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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경세계는 내가 처음 건설하나니, 나는 옛 성인의 도나 옛 가르침으로 하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낡은 삶을 버리고 새 삶을 도모하라.묵은 습성이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그 몸이 따라서 망하느니라.
    - 증산도 도전2:41
증산도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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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불선[儒.佛.仙]철학과 종교

생각하며 읽는 성경이야기 (1)


이 글은 다음과 같은 분들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첫째, 성경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비난만 일삼는 비종교인 및 타 종교인들
둘째, 성경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실천하기를 원하는 깨어있는 신앙인들
셋째, 성경에 대해 한치의 의심도 허락치 않는 열렬한 성경 추종자들

이러한 분들께 이 글은
성경을 제대로 알고 비난할 수 있도록,
성경을 제대로 알고 신앙할 수 있도록,
성경을 제대로 알고 추종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 글을 허심탄회하게 읽으십시오

그런 후에도 자신이 고수해 온 관념이 옳다 여겨지고 추호의 부족함도 없다고 느껴지신다면,
그런 분들은 이를 계기로 더욱 당당하게 자신의 관념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하지만 기존의 관념에 혹시라도 회의가 드시는 분들은 그 문제를 끝까지 파고 들어가
바로잡으신 후에, 과감히 관념의 벽을 헐어 버리십시오.
그리고 타성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이 여러분께 드리는 자유를 마음껏 만끽하십시오.

당부드리건대,
부디 중도에서 성급하게 자신의 감성에 굴복해,
이 글을 팽개치는 나약한 패배자나 낙오자는 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참 진리에의 열정을 안고,
부단한 정진을 통해, 항상 꿋꿋한 승리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시길 기원드리겠습니다.



1. 구약성서(창세기)의 형성과 경전의 분화


1> 사료층의 분류


[제사적 사료층]은 창세기중 '1장∼2장 3절'까지의 기록으로
이스라엘인들이 바빌로니아에 포로가 된 후에 나타난 제사학파들에 의해 쓰여진 사료층이며,
창세기 '2장 4절∼3장' 끝까지는 [야훼이스트 사료층]이 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3장까지는 두 개의 사료층이 혼합되어 만들어진 셈입니다.


2> 혼합구성의 배경


창세기 내용은 문헌으로 기록되지 못하고 구전으로만 전승되어 오다가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기록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장기간의 전승으로 인해
상당 부분이 변질되기에 이르렀고,

또한 사료들(이 외에도 에로히스트 사료층과
신명기적 사료층이 존재함)간의

내용상 이질성이 컸기 때문에 어느 사료를 정설로 삼아야 할지 결정이 불가능해 져
결국 두 사료층을 함께 혼합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3> 절충적 해석과 민족신의 개념 도입


위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두 사료층은 같은 창조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으면서도 그 내용이 판이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는 실로 난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사료층의 가치를 모두 인정한다는 전제하에
아래와 같은 절충적 해석을 내려보는 것은 가능합니다.

먼저 엘로힘신이 천지창조를 시작하여 창조를 끝마친 다음에
다시 야훼신이 부분적으로 창조의 능력을 행사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 엘로힘신은 곧 전체우주를 창조한 신이며
야훼신은 다시 부분적인 세계를 창조한 제2의 신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재미있는 상황을 설정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즉 신에도 천지(宇宙)를 창조한 우주 절대신이 있으며,
특정 민족의 시원신화(始原神話)에 등장하는 민족 고유의 민족신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천조대신', 중국의 '반고', 그리스의 '제우스', 인도의 '3신(크리슈나, 비슈니, 쉬바)'
그리고 우리나라의 국조 3신인 '환인, 환웅, 단군'이 이 후자에 해당될 수 있고,

현재 기독교에서 우주의 유일한 절대신으로 추앙받는 '야훼(여호와)' 역시
이스라엘의 민족신(地方神)이라고 해석을 내리면 자연스럽게 앞뒤가 맞아떨어지는 것입니다.


4> 신교와 구교의 분리


구약은 70인에 의해 그리스어로 번역되어
BC 3C중엽부터 조국을 떠나 흩어져 살고 있던 유태인들의 경전이 되었습니다.

이를 다시 제롬이 라틴어로 번역하여 이 번역문이 구교(카톨릭)의 경전이 되었고,
또한 조국 팔레스타인을 떠나지 않고 살던 유태인들이 사용하고 있던
히브리 경전은 오늘날 신교(개신교)의 경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구약은 그 내용이 대부분 동일하지만 구교의 구약은 소위 가경이라고 부르는
[에스라 Ⅰ], [솔로몬의 지혜], [세 소년의 노래] 등이 신교의 구약에 더 첨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신교에서는 이들 가경의 내용이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하여
가경의 삽입을 일체 거부함에 따라 신, 구교간의 분리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2. 신약성서의 형성 과정


1> 성경의 훼손된 구절들


성경을 유심히 보신 분들은 장과 절만 존재하고 그 내용이 삭제된 구절들을 발견하고는
한 번쯤 의아하게 여겼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구절들은 총 8곳으로 아래에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2> 역사에 근거한 해석


그러면 어떻게 해서 성령의 감화로 쓰여진 성경에 이런 황당한 문제가 발생했는지,
신약성서가 만들어지는 역사적 과정을 되짚어 봄으로써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간략히 정리해 본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약성서는 AD 4C-10C 사이에 쓰여진 복사물들이
편집된 것이며 그 원전이 남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이러한 복사물의 수는 1500여종에 이르지만
내용이 같은 것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본중 1844년에 시나이의 한 수도원에서
발견되어 시나이 사본이라 불리는 복사물은 발견 당시
무려 16000여 곳이나 수정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면 좀더 상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초창기 기독교는 200년동안 구약성서 외의 다른 성서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2) 점차 교파간의 충돌이 일어나게 되고
이를 조정할 목적으로 후에 신약성서로 인정받게 될 성서가 쓰여지기 시작합니다.

3) 16000여곳이나 수정된 시나이 사본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듯 신약성서가 완성되기까지 교파간의
다툼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했으며 성서가 겪은 수난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4) 우여곡절 끝에 일차적 완성을 본 신약성서는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AD 325년
1차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318명의 주교들이 "예수는 하나님이다"라는 교리를 채택하게 됩니다.

5) 이어 AD 381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린 2차 종교회의에서는
"신은 성부, 성자, 성신으로 존재한다."는 교리를 채택합니다.

6) 또 AD 431년 에페소스에서 열린 3차 종교회의에서는
"마리아를 하나님 어머니로 숭배할 것"을 결의하였으며,

7) AD 451년 카르케돈에서 열린 4차 종교회의에서는 예수가 하나님이라는데 대한 성경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의 인성과 신성을 구분할 것"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8) 이러한 지속적 수정에도 불구하고 몇몇 성서상의 쟁점들은 계속 남아 있게 되어
16C까지 완성되었던 장과 절중 8곳을 훼손시켜 버리고 "없음" 또는 "X"표로 표시하는 수난을
성서는 겪어왔던 것입니다.


3> 4 복음서에서 나타나는 내용상의 괴리


신약성서가 겪은 우여곡절을 대변해 주는 또하나의 좋은 실례가 바로
복음서들간의 내용상 차이점입니다.



3. 야훼(여호와)는 이스라엘 민족신


앞에서 우리는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민족신이라는 가정을 통해 창세기의 모순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는 이 문제를 좀더 심도 있게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성경 구절을 통한 고찰


먼저 여호와에 대해 언급한 성경의 몇몇 구절들을 통해 약간의 힌트를 얻어 보고자 합니다.

1) 사무엘상 5:8-9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게 못할찌라
그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하고...


2) 출애굽기 7:4-5
바로가 너희를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더하여 여러 큰 재앙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찌라.


3) 출애굽기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4) 레위기 18: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5) 민수기 15:41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하여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6) 민수기 16:40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물이 되게 하였으니 이는 아론 자손이 아닌 외인은
여호와 앞에 분향하러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함이며...


7) 신명기 8: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쫓아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정녕히 멸망할 것이다.



이처럼 구약성서속에서 묘사되고 있는 여호와의 모습은
관용과 사랑의 절대자보다는
전쟁과 질투의 신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즉 자기 민족(이스라엘)에게는 자비와 사랑의 신으로,
타민족에게는 복수, 전쟁, 질투의 신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구약성서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기록하고 있는
숱한 전쟁과 무수한 살육은
이에 대한 또 하나의 단적인 증거입니다.

또 기독교가 로마를 제패한 이래 야훼신의 영향권에 있는 나라들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야훼신의 품성을 닮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랍제국과 총부리를 겨누고
일촉측발의 위기속에서 3차 대전의 위험성을 안고 살아가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민족신이었기에 일어난 일이며,
그런 까닭에 여호와는 다른 민족신에 대한 숭배에는 질투로
또 이스라엘의 수호를 위해선 복수와 전쟁이라는 수단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2> 성경상의 상황 분석을 통한 추론


1) 카인의 하소연과 야훼의 보장

아벨을 죽이고 야훼로부터 추방을 당한 카인은 야훼에게 이방인이 자기를 죽일까 두렵노라고
하소연을 합니다. 그러자 야훼는 "너는 야훼의 사람이라는 증표를 가지고 있으므로
네가 살해되는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창세기 4:15)"고 대답하며 카인을 안심시킵니다.

그러나 결국 카인은 이방인에게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카인을 살해한 '야훼신의 권위가 통용되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그 대답은 바로 야훼신이 유대민족만의 민족신이라는 것으로 밖에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2) 예수가 전한 하나님은 다른 분

예수는 이전의 기독교가 지닌 민족 종교로서의 성격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또 그가 원한 것은
진정한 하나님(우주 주재자)의 진리를 전하는 것이었지,
일개 민족신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의 어디를 뒤져보아도
예수가 절대자를 '하나님' 또는 '아버지'라고 불렀지,
한 번도 '야훼(여호와)'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입증하는 좋은 예입니다.



4. 예수의 신성(예수 ≠ 하나님)


1> 기존 교리상의 입장


현대 기독교의 교리에서는 하나님을 성부, 성자, 성신의 3위 일체로 존재하시는 분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중 성자가 인간으로 화육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사람의 길을 걷다가
다시 하늘로 되돌아가 하나님의 지위로 원상 회복되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 교리는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AD 381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린 2차 종교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인데, 여기서는 과연 이 결정안이 충분한 타당성을 가진 주장인지
심도있게 재검토해 보고자 합니다.


2> 성경말씀을 통한 고찰


과연 예수는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인가?
이를 먼저 성경구절에 나와 있는 내용들을 통해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마태복음 27:46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2) 요한복음 12: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3) 요한복음 8:42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4) 마가복음 13:32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예수)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5) 요한복음 7:28-29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다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


6) 마태복음 24:36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예수)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7) 누가복음 24:49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라.

이처럼 성경의 많은 구절들에서
예수는 하나님과 자신을 상하의 관계로 분명하게 구분지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마지막 7)의 약속은 예수가 부활한 후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이 당시 예수는 이미
인간의 육신을 벗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아버지를 구분해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요한복음 바로 알기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며
그는 자기의 땅에 왔으나 백성들이 그를 영접하지 않았지만
그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난 독생자니라"

이는 요한복음 1장 1-14절 내용 중에서 발췌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즉 이 요한복음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예수님은 태초에 만물을 창조한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라는
결론도 가능한데 이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가 성경을 이해할 때 크게 두 가지의 서술을 유심히 구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로 시작하는 예수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기록한 대목이고,
다른 하나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 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14)."와 같은 성경저자의 견해를 기록한 대목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 내용 중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방식의 서술이 종종 배치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때 우리가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는
너무도 자명한 문제가 아닐까요?
성경에서 예수는 결코 "내가 곧 하나님이다"라는
언급을 한 적이 없음을 상기해 주기 바라며,
최종적인 판단은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 드립니다.

또한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의 비교에서도
그 신뢰성을 의심받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로 분류되고 있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과는 달리
연대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이질적인 요소가 많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4복음서를 보면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 표현하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요한복음은 저자의 무리한 주관 개입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4> 유사 종교와의 비교


유태교와 이슬람교의 경전은 각각 '탈무드'와 '코란'입니다.
그런데 이 탈무드와 코란 역시 구약성서를 그 내용의 근간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태교인이나 이슬람교인들 역시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을 궁극적 신앙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하지만 구약성서를 동일하게 반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태교와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를 하나님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래 표에도 나와 있지만,
먼저 유태교에서는 "예수는 하나님도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이슬람교에서는 "예수가 곧 하나님은 아니지만, 예언자로 볼 수는 있다"라고 주장합니다.


재미있는 가정을 하나 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지금의 기독교인들이 만일 이스라엘이나 중동지방에서 태어났다면
물론 지금과 같이 하나님은 믿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열렬히 믿었을 지도 모를 일이지요.

하지만 99% 이상이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믿고 있는 그 사회속에서 분연히 일어나
"아니오! 예수는 하나님임에 틀림없습니다"라고 외칠 수 있었을까요?

모르긴 해도 오히려 "예수가 하나님이다"라고 외치는 이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할 가능성이
몇 배는 더 컸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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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08.09.15
16: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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