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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 발생에서 대유행 선언까지

WHO, 1968년 홍콩이후 첫 6단계 경보
(제네바=연합뉴스) 이 유 특파원 = 유엔 산하 세계보건기구(WHO)는 11일 마거릿 찬 사무총장 주재로 비상위원회 회의를 소집해 인플루엔자 A[H1N1](신종플루)의 경보를 최고 단계인 6단계(대유행.pandemic)로 격상시켰다.

WHO가 인플루엔자의 경보를 최고 단계로 올린 것은 1968년 1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홍콩 사태이후 41년만에 처음이다.

그동안 WHO는 신종플루의 대유행을 선언할 경우 전 세계에 불필요한 `공황상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대다수 회원국들의 우려를 감안해 숙고를 거듭해왔으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를 제외한 전 세계로 확산된 점을 감안해 발생 50일만에 6단계로 올렸다.

그러나 이번 대유행 선언은 신종플루 바이러스의 `심각성'에 대한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니라, `지리적 확산'을 감안한 것이라는 점에서 회원국들이 경계태세는 강화하되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WHO측의 조언이다.

WHO가 처음으로 멕시코와 미국 정부들로부터 신종플루 상황을 보고받은 4월 23일 저녁이다. 그 즉시 WHO는 `이종욱 전략보건작전센터'(JW Lee SHOC)를 24시간 풀 가동하고 전문가들을 투입해 비상대응 체제에 들어가는 등 발 빠르게 대처하기 시작했다.

`워룸'(작전실)으로도 불리는 SHOC는 아일랜드 출신 의사이자 공중보건 전문가인 마이크 라이언 WHO 글로벌 경보.대응국장의 지휘아래 신종플루의 진행 상황을 24시간 모니터링하면서 각국 상황실과 시시각각 정보를 교환하면서 글로벌 대응체제를 구축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WHO는 이틀 후인 4월 25일 찬 사무총장이 인플루엔자 전문가들로 구성된 비상위원회 회의를 소집해 전염병 경보 `3단계'를 선언하면서 이를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우려 사안"으로 규정하고 각국의 유기적 대응을 촉구했다.

멕시코에서 사망자가 속출했을 뿐아니라, 멕시코와 미국에 이어 캐나다와 스페인에서까지 감염자가 확인된 데 따른 것이다.

상황이 점차 더 급박하게 돌아가자 WHO는 불과 이틀후인 같은 달 27일 다시 비상위원회 회의를 열어 전염병 경보 수준을 "전염병 리스크의 상당한 증가"를 뜻하는 4단계로 올린 데 이어 29일에는 "대유행이 임박했음"을 뜻하는 5단계로 또 다시 격상시켰다.

당시에는 신종플루 대신에 `돼지 인플루엔자'(swine flu.SI) 바이러스라는 용어가 쓰이면서, 일부 국가들은 멕시코와 미국 산 돼지고기에 대한 수입 중단은 물론, 이들 두 나라에 대한 여행 자제 및 제한 조치들을 취하면서 불길이 경제쪽으로도 번졌다.

글로벌 금융 및 경제위기로 인해 가뜩이나 각국의 경제가 위축된 상황에서, SI 사태가 터지면서 국내외 돼지고기 수요가 급감하자 진원지인 멕시코와 미국을 비롯해 각국 양돈 농가 및 돼지가공식품 기업, 유통업체들은 아우성을 쳤고, 일부 국가들의 여행 제한 조치들로 인해 관광업계와 항공업계 등도 큰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심지어 돼지를 `불결한 동물'로 여기는 이슬람 국가인 이집트 정부는 29일 30만∼35만 마리에 이르는 자국내 돼지 모두를 도살처분하겠다고 발표해 전 세계를 경악시키기도 했다. 결국 양돈 농민들과 이집트 경찰이 대규모 유혈 충돌을 빚었다.

신종플루 사태의 실무총책인 후쿠다 게이지 WHO 사무차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전염병 경보를 5단계로 격상시키면서도, 각국 정부들이 특히 주의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강조했다.

그는 ▲SI 바이러스가 돼지로부터 전염됐다는 증거가 없는 만큼, 돼지고기 및 관련 가공식품들은 먹어도 안전하다 ▲SI가 이미 광범위하게 퍼진 상황에서 봉쇄를 위한 국경통제나 여행제한 조치는 글로벌 경제에 불필요한 피해를 초래한다고 밝혔다.

또한 종균 배양 등 SI 백신 개발을 위한 준비는 하되, 아직 제약업체들에 SI 백신 생산을 촉구할 단계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돼지 인플루엔자'(SI)라는 표현이 일반 국민들에게 돼지에 관한 잘못된 인상을 주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4월 30일에는 "문제의 바이러스는 인간에게서만 발견되고 인간 대 인간 접촉을 통해서만 전염되고 있다"면서 SI 용어를 공식 폐기했다.

이 과정에서 WHO의 대응은 비교적 적절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국제사회 일각에서는 WHO가 닷새만에 전염병 경보를 3단계에서 5단계까지 순식간에 격상시킨 것을 두고, WHO가 예산 추가확보 등 뭔가 `저의'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같은 시각에는 단기간에 이뤄진 일련의 경보 격상이 사태의 진전 상황을 실제에 비해 더 부풀린 게 아니냐는 불신이 깔려 있다.

하지만 찬 사무총장을 비롯한 WHO측은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하지 않았으며, 국제보건규정(IHR)의 `기준'에 의거해 전 세계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해 그에 걸맞은 조치들을 취하고 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지난 달 제네바에서 진행된 연례 세계보건총회에서도 경보 수준을 `6단계'로 격상시키는 것을 놓고도 말이 많았다.

중국과 일본, 영국, 스페인 등 몇몇 국가 대표들은 세계보건총회에 경보수준을 최고인 6단계로 성급히 격상시키면 전 세계에 불필요한 공황 상태를 초래할 수 있는 만큼, 경보 격상 여부에 대한 결정에 신중을 기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현 국제보건규정(IHR)에 따르면 6단계를 선언하려면 신종플루의 진원지였던 미주 대륙을 제외한 다른 대륙에서 신종플루 바이러스가 지역사회에서 인간 대 인간의 감염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산돼야 한다.

`지리적 확산'만 감안한다면 인플루엔자 경보를 오래 전에 6단계로 올렸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10일 오전 8시(제네바 시각) 현재 공식으로 보고된 신종플루 감염자 수는 멕시코와 미국을 비롯한 74개국에서 2만7천737명이며, 사망자는 멕시코 106명, 미국 27명, 캐나다 4명, 칠레 2명, 코스타리카와 도미니카공화국 각 1명 등 모두 141명이다.

미국의 감염자 수가 1만3천217명으로 가장 많았고 멕시코 5천717명, 캐나다 2천446명, 칠레 1천694명, 호주 1천224명 등이다.

이처럼 신종플루는 북미에서 시작해 유럽과 아시아, 중남미, 대양주, 북아프리카 등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을 제외한 전 세계로 확산됐으며, 감염국가 수로 보아도 전 세계의 3분의 1을 훨씬 넘어선 상황이다.

하지만 6단계 격상에 반대해온 국가들은 경보의 격상을 `지리적 확산'이라는 기준만을 적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증세가 `심각'한지 여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런 쪽으로 기준 자체를 변경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WHO 공식 집계만 보더라도, 2만7천737명의 감염자 중에 사망자는 141명에 불과하고 감염자들 대부분이 `아주 미약하고 제한적인 증세'를 보이다가 회복되고 있다.

증세의 심각성 정도로만 판단해 본다면, 이번 신종플루는 40∼50%의 높은 치사율을 지닌 H5N1 AI(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뿐더러, 일반적인 계절성 인플루엔자의 리스크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통상적인 인플루엔자의 경우 25만∼30만명이 사망한다.

이런 지적들을 감안해 WHO는 인플루엔자 경보의 격상 기준을 기존의 `지리적 확산' 뿐만아니라 증세의 `심각성 정도'도 반영하는 쪽으로 국제보건규정을 보완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6단계 격상 결정은 신종플루의 `심각성 정도'를 감안하기 보다는 `지리적 확산'만을 감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보건부 장관은 이날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전염병 경보를 6단계로 격상시킨다는 것이 신종플루 바이러스의 `심각성'에 대한 판단이 아니다"라면서 "그 것은 단지 이 바이러스의 `지리적 확산'이 대유행의 정의를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앞서 후쿠다 게이지 WHO 사무차장은 9일 전화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사람들이 대유행 선언을 듣고서 `과도한 공황상태'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면서 대유행 상황에 대비한 회원국들의 적절한 준비를 촉구한 바 있다.

WHO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이번에 대유행이 선언됐다고 해서 각국이 새롭게 취할 조치들은 거의 없다. 5단계로 격상할 당시 이미 취할 만한 조치는 거의 다 취했기 때문이다.

신종플루의 확산이나 심각성 정도도 나라별로 편차가 큰 만큼, 각국 정부는 자국의 실정에 맞게 대비태세를 갖추면 된다.

다만 경보가 6단계로 격상되면서, WHO는 제약업체들에게 계절용 인플루엔자 백신의 생산을 중지하고 가능한 한 신속히 신종플루 백신을 생산하도록 권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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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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