 내 생명은 광명으로 인도된다.
증산상제님께서 천지와 내 마음이 합일하는 공부를 이렇게 밝혀주신 적이 있다.
“天者는 理也라 昭昭之天이 合人心之天하니 理는 原於天 具於人心하니라. 하늘은 이치이니라. 밝고 밝은 하늘이 사람 마음 속 하늘과 부합하니 이치는 하늘에 근원을 두고 사람의 마음에 갖춰져 있느니라.”(도전2:90)
증산도 수행의 세 번째는, 하느님을 모시는 수행이다. 진리의 근원은 무엇인가? 하느님이시다. 우리 생명의 근원은 무엇인가? 하느님이시다. 우주를 다스리시는 주체는 누구이신가? 하느님이시다.
수행이란 무엇인가? 하느님을 모시는 것이 수행이다. 수행 중에 가장 큰 수행은 하느님을 모시는 수행이다. 인류사상 어떤 수행도 하느님을 모시는 수행보다 큰 수행은 없다. 내가 개인적인 호흡수행은 하지 않더라도, 하느님을 성심으로 모신다면 내 인생은 진리와 광명의 세계로 인도될 것이다.
증산도 수행의 네번째 방법은, 내가 세상을 위해, 남을 위해 봉사하는 수행법이다. 수행한답시고 벽만 바라보고 있다든지, 하늘이치 깨친답시고 이론적인 몽상 중에 있는다고 해서 공부의 진도가 잘 나가는 것은 아니다. 왜? 전생의 업이 많으면 수행의 진도가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내 업을 닦아야 수행이 열린다. 내 업을 닦기 위해선 어떻해야 하는가? 내 업을 닦는데는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것만 좋은 것이 없다.
증산도는 생활 속의 대도진리이므로, 증산도적 삶을 살려면 우선 사회 속에서 내 자신의 도리와 책무에 충실할 것이 요구된다. 내가 세상 속에서 할 일을 다하며 살면 나의 선업과 덕이 쌓여, 이것이 내 수행이 열리도록 밑거름이 되어준다.
이것을 태모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음을 고치려면 선덕이 있어야 하고 선덕이 있어야 활연관통이 되느니라.”(도전11:285)
증산도 종정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을 위해 살 때 진리는 내 것이 된다.”
내 마음이 닦이는 데도 세상에 베푼 선덕이 있어야, 그 공부가 진도가 나간다. 그렇지 않고 마음만 죽자고 들여다보고 있는다고 해서 공부의 진도가 나가는 것은 아닌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