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실하 한국항공대 교수 (선양=연합뉴스) 신민재 특파원 = 우실하 한국항공대 교수가 요하문명과 홍산문화에 대한 중국 학계의 연구 동향을 설명하고 있다. 2012.9.10 <<국제뉴스부 기사 참고>> smj@yna.co.kr |
"韓민족 역사·문화기원에 대한 새 틀 마련해야"
(선양=연합뉴스) 신민재 특파원 = "요하(遼河)문명이 발견된 이후 중국은 자국 문명의 기원을 완전히 새로 쓰는 작업을 착실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의도대로 상고사 재편이 마무리되면 고조선 이후 한국사는 자동적으로 중국사의 한 갈래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10일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沈陽)에서 만난 한국항공대 우실하 교수는 요하문명에 대한 한국 학계의 더 많은 관심과 연구가 절실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국내 학자로는 처음으로 지난 3~6일 요하문명의 중심 도시인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츠펑(赤峰)시 정부가 주최한 '제7회 홍산문화(紅山文化)포럼'에 참가했다.
만주 일대에 흐르는 강인 요하 주변에서는 1980년대 초부터 고도로 발달된 신석기문명의 유적과 유물이 계속 발굴되고 있다.
이 요하문명은 그동안 중국 문명의 기원에 대한 정설이었던 황하(黃河)문명보다 1천여년을 앞서는 것으로 추정되며, 홍산문화는 요하문명 가운데 가장 많은 유적·유물이 발견된 대표적인 문화권이다.
중국은 황하문명보다 시기적으로 앞서고 발달된 문명인 요하문명을 중화문명의 기원으로 삼고, 중화민족의 시조인 황제(黃帝)의 영역으로 규정하려는 준비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는 게 우 교수의 설명이다.
신석기·청동기 시대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였던 요하 지역이 중화문명의 시발점이 되면 우리 한(韓)민족의 선조도 황제의 후예가 되는 셈이다.
우 교수는 "발굴 초기에 홍산문화의 주도세력을 동이족(東夷族)이나 예맥족(濊貊族)으로 보던 중국 학계는 1990년대 후반 들어 중화민족의 시조인 황제(黃帝)의 후예들이 홍산문화를 건설했으며 중원 지역의 상(商)왕조는 요하에서 갈라져 나온 황제의 후예가 하(夏)를 정벌하고 건립한 것으로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로 벌써 7회째를 맞은 이번 포럼에서는 홍산문화에 대한 연구가 단순히 고고학의 차원이 아닌 지리, 예술, 종교, 민족학 등 이미 다양한 학문 영역으로 확대됐을 뿐만아니라 중원문화와의 비교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중국은 공인 역사서를 발굴하는 중화서국(中華書局)을 중심으로 오는 2015년 완성을 목표로 25사(25史·전설의 황제(黃帝)부터 명나라까지의 정사인 24사와 청나라 역사인 청사고(淸史稿)를 합친 중국의 공인 정사)를 전면 수정·보완하는 '국사수정공정(國史修訂工程)'을 벌이고 있다.
우 교수는 "홍산문화의 주 토템은 곰인데 우리와 관련이 깊은 요하문명·홍산문화는 중국 만의 것이 아니라 동북아 공동의 기원으로 봐야 한다"면서 "상고사의 전면 재편이 핵심인 중국의 정사, 교과서 수정이 끝난 뒤에는 우리가 대응하기에 너무 늦다"고 지적했다.
그는 "올해 포럼에서는 일부 중국 학자 사이에 홍산문화와 중원 지역의 문화가 너무나 이질적이고 오히려 발해만, 산둥 지역, 한반도 문화권과 연결돼 있다는 발표도 있었다"면서 "특히 발굴된 홍산인 두개골 17개 중 13개에서 편두(편<衣변에 扁>頭·인공적으로 이마를 눌러 납작하게 만드는 일종의 성형)가 발견됐다는 발표가 있었는데 이는 우리 신라, 가야는 물론 고대 마야, 이집트 문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어서 주목되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국사수정공정과 병행해 요하문명이 중화문명의 발상지라는 학문적 논리 개발은 물론 요하 일대에서 발굴된 고고학적 성과를 전시하는 박물관을 잇따라 신축 개관하는 등 홍보에도 적극적이다.
우 교수는 "중국은 자국 문명의 기원을 완전히 새로 쓰는 작업을 진행 중인데 우리도 요하문명·홍산문화에 대한 연구가 역사·고고학자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다방면에 걸친 연구를 통해 우리의 역사·문화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