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 어렸을적 자신을 지켜주던 존재를 잊곤 합니다.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냐구요? 아닙니다. 기억의 저편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태어나서 얼마되지 않았을적 부터 늘 자신을 지켜보며 도와주었던 어른을 말입니다. 사람은 화식을 시작하면서 부터 잊지 말아야할 소중한 기억들을 잊곤합니다. 그것은 꼭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들인데도 불구하고 잊어버립니다. 그러면 그 잊는 다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 하고 되물으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무슨 얘길할건가 하면, 기억의 뿌리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지세대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는 알아야 할까요? 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말입니다. 아버지 세대의 역사를 알아야만 현실에서 닥치는 여러가지 사안들을 끌러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아버지 세대의 역사도 알아야 할까요? 역시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아버지 세대의 사안들 역시 누적되어 우리들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 세대의 역사는요? 또 그 이전의 역사는 어떨까요? 도대체 그런 역사들이 필요하기나 한걸까요? 우리와 직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을것 같지 않은 역사의 시간들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적되어온 시간의 힘들이 우리에게 가장 밀접하고 우리삶의 가장 극적인 순간들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지나간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과연 그것이 당장의 상황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아야만 하는 걸까요? 답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 답은 없다, 인생은 미완성이기 때문에 어떤 일정한 해답을 내릴 수 없다는 말은 그 본질로 들어갔을때, 환상의 경계에서 헤메는 소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대의 역사를 추적하여 고려이전의 후삼국시대, 남북국시대, 사국시대, 오국시대, 열국시대, 북부여 시대, 대부여 시대, 고(古) 조선 시대, 청구 시대, 배달 신시 시대, 환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1만년의 역사를 추적해 가는 것은 세계가 더욱 가까워지고 세계의 문명의 충돌이 더욱 잦아들때마다 충돌되는 문명의 전쟁을 말리기 위한 가장 직접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고대로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그 속에 단지 우리민족의 역사도 함께 들어가 있고, 그 중심부에 있다는 자부심, 또는 역사에서 우리가 이만한 일을 한 민족이라는 자랑꺼리를 발견하였다는데서 그 의미가 그쳐진다면, 그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닌 역사입니다.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넘어에는 역사가 끊이지않고 흘러내려오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근본이유와 맞닿아 있습니다. 곧 현재 세계화시대, 세계의 국경의 장벽이 무너지는 시대, 앨빈 토플러의 『미래 충격』에 따르면 큰 유조선의 칸막이를 제거하여 유조선 전체의 운명이 하나의 사건으로 묶어지는 시대를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곧 전 세계가 지역단위로 나뉘어 졌을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또는 지역단위에서 조절할 수 있었던 문제들이 전 세계로 확산되었을때는 더 이상 과거의 방법으로는 통제할 수 없고, 서로의 문제점들을 끌러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지역단위의 문명의 틀 속에서 가장 최고 가장 우월하다고 여겨져왔던 가치들이 서로 충돌하고 서로의 가장 근본 또는 기초되는 원리들이 부딪히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거냐 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가진 언어적 장벽과 지역환경의 장벽을 또 인간이 가진 원초적 의식의 장벽을 어떻게 무너뜨릴 거냐 하는 과제가 20세기와 21세기를 살아온 인류들에게 숙제로 주어진 것입니다. 결국 그건 소통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인가 하면, 소통이란 것은 특별난 사건을 함께 해결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지, 어떤 조그마한 사건이라도 함께 겪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을 경우 이슬람과 이스라엘의 경우처럼, 또 체첸과 러시아의 경우처럼, 남한과 북한의 상황처럼, 서로가 서로를 파멸로 이끌어 가는 비극적 상황을 연출하여 그러한 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데 있습니다. 이것이 개벽의 실제상황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입니다. 모든 법을 합하여 쓰심 "지난 임진왜란에 정란(靖亂)의 책임을 ‘최 풍헌(崔風憲)이 맡았으면 사흘 일에 지나지 못하고 진묵(震?)이 맡았으면 석 달을 넘기지 않고 송구봉(宋龜峯)이 맡았으면 여덟 달 만에 끌렀으리라.’ 하니 이는 선도와 불도와 유도의 법술(法術)이 서로 다름을 이름이라. 옛적에는 판이 작고 일이 간단하여 한 가지만 따로 쓸지라도 능히 난국을 바로잡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판이 넓고 일이 복잡하므로 모든 법을 합하여 쓰지 않고는 능히 혼란을 바로잡지 못하느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4편 7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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