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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天地萬物(천지만물)이 始於一心(시어일심)하고 終於一心(종어일심)하니라 천지만물이 일심에서 비롯하고 일심에서 마치느니라
    - 증산도 도전2:91
증산도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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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불선[儒.佛.仙]철학과 종교

생각하며 읽는 성경이야기(3)



8. 인류 역사를 보는 성경과 과학의 상이한 입장


1> 성경에 근거한 해석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이들은 인류의 역사를 6000년이라고 단정합니다.
이에 대한 근거는 '아담'이 130세에 아들인 '셋'을 낳고, '셋'은 105세 때 '에노스'를 낳았으며,
'에노스'는 92세 때 '게난'을 낳고 해서 '야곱'까지의 22대와,
또 아브라함에서 예수에 이르는 41대의 족보, 그리고 예수의 탄생 즈음부터 사용한
서력기원을 전부 합산한 데서 결국 6000년이라는 기간이 도출된 것입니다.


2> 과학의 입장과 비교


얼마전 우리나라에서 4만년전의 5세 아이의 유골로 인정되는 화석이 발견되어
화제를 모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고학적 연구에 근거해 현대 과학은 인류의 역사를
몇 십만년에서 몇 백만년으로까지 추정하고 있으며,
현생 인류의 직접적인 시조는 지금부터 5만년 전에 나타난 호모 사피엔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만일 과학에서 인류의 역사를 10000년이나 9000년쯤으로 잡고 있다면
그 정도의 오차는 문제제기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6000년과 50,000년이라는 차이는 타협의 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한 수치입니다.


3> 종교가 인정한 과학의 권위


일전에 예수가 입고 있던 수의가 발견되어 이를 [성의(聖衣)]라 하며
온통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성의는 정밀 측정 결과 예수의 수의가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입증되자 그렇게 흥분하며 득의양양해 하던 광신도들조차도 입을 다물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진위를 밝힌 것이 다름 아닌 바로 과학이었습니다.



9. 원죄론에 대한 문제제기


창세기 2장에 보면 야훼신이 인간을 창조하고는 그 태초의 인간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실과는 임의로 먹어도 좋으나 단 선악과만은 먹지 말라"는 엄명을 내립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으면 너희들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뱀의 유혹을 받고
인간들은 결국 선악의 열매를 따먹게 됩니다.

원죄론의 개념은 바로 여기서 근거한 것입니다.
태초의 인간들이 자신을 창조한 야훼의 분부를 거역하고 뱀(사탄)의 말을 믿고 따랐으므로 죄를
지은바 되었으며, 이 죄는 대대 손손 유전되게 되었으니 이 유전되는 죄가 바로 원죄(原罪)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논리가 너무나 억울하고 부당해 보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1> 원죄론의 성립과정과 폐단


원죄론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교리가 아닙니다.
그 과정에는 장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또 이면에는 시대적 요청으로 인한
절박한 필요성이 내재했습니다.
그러면 이를 한 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예수가 승천한 후 예수의 제자들 및 예수의 추종자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미처 글로 기록하지 못한 채 구약성서만을 가지고 복음전파에 나서게 됩니다.

2) 그 후 많은 세월이 흐르고 결국 신약성서가 쓰여지게 되었으나
이때는 이미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진의와 의중이 많이 퇴락한 후였습니다.

3) 교파들간의 세력 싸움과 무리한 경전 편찬작업은 구약과 신약간의 무수한 괴리를 낳았으며,
결국 자가당착의 모순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많은 교리가 수정, 재생산되기에 이릅니다.

4)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타 교파와의 세력 싸움과 무리한 세력 확장은 점차로
난폭성과 잔학성을 띠게 되었고, 결국 이를 교리상으로 합리화할 필요성이 절실히 대두되었습니다.

5) 여기서 비로소 "인류의 조상이 야훼신의 뜻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었으므로
모든 인간은 야훼 하나님 앞에서는 명백한 죄인이다."
라는 원죄론이 탄생하게 되어
종교의 인간에 대한 횡포가 정당화되기 시작합니다.

6) 확고한 교리상의 근거를 토대로 모든 인간은 죄인으로 취급을 받았으며,
극단적으로는 "모든 인간은 원죄를 가진 죄인이기 때문에 부녀자들이나 어린아이들이
살육당하는 것도 당연하다"
는 살육을 정당화하는 교파까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2> 인류의 수명으로 본 원죄론의 불합리성


조상이 죄를 범하면 그 죄의 영향이 몇 대 정도는 이어질 지 모르나
수십 대가 지난 후에는 점차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또한 아무리 원수지간이라 하더라도
몇십년 또는 몇 백년의 세월이 흐르면 그 원한이 희석이 되게 마련이지요.

결국 죄의 대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줄면 줄었지 늘어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순리에 대해서 역행하는 듯한 내용을 보여줍니다.
단적인 예로 성경에 나타난 인류 조상의 수명을 통해 죄값의 대가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아담의 10대 후손까지의 수명을 정리한 것입니다.

셋 : 912세 → 에노스 : 905세 → 게난 : 910세 → 마하랄렐 : 895세 → 야렛 : 962세 → 에녹 : 365세
→ 므드셀라 : 969세 → 라멕 : 777세 → 노아 : 950세 → 셈 : 600세
※6대손인 에녹의 수명이 유난히 짧은 것은
하나님의 기밀을 누설시켰다 하여 야훼신이 불 뿜는 마차로 데려갔기 때문임.

위 수치들로 계산해 보면
결국 아담으로부터 그 10대 후손들까지의 평균 수명은 824.5세라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그러면 이 수치를 오늘날 현대인의 수명과 비교해 보면 어떻습니까?
그토록 대역죄를 범한 아담의 직계 후손들은 800세 이상의 생을 영위했으나,
영문도 모르는 채 태어나는 현대인들은 조상들의 죄값을 이어받아
기껏해야 70-80세의 수명 밖에 살지 못하고 죽는다는 건 너무 불합리한 일이 아닐까요?

설혹 그 죄의 개념이 누적의 성격을 띤다 하더라도,
근대에서 현대로의 이행 과정에서 인류의 평균수명이 다시 늘어난 것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10. 축복받은 민족의 현실


1> 인종의 분지 가설


지구상에는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 이렇게 삼색인종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태초에 창조된 인간이 남녀 각 1명씩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이 삼색인종의 분화에 대한 원인과 과정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구상된 것이 바로 노아의 이야기입니다.


2> 노아의 이야기


1) 술에 취해 발가벗고 자는 노아의 하체를 본 아들 함은 두 형제 셈과 야벳에게
이를 들려주었습니다.

2) 두 형제 셈과 야벳은 옷을 가지고 뒷걸음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벗은 몸을 덮어 줍니다.

3) 잠에서 깬 노아는 이를 알고 노하여 "야벳은 셈의 집에 같이 기거할 수 있도록 허락하며,
함의 아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셈과 야벳의 종이 되기를 원한다"
(창세기 9:20-27)고 말합니다.



3> 노아의 일화에서 유도된 결론


1) 가나안은 노예의 운명으로 오늘날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빼앗긴 팔레스타인이 되어
이스라엘인의 노예신세가 되었으며

2) 잘못을 저지른 함은 아프리카인의 조상이 되어 흑인으로서 비참하게 살고 있습니다.

3) 또한 셈의 후손은 하나님의 선민으로 택함을 받아 이스라엘 민족이 되어
아시아까지 영향을 주었으며, 우리 한국인도 이 셈의 계통이라고 합니다.

4) 야벳의 후손은 백인의 조상으로 오늘날까지 축복받으며 잘 살고 있습니다.



4> 오늘날의 진정한 현실


그러면 오늘날의 현실도 과연 그 이야기와 부합되는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선민으로 축복받았다고 하는 이스라엘 민족은 제대로 나라조차 건수하지 못하고
세계의 유랑민이 되었을 뿐 아니라, 히틀러 시대에는 수백만이 학살되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게다가 그 동안 중동전쟁 등 무수한 전쟁을 치르면서 부녀자들까지 완전무장 상태로
항상 전쟁에 대비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종이 되어 있어야 할 운명인 팔레스타인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팔레스타인은 자신들의 거주지를 이스라엘에게 빼앗기고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조직, 영토 회복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과연 주인은 종으로부터 삶의 터전을 빼앗아 생존을 위협해도 되는 것인지,
또한 종은 감히 상전에게 총부리를 겨누어도 되는 것인지 그저 의문스러울 따름입니다.



5> 여전히 존재하는 의문


현실과의 부합성 여부를 차치한다 하더라도 다른 각도에서 볼 때
문제제기의 소지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먼저 작게는 과연 아버지가 자식들을 저주해 그들의 미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윤리적인 부분도 있겠으나 이 또한 넘어가기로 하고)

성경에 따르면 노아는 의인이어서 야훼신과 함께 동행도 하고
홍수 심판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엄연한 피조물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일개 피조물인 그가 수치스러움이라는 지극히 개인적 감정으로 뱉은 저주의 말이
인류의 운명을 판가름 지은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 부분 또한 성경에 대한 광적 의존이 빚은 무리스러운 해석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굳이 문제를 이렇게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 것 없이 그저 "성경에서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어 있지
않으니 모르겠다"라고 하면 문제는 너무도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11. 예수의 가르침


1> 예수만을 통한 구원


1) 문제제기
요한복음 14장 6절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예수가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라고 단언한 부분이 나옵니다.

그러면 이 성구를 통해
<예수만이 유일한 구원에 이르는 길이다>라는 결론이 그리 간단히 내려질 수 있는 것일까요?

2) 시대적 소산물로서의 성경
위 성구를 이해함에 있어 우리는 성경이 가지는 시대성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예수가 복음을 전파하던 당시는
전통적인 유태인의 종교적 관습이 완고하리만큼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던 때였습니다.

예수는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제대로 전파하기 위해
무엇보다 구시대의 관습을 깨뜨릴 필요를 강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방편으로 자신을 통한 새로운 거듭남을 강조하는 화두를 대중들에게 던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예수는 그 구시대의 인습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무지한 대중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읽는 오늘날의 우리들은 이를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신중히 걸러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3) 다시 생산되는 교리
성경 문구를 시대적 소산물로 직시하지 못하게 되면 간혹 억지스러운 교리가 생겨나기도 합니다.
예수보다도 훨씬 이전에 세상을 다녀갔던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 같은 이들은
예수를 몰랐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논리가 그 대표적 예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일부 양심 있는 이들은 그들을 몽땅 지옥에 보내는 것이 안되었던지
"그들이 가는 세계가 따로 있다"고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이 논리는 비단 위 세 인물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태어나기 이전 시대의 인류와 그 이후라도 예수의 복음을 접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
숱한 여타 민족의 국민들에게도 똑같이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엄격성을 따지자면 그 도출되는 결론이 너무도 부당해 보이는
이러한 논리는 과연 얼마나 대중적 공감대를 가질 수 있을까요?

또 그네들이 가는 세계가 따로 있다는 언급은 성경의 어느 구절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불완전한 표현이었으며
그를 보완할 수 있을 정도의 예수님보다 위대한 인물이 존재하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2> 말대에서의 가르침 퇴색을 예견함


예수는 이미 2000년 전에
말대를 맞이하고 있는 현세에서는 그의 가르침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1) 누가복음 6: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나의 말하는 것은 왜 행하지 아니 하느냐.

2)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라 오직 내 가르침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리라.

3) 마태복음 7:23
그 때에 나는 너희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할 것이며
내 말을 행치 않는 자들아 다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는 바로 지금의 (일부)기독교인들을 향해 하신 예수님의 일갈성입니다.
현재 자신을 기독교인이라 자처한다면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12. 이성을 통한 성경의 이해


1> 성경의 난해성


흔히 성경에 대해 논쟁이라도 일게 되면
"성경은 비유와 상징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니 이성으로 접근할 차원이 아니오"
"신앙은 그저 믿는 것이지 따지는 것이 아니오"
라는 식의 힘빠지는 결론으로 못을 박아버리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세기 1:26)"하신 말씀에도 나와 있지만 인간은 하나님을 닮은 존재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함이 지당한 일입니다.

또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성경 자체가 곧 구원의 방편이 아니며 그 내용의 이해를 통한 실천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뜻이니, 인간은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부분이 많다면 이는 뭔가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2> 성령 감화를 통한 성경의 이해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밧모섬에 귀양갔을 때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본 그대로 썼다고 하는 기록인데,
이 계시록은 그 의미를 터득하기가 심히 난해하다고 하여 묵시록(默示錄)이라고도 합니다.

흔히 이야기 하는 대로 이를 성령의 감화로 쓰여진 문장들이라고 인정한다면,
우리는 또다른 성령의 감화를 받은 신자라면 이를 능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가정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기독교를 신앙하고 있는 사람과 또 이미 고인이 된 기독교 신앙인을 합한수는 수억에 달합니다.

그러면 그중 한사람이라도 성령의 감화를 받아 이 내용을 이해한 인물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당연하게도(아니면 의무감에서라도)자신이 성령의 감화로 이해한 내용을 설교나 매스컴을
통해 전달하는 것은 물론, 이를 쉽게 풀어써서 해설서라도 한 권쯤 펴낼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 내용들에 대한 명쾌한 해설을 제시하는 이가 없으니 이는 어찌된 일인가요?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기독교인들 중에는
아직까지 성령의 감화를 받은 이가 한 사람도 없단 말입니까?



13. 자기 성찰을 당부드리는 글


만약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 태어나지 않고
그리스민족에게서 태어났다고 가정해 본다면, 지금쯤 사람들은 천지의 창조과정에 대해 설명하기를

"최초로 무한의 공간인 [카오스]가 이루어지고 그 다음에는 가슴이 넓은 대지(大地) [가이아]와 영혼을 부드럽게 하는 사람 [에로스]가 나타났고 이들로부터 어두움과 밤, 상공(上空)과 낯, 천공(天空)과 대양(大洋)이 탄생되었으며 그후에 5명의 남신(男神)과 6명의 여신(女神) 그리고 크로노스를 낳았다"

고 할 것입니다.

또 인류의 출현에 대해서는

"올림푸스의 신들은 먼저 황금의 종족을 만들고 그 다음에는 백은(白銀)의 종족, 청동(靑銅)의 종족, 영웅들, 마지막으로 철의 종족을 만들어 내었다"

고 하면서 이를 증거하고 다녔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치는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하게 되었고 기독교 신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는 하나님이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서도 영원히 존속될 수 있어야만 진리일 수 있는 것이지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된다고 하면 그것은 이미 진리일 수 없습니다.
또한 진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만 진리일 수 있습니다.

성경이 가지고 있는 모순과 괴리에 대하여 그동안
"예수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존재한다"
"예수에 대해서는 인성과 신성을 구분하자"고 결의하였고

"하나님은 왜 아버지이어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입막음을 위해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숭배하기로 하자"고 결정하였음에도 성경에 대한 의문이 그치지 않고 계속하여 꼬리를 물게 되자,

기독교는 마침내 "성경은 성령의 감화로 기록된 것이므로 성경에 대한 이해는 성령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전개하며 아예 입에다 자물쇠를 채워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모순과 괴리의 은폐를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였던 것이지요.

과연 자신이 성경을 얼마나 제대로 아는지 한 번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God)과 신(god)은 어떻게 다르고 하나님 또는 신은 영(sprit)과는 또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이에 답할 수 없다면
성신(holy god)과 성령(holy sprit)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도 역시 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창세 이전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물(창세기 1:2)은
아직 천지를 창조하기도 전인데 어떻게 존재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이 내용은 성경의 가장 서두에 있는 이야기인데 이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하지 못한다면
극단적으로는 성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를 모른다면 둘과 셋을 모름은 당연할 일일 뿐 아니라 마지막인 100은 더더욱 모를 것이고, 만일 하나를 아는 사람은 둘과 셋은 물론이고 100까지도 속속들이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 물에 대해 설명할 수 있습니까?"

성경을 정말 제대로 읽고나면 성경의 위대성에 진심으로 감탄하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교파간의 이해득실로 무수한 우여곡절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부분 진실에 대한 순수성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우리들에게 커다란 경종의 말씀들을 전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성경을 가슴으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머리로 함께 읽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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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08.09.15
16: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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