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무료책자

상담신청
  • 태모님께서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디를 가더라도 원형이정으로 성경신(誠敬信) 석 자를 일심으로 잘 지켜 수행하라. 찾을 때가 있으리라." 하시니라
    - 증산도 도전11:248
증산도 도전
미스테리5.gif

동북공정과 식민사관, 역사왜곡

북부여의 건국

대단군의 통치권이 약화되고 부단군과 지방 군장들의 목소리가 커지던 고조선 말기에 한민족의 새 역사를 개창한 분이 바로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이다. 해모수는 요하 상류에 위치한 고조선의 제후국인 고리국 출신으로 BCE 239년 웅심산(지금의 길림성 서란)에서 기두하였다. 그 후 백악산 아사달을 점거하고, 당시 고열가 단군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던 오가五加 부족장들의 공화정을 철폐하였다. 이에 백성들이 해모수를 단군으로 추대함으로써, 북부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BCE 232).

 

‘북부여’는‘ 북쪽에 있는 부여’라는 뜻이다. 고조선의 제3왕조 시대인 대부여의 북녘 땅을 중심으로 나라를 열었기 때문에,‘ 대’자를‘ 북’자로 바꾸어 북부여라 한 것이다. 그것은 망해 가던 대부여의 정통을 계승하겠다는 해모수단군의 의지의 표명이었다.

 

이렇게 북부여가 고조선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을 때, 고조선의 양팔인 번조선과 막조선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고조선 개국 이래로 서방 진출의 교두보이자 외부 침략으로부터 민족을 수호하는 방파제 구실을 하던 번조선 땅은 이 무렵 춘추전국 시대의 혼란을 피해 넘어온 한족 난민으로 넘쳐났다. 그 난민 중에 한 고조 유방의 죽마고우이자 연나라 왕이었던 노관의 부하 위만이란 자가 있었다. 위만은 한 고조의 숙청을 피하여 조선인으로 변장한 뒤 부하 1천 명과 함께 번조선의 준왕에게 투항하였다(BCE 195). 준왕은 그를 받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서쪽 변방인 상하운장을 지키는 장수로 임명하였다.

 

그런데 위만은 그곳에서 몰래 세력을 길러 이듬해에 왕검성을 쳐서 한순간에 준왕을 내쫓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BCE 194).『 삼국유사』와 현 역사학계는 위만이번조선을 탈취하여 세운 정권을 위만조선이라 부른다. 고조선의 정통을 계승한 또 다른 조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민족의 서쪽 영토 한 모퉁이를 잠깐 강탈하여 지배한‘ 위만정권’에 불과하다.

 

북쪽에 북부여가 열리기 전부터 이미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땅이던 막조선에도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요서지역(번조선)에 살던 대부호 최숭이 백성과 함께 진귀한 보물을 싣고 발해 바다를 건너 막조선으로 넘어왔다. 최숭은 오가의 부족장들에게 거금의 재물을 주고 왕검성(지금의 평양)을 넘겨받아 낙랑국을 세웠다(BCE 195). 강력한 한나라의 출현으로 요서지역에 위기감이 팽배한데다 위만을 비롯한 수많은 한족이 망명하여 오자, 어수선한 정국을 피해 최숭이 한반도 지역으로 와서 나라를 세운 것이다.

 

이처럼, 북부여가 세워진 후 만주의 진조선은 북부여에 흡수되고, 한반도의 막조선에는 낙랑국이 들어서고, 요서의 번조선은 위만이 차지함으로써 고조선의 역사는 완전히 문을 닫게 되었다.

 

 

북쪽에는 북부여, 남쪽에는 남삼한

준왕이 망하고 위만정권이 들어선 사건은 한민족에게 또 다른 역사 개척의 계기가 되었다. 번조선 땅이 위만에게 강탈당하자 상장군 탁卓이 사람들을 이끌고 한강 이남으로 이주하여 새로이‘ 마한’을 세웠다(BCE 194). 옛 진조선과 막조선의 일부 백성들도 한강 아래로 남하하여 각기‘ 진한’과‘ 변한’을 세웠다. 마한은 호남의 익산을, 진한은 경북 경주를, 변한은 경남 김해를 중심으로 하여 형성되었다. 비록 불의한 위만정권 때문에 남하한 것이지만, 한강 이남에서 새로운 삼한시대를 연 것이다.

 

단재 신채호는‘ 전후삼한설前後三韓說’을 주창하여 한반도에 형성된 삼한을‘ 후삼한(남삼한)’이라 부르면서, 고조선 시대의‘ 전삼한(북삼한)’과 구별하였다. 이 남삼한이 바로 강단사학계가 말하는 삼한이다. 고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읽는 핵심 코드인 삼한관경제를 인정하지 않는 한, 어떻게 두 가지 삼한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만주대륙의 북삼한이 부정되고 한반도의 남삼한만 거론됨으로써 우리 역사는 소한사관에 찌들게 되었다. 작은 삼한의 시야로 역사를 보는 것을‘ 소한小韓사관’이라 한다. 하지만 한민족사는 대륙을 누비던 큰 삼한의 관점‘, 대한大韓사관’으로 보아야 그 본연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북부여의 구국 영웅, 고두막한

북부여는 4세 단군에 이르러 역사적인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BCE 109년, 한 무제가 위만의 손자인 우거왕이 다스리던 위만조선으로 쳐들어왔다. 한나라는 초기에 연신 패하였으나 이간책으로 위만정권 지도층을 분열시켜 결국 우거를 죽이고 왕검성을 점령하였다(BCE 108). 이때 한 무제는 새로운 점령지에‘ 한나라의 군현[漢四郡]’을 설치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우거 제거에 공을 세운 한민족의 강한 저항에 부딪쳐 고조선 유민들의 자치를 인정하는 데 그쳐야 했다.

 

위만정권을 무너뜨린 한 무제는 요동을 넘어 북부여까지 침공하였다. 그런데 당시 북부여의 4세 고우루단군은 워낙 심성이 유약하여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도중에 병사하고 말았다. 이때 이를 지켜보던 고두막한高豆莫汗이 분연히 의병을 일으켜 한나라 군대를 물리치고 나라를 구하였다. 그러고는 졸본卒本에서 나라를 열어(BCE 108) 졸본부여라 하고, 스스로 동명왕東明王이라 칭하였다. 고조선을 계승한 북부여가 자칫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한민족 상고사 최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동명왕은 구국영웅으로 추앙받아 북부여의 5세 고두막 단군으로 즉위하였다(BCE 86).

 

원래 북부여의 4세 단군을 계승하여 잠시 보위에 있던 해부루는 동쪽의 차릉(가섭원)으로 이주하여 동부여를 세웠다. 이로써 부여는 동서로 나뉘게 되고 후기 북부여 시대가 시작되었다. 고두막한의 등장으로 전기 북부여 시대가 끝나고 새 역사가 시작되었지만, 북부여는 고두막 단군의 다음 대에 이르러 182년(BCE 239~BCE 58)의 짧은 역사를 끝내게 된다.

 

‘ 북부여가 고조선을 계승하였다’는 사실은 한민족 고대사의 국통 맥을 바로잡는 핵심 요체이다. 그런데 한국의 강단사학계는 위만정권을 고조선의 계승자로 앉혔을(BCE 194) 뿐 아니라,‘ 위만정권이 한나라에게 망한(BCE 108) 후 고조선이 있던 그 자리에 한나라가 네 개의 군[漢四郡]을 설치하였다’라고 가르친다. 북부여는 온데간데없고, 중국의 식민지인 위만조선과 한사군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강단사학자들은 또한 중국 사서와『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근거로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를 고구려 시조인 주몽의 아버지로 설정하였다.‘ 해모수와 유화부인 사이에 고주몽이 태어나 고구려를 열었다’라고 하여, 해모수와 주몽을 거의 동시대 인물로 만들었다. 180여 년에 걸친 북부여 6대 단군의 역사를 완전히 증발시켜 버린 것이다.

 

왜 북부여사는 이렇게 난도질되었는가? 그것은 사마천이『 사기』를 쓸 때, 한 무제가 동명왕 고두막한에게 대패한 치욕을 숨기고자 의도적으로 북부여사를 누락시킨 데서 비롯된다. 그 후 중국의 모든 사서에서 북부여 역사가 사라졌다. 고려와 조선의 사대주의 사서들이 이것을 그대로 모방하고, 일제 식민사학자와 국내 강단사학자들이 다시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였다.

 

 

서방으로 진출한 부여족

강단 사학계는 부여 역사를 외면하지만, 부여사는 단재 신채호가 한국 민족을 부여족이라고 부를 정도로 한민족사의 골간을 이룬다.

 

몇 안 되는 부여사 연구가 중에 신용하 교수는, 부여가 최소한 BCE 5세기부터 CE 5세기까지 약 천여 년 동안 만주 일대에 존재하였으며 CE 4세기 전반까지 동북아의 최선진국이었다고 말한다. CE 5세기라면『 환단고기』가 전하는, 북부여에서 분파된 마지막 부여인 연나부부여(서부여)가 멸망한 때(494)와 일치한다.

 

신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4세기 말경 부여족의 일파가 중앙아시아의 카스피 해와 흑해 사이에 위치한‘ 캅카스’지방으로 이주하였고, 그 후 5∼7세기 초까지 돈강 유역과 북캅카스 지역으로 계속 이주하였다. 7세기의 서양사에서부터 불가Bulghar족의 역사가 나오는데, 이 불가족이 곧 부여족이다.‘ 불가’란‘ 부여(불)의 가加’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635년 불가족은 족장 쿠브라트Kubrat의 지도력 아래‘ 대大 불가리아(Magna Bulgaria)’를 건국하였다. 하지만 몇 년 후 그가 사망하였고(642), 그의 다섯 아들은 격심한 권력싸움으로 불가리아를 해체시켰다. 그 중 세 아들이 이끈 불가족은 결국 주변 민족에 복속되고 말았지만, 둘째와 셋째 아들은 독립국가를 세웠다.

 

둘째 아들 코트라그Kotrag가 세운 나라,‘ 고추불가Kotchou-Bulghar국’은 14세기까지 번성하였고, 현재는 타타르 자치공화국(1920년 소비에트연방의 자치 공화국으로 성립됨)으로 존재한다. 타타르인의 언어 구조는 한국어와 동일하고, 생김새도 동양인의 모습이다.

 

셋째 아들 아스파르흐Asparukh가 이끈 불가족은 오늘날의 발칸 반도로 남하하였다. 당시 비잔틴 제국의 로마군 장교의 기록에 의하면, 불가족은 로마군과의 결전을 앞두고 하늘을 향해 조상신 단군Tangun에게 승전을 기원하는 제천의식을 행하였다. 이것은 환단 시대 이래로 동방 한민족이 일관되게 거행해 오던 천제 풍속을 서방으로 이주한 부여족도 그대로 따랐음을 보여준다.

 

이 불가족은 마침내 로마군을 물리치고 불가리아 제1제국(681∼1018)을 건국하였다. 불가족은 귀족 계층이 되어 보야Boyar(부여의 유사 발음인 부유의 모음조화에 따른 변음)라 불렸고 슬라브족을 농민으로 삼아 다스렸다. 황제 크룸Krum에 이르러 주변의 로마군을 대부분 추방하고 수도를 옮겨 소비(또는 사비, 지금의 소피아)라 불렀다. 황제는 소비의 산에 올라 단군에게 제사를 올리고, 그 산 이름을 발칸산으로 정하였다. 신 교수는‘ 발칸산’을‘ 밝안산’‘, 밝산’‘, 백산白山’등의 우리말 지명과 동일한 것으로 보며, 한민족은 고대로부터 백산(밝은 산)에 올라 제천 의식을 행하였다고 말한다. 지금도 크룸 황제의 제천 유적이 일부 남아 있다는 이 발칸산에서 발칸 반도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크룸 황제가 병사한(814) 후 불가리아는 국력이 점점 약화되었다. 12세기에 불가리아 제2제국(1186∼1330)을 세웠지만 그 지배층은 제1제국 때와는 많이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다. 소수 불가족과 다수 슬라브족 사이의 혼혈로 슬라브족의 생김새를 많이 띠게 되었다.

 

그렇지만 발칸 산, 발칸 반도, 소비 등의 지명 속에 부여의 자취가 남아 있고, 불가리아 말의 문법 구조와 풍습(정월 달집놀이, 굿거리 등)에서도 한민족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불가리아인은 백인 세계에서 유일하게 갓난아기의 엉덩이 반점, 일명 몽고반점이 나오는 민족이다. 이 모든 것은,‘ 불가리아는 동방에서 온 부여족이 세운 국가’라는 신 교수의 주장처럼, 불가리아의 원 조상이 바로 부여족이었음을 가리키고 있다.

 

 

부여사를 찾는 날이 곧 역사 광복의 날

『후한서』,『 삼국지』 등 중국 역사서에 나오는 부여사는 모두 서부여의 역사이다. 서부여는 동부여가 망한 후 요서에 생긴 망명부여로서, 서부여사는 부여의 끝자락 역사이다. 예를 들어『 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울구태蔚仇台, 간위거簡位居, 마여麻余, 의려依慮 등은 모두 서부여의 왕이다. 그런데도 강단사학계에서 나온 책과 논문들은 서부여를 부여의 원래 모습인 양 그리고 있다. 그 이유는 부여에 대한 단편적이고 왜곡된 정보를 담고 있는 중국 사서의 기록에만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부여의 원형이 처참히 파괴되고 한국사의 허리가 잘려 버렸다. 한국사의 국통 맥이 어지러워지고 뿌리 역사가 소멸되었다. 북부여라는 잃어버린 고리가 고조선과 고구려 사이에 제대로 연결되는 그날이 바로 동방 배달민족사의 9천 년 국통 맥이 온전하게 똑바로 서는 역사 광복의 날이 될 것이다.

 

 


(원문: 상생출판 환단고기)


조회 수 :
248
등록일 :
2012.12.27
00:29:52
엮인글 :
게시글 주소 :
http://mission1691.com/a21/2791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수 날짜sort
공지 증산도 ‘후천 신선문화 수행법 file 태일[太一] 476 2022-12-24
공지 인간이라면 누구도 꼭 가야 되는 길이 있다 file 태일[太一] 2249 2020-02-19
66 표충비 땀흘리다. 태일[太一] 140 2008-09-09
땀 흘리는 표충비 [연합뉴스 2004-06-21 15:54]   (밀양=연합뉴스) 심수화 기자 = 국가 중대사가 있을때마다 땀을 흘리는 것으로 알려진 경남 밀양시 무안면 홍제사 표충비에서 지난 20일 또 땀을 흘려 관심을 끌고 있다. 21일 홍제사와 밀양시 등에 따르면 ...  
65 위기의 시대와 영적진화 맑은바람 151 2008-09-15
우주에너지가 영적진화를 야기한다/ 모이라 팀스. 모이라 팀스 20세기 말은 지구의 상처를 치료하는 위기의 시대 동서의 여러 예언들에 의해 예고된 것처럼 곧 지구차원의 대재난(기아,질병,각종 천재지변,극이동)이일어난다. 그러나 그녀는 이것은 단순한 파...  
64 가을개벽 소식을 전한 동서고금의 메세지 맑은바람 237 2008-09-15
예언이란 미래의 운명을 예고하는 것이다. 인간이란 미래의 꿈을 먹고 사는 영물이기에 우리가 언제가는 밟아가게 될 미지의 운로에 대한 탐색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래의 소식을 전해주는 예언가에는 네 유형이 있다 첫째, 자연의 변화원...  
63 천지자연과 인류문명의 대변혁을 경고한 미셀 노스트라다무스 맑은바람 130 2008-09-15
 예언가의 왕으로 일컬어지는 노스트라다무스. 그는 남프랑스 살롱지방에서 자신이‘비밀의 방’이라 불렀던 서재에서‘미래로 가는 통로’라고 이름한 검은 거울을 통해, 하늘의 소리를 들으며 예언서『백시선』을 집필했다.    뉴욕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다 ...  
62 미국 대륙은 반으로 쪼개질 것입니다. 맑은바람 151 2008-09-15
Q. 지진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까? A. 미국의 서부에 심각한 파괴가 있습니다. 강도 8, 9 혹은 그보다 더 강한 지진이 캘리포니아에서 있을 것이며, 그 근방의 대도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대규모의 이주를 할 것입니다. Q. 지구에 닥쳐올 다른 변화에 대해서 ...  
61 루치아 수녀에게 보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편지 맑은바람 158 2008-09-15
루치아 수녀에게 보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편지 (원문) (번역) 쿠임브라 수녀원에 계신 존경하는 마리아 루치아 수녀님께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이 말씀으로 저는 수녀님께 부활의 큰 기쁨 속에서 인사...  
60 [조용헌 살롱] 새만금과 천년왕국설(千年王國說) 맑은바람 253 2008-09-15
새만금과 천년왕국설(千年王國說) 기사입력 2008-09-08 23:10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서양에 노스트라다무스가 있다면, 한국에는 정감록(鄭鑑錄)이 있다. 사람들이 노스트라다무스에는 관심이 많지만, 정감록은 알지 못한다. 중국과 일본을 돌아다녀 보...  
59 『부도지(符都誌)』 맑은바람 162 2008-09-15
내물이사금 시절 삽량주(오늘의 경남 양산)간(干)을 지낸 박 제상(朴 堤上)이 쓴 『 징심록 십오지』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부도지(符都誌)』에 의하면, 육만 삼천년 전 파미르고원에 마고성이 있었고, 마고성의 성주는 마고할머니였는데, 마고할머니가 두 ...  
58 조국(대한민국)을 떠나지 말라--용호대사 정북창의 예언 맑은바람 203 2008-09-15
해외 어학연수나 해외 사시는 분,직장때문에 외국에 사는분, 대한민국이 싫어서 이민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이 구절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할것입니다. 일명 용호대사(龍虎大師)로 불리는 「정북창(鄭北窓)」 선생 (1506~1549)은 조선 중종, 명종 때의 학자로 충...  
57 풀리지 않는 예언 궁을가를 풀다 맑은바람 283 2008-09-15
<< 궁을가 해제 >> [궁을가(弓乙歌)에 ‘조선강산 명산이라 도통군자 다시 난다.’하였으니 또한 나 의 일을 이름이니라.] (道典 3:129:13) 궁을가는 증산 상제님께서 직접 인용하시고 확인해 주신 비결가사(秘訣歌詞)이다. 궁을가는 ‘대개벽기에 살길을 만나려...  
56 [정감록] 1.임진왜란에 대한예언 맑은바람 173 2008-09-15
" src="http://mission1691.com/zbxe/?module=editor&act=procEditorCall&method=view_image&component=soo_naver_image&type=jpg&url=blogfiles.naver.net/data32/2008/5/5/78/2008043001032330024003_b_bluehj87." width=430 query="정...  
55 [정감록] 2. 병자호란에 대한 예언 맑은바람 145 2008-09-15
17세기 전반에 일어났던 병자호란(인조 14년, 1636)은 우리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패전이었다. 몽고에 대한 항쟁이 40여 년간 계속되었고, 임진왜란에서는 7년간의 싸움 끝에 왜군을 격퇴한 데 반하여, 병자호란은 불과 2달만에 조선의 굴복으로 끝나고 말았...  
54 최근 인터넷에 떠도는 정도전 예언-숭례문이 불타면 맑은바람 200 2008-09-15
정도전 예언 숭례뭉이 불타면 국운이 다한것이니 백성들은 멀리 피난을 가야 할 것이다. 첫번째 선조 25년이었던 1592년 4월 한양 도성의 남문이었던 숭례문에서 작은 화재가 발생 초기진화에 성공해 화재를 면했다. 비록 작은 화재였지만 조정과 한양백성들...  
53 『진인도통연계(眞人道通聯系)』 file 진리의 빛 331 2008-09-28
『진인도통연계(眞人道通聯系)』 주장춘(명나라 신종때 절강성 오흥현사람. 자는 대복 신종 만력 때(1573-1620년)에 진사에 올라 형주부사까지 벼슬 오름. 저서로 관자각이 있음) 山之祖宗은 昆崙山이니 原名은 須彌山也라. 산의 근원은 곤륜산이니, 곤륜산의...  
52 [조용헌 살롱] 도가(道家)의 최풍헌(崔風憲) file 진리의 빛 639 2008-10-14
[조용헌 살롱] 도가(道家)의 최풍헌(崔風憲) 기사입력 2008-06-30 23:05 조용헌"지난 임진왜란에 정란(靖亂)의 책임을 최풍헌(崔風憲)이 맡았으면 사흘 일에 지나지 못하고, 진묵(震默)이 맡았으면 석 달을 넘기지 않고, 송구봉(宋龜峯)이 맡았으면 여덟 달 ...  
51 생활속에 내려오는 개벽이야기 file 태일[太一] 310 2008-10-15
우리민족의 생활속에서 전해내려오는 개벽에 대한 속담이나 격언, 육두문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렸하고 산천이 수려하여 수많은 선조들이 수행을 하여 많은 도인들이 나왔습니다. 그런 많은 도인들이 후손들에게 닥쳐올 개벽을 ...  
50 노스트라다무스 (예언가의 왕) file 맑은바람 185 2008-11-05
미셸 노스트라다무스(Michel Nostradamus, 1503~1566)는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 생 레미라는 곳에서 태어난 유태인입니다. 예언가의 왕으로 일컬어지는 그는 남프랑스 살롱지방에서 자신이‘비밀의 방’이라 불렀던 서재에서‘미래로 가는 통로’라고 이름한 검...  
49 충격보고서 : 일본 열도 대침몰의 진행 file 태일[太一] 144 2008-11-08
충격보고서 : 일본 열도 대침몰의 진행 * 일본은 불로 치고 서양은 물로 치리라. 세상을 불로 칠 때에는 산도 붉어지고 들도 붉어져 자식이 지중하지만 손목 잡아 끌어낼 겨를이 없으리라.[증산도 道典7:15] -동경대 자연과학부의 다찌바나 교수와의 인터뷰 ...  
48 황제내경이 전하는 천지변국 file 태일[太一] 125 2008-11-08
동해의 신선 현녀(玄女)가 황제에게 전해 준 『음부경(陰符經)』은 세계의 종말 문제와 그 근본이유를 대도차원에서 극히 간결하게 밝혀주고 있다. 또한 ‘동양 한의학, 동양철학, 우주법도’의 성전(聖典)이라 불리는 『황제내경(黃帝內經)』을 보면, 황제와 ...  
47 호랑이 거시기에 힘이 꽉 찰 때 대한민국은 비상한다 . file 진리의 빛 410 2008-12-27
호랑이 거시기에 힘이 꽉 찰 때 대한민국은 비상한다 . 한반도는 만주를 희롱하는 호랑이 형상 http://blog.empas.com/bgjhhj/21786747_757x757.jpg 조선 명종때 풍수지리학자이자 예언자인 남사고(南師古) 선생은 『동해산수비록(東海山水□錄)』에서 "한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