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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쓸 때가 되면 바람과 구름, 비와 이슬, 서리와 눈을 뜻대로 쓰게 되리니 일심혈심(一心血心)으로 수련하라. 누구나 할 수 있느니라
    - 증산도 도전11:117
증산도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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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사교과서에는 B.C.37년으로 추정…
  그러나 한무제(漢武帝. B.C.140∼135년)가 朝鮮을 滅할 때 고구려현(高句麗縣)을 두었다고…



  ★ 고구려(高句麗), 즉 구려(句驪)의 건국 시기는 B.C.232년, 망한 것은 A.D.668년이다. 그러므로 900년간 고구려는 지속되었다.
  
   고구려(高句麗)를 말한다면 구려(句麗), 또는 고려(高麗), 또는 고리(高?)라고도 한다.

  ★ 삼국사기(三國史記)와 다른 사서(史書)들은 고구려 건국을 B.C.37년으로 보고 있으나, 漢나라 무제(武帝. B.C.140∼135년)가 朝鮮을 滅할 때 고구려현(高句麗縣)을 두었다고 되어있다.
  그렇다면 高句驪縣은 漢나라 武帝 때 있었으므로 그보다 1백 년 훨씬 이전에 이미 句麗國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三國史記 高句麗篇 28대 보장왕(寶藏王28대. A.D.634∼668년) 27년을 보자.
  『高氏自漢有國 今九百年, 高句麗自秦漢之後』

  고구려는 한나라와 같은 뿌리이며, 9백년간 존속했으며, 진한(秦漢)의 뒤를 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기존 국사교과서에서 건국연대를 BC.37년으로 잡는다면, 고구려의 존속기간은 725년에 불과하다.

  ★ 고구려는 본시 부여국(扶餘國)에서 발생한 것으로 삼국사기(三國史記)ㆍ삼국유사(三國遺事)ㆍ후한서 동이전(後漢書東夷傳)ㆍ삼국지(三國志)ㆍ진서(晉書)ㆍ송서(宋書)ㆍ남제서(南齊書)ㆍ양서(梁書)ㆍ위서(魏書)ㆍ주서(周書)ㆍ수서(隋書)ㆍ남사(南史)ㆍ구당서(舊唐書)ㆍ당서(唐書)ㆍ북사(北史)ㆍ통전(通典)ㆍ통지(通志)ㆍ태평어람(太平御覽)ㆍ책부원구(冊府元龜) 등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부여국의 뿌리는 고리국(?離國)이다. 본래 고구려는 고리국(?離國)의 뿌리에서 유래되었었다.

그러기에 고구려는 고리국(?離國)에서 고리국(?離國)으로, 또는 구려(句驪)에서 고리(高?)로 이어져 내려왔다.
  고리국(?離國)과 부여국이 있던 곳에서 고구려가 발생했다.



  ★ 양서(梁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高句麗者, 其先出自東明, 東明本北夷?離王之子, 離王出行, 其侍兒於後任娠, 離王還欲殺之, 侍兒曰, 前見天上有氣, 如大?子, 來降我, 因以有娠, 王囚之, 後遂生男, 王置之豕牢, 豕以口氣噓之, 不死, 王以爲神, 乃聽收養, 長而善射, 王忌其猛, 後欲殺之, 東明乃奔走, 南至淹滯水, 以弓擊水, 魚鼈皆浮爲橋, 東明乘之得渡, 至扶餘而王焉, 其後支別爲句驪種也, 其國漢之玄?郡也』

  고구려의 선조는 東明으로부터 나왔다. 동명은 본래 북이(北夷) 고리국(?離國)의 왕자이다.
  고리국왕이 출타한 후 그 시녀가 후에 임신을 하였다. 고리왕이 돌아와 죽이려고 했다. 시녀가 말하기를 전에 天上의 기운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큰 계란같은 것이 내게 내려왔다. 그로인해 임신을 한 것이라 했다.
  하지만 고리왕은 듣지 않고 가두어 버렸다.
  그 후 아들을 낳았다. 왕은 그 아들을 돼지우리에 두게 했으나 돼지는 입으로 기(氣)를 불기만하고 죽이지 아니했다. 고리왕은 이상히 여겨 神이 위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 그 얘기를 듣고는 거두어 길렀다.
  아이는 점점 성장하면서 명사수가 되었다.
  왕은 그 용맹스러움을 꺼려 다시 죽이려 했다.
  東明은 달아나 남쪽인 엄체수(淹滯水)에 이르렀다. 군사들이 뒤쫓아와 활을 쏘았으나 물에 떨어졌다. 물고기와 자라 등 모두 떠올라 다리를 놓았으므로 東明은 그 등에 올라타고는 무사히 강을 건넜다.
  그리고 부여에 이르러 왕이 되었다.
  그 후 가지로 떨어져나가 구려(句驪)가 되었다. 그 나라는 한(漢)나라 때의 현도군(玄?郡)이다.

 ◇ 고리국(?離國)은 지금의 북경(北京) 남쪽인 고안현(固安縣)이며, 고리국에서 갈라져나온 부여국은 고안현 서남(西南)에 있는 신성(神城)이라고, 중국고금지명대사전(中國古今地名大辭典)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부여국은 고리국 서쪽인 지금의 여현(?縣) 지방에 있었다(梁書 高句麗編 참고).

  본래 고리국(?離國)에서 갈라져 나온 부여국은 나라가 커짐에 따라 동부여(東扶餘)와 남부여(南扶餘), 그리고 북부여(北扶餘) 등으로 갈라지게 된다.




  ★ 그러므로 高句麗의 建國은 고리국에서 생겼다는 說, 扶餘 解夫婁王의 庶子로 생겼다는 說, 또한 扶餘의 별종(別種)는 몇 가지의 建國說로 볼 수 있다. 그러나 高句麗는 三韓의 君長으로부터 高氏로 이어져 왔으며 高氏의 먼 祖上은 堯, 舜임을 通典에는 紀錄하고 있다.
  여하간 高句麗의 建國은 三韓의 뿌리인 韓에서 고리국(藁離國)으로부터 扶餘, 句驪로 基源되었음을 正史에서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고리국(?離國. B.C.260∼230년)에서 파생된 구려(句驪)는 獨立하여 나라를 세우고 大陸 여러 곳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後漢書 句驪편을 보면 句驪는 一名 맥이(貊耳)라 했으며 河伯의 後裔로서 강물을 위주로 살았다고 했다. 그로 인해 소수맥(小水貊)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했다. 句驪人들은 활을 가지고 다니기를 좋아했으므로 맥궁(貊弓)이라고도 했다고 적고 있다를 말한다면 구려(句麗), 또는 고려(高麗), 또는 고리(高?)라고도 한다.

  ★ 삼국사기(三國史記)와 다른 사서(史書)들은 고구려 건국을 B.C.37년으로 보고 있으나, 漢나라 무제(武帝. B.C.140∼135년)가 朝鮮을 滅할 때 고구려현(高句麗縣)을 두었다고 되어있다.
  그렇다면 高句驪縣은 漢나라 武帝 때 있었으므로 그보다 1백 년 훨씬 이전에 이미 句麗國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三國史記 高句麗篇 28대 보장왕(寶藏王28대. A.D.634∼668년) 27년을 보자.
  『高氏自漢有國 今九百年, 高句麗自秦漢之後』

  고구려는 한나라와 같은 뿌리이며, 9백년간 존속했으며, 진한(秦漢)의 뒤를 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기존 국사교과서에서 건국연대를 BC.37년으로 잡는다면, 고구려의 존속기간은 725년에 불과하다.

  ★ 고구려는 본시 부여국(扶餘國)에서 발생한 것으로 삼국사기(三國史記)ㆍ삼국유사(三國遺事)ㆍ후한서 동이전(後漢書東夷傳)ㆍ삼국지(三國志)ㆍ진서(晉書)ㆍ송서(宋書)ㆍ남제서(南齊書)ㆍ양서(梁書)ㆍ위서(魏書)ㆍ주서(周書)ㆍ수서(隋書)ㆍ남사(南史)ㆍ구당서(舊唐書)ㆍ당서(唐書)ㆍ북사(北史)ㆍ통전(通典)ㆍ통지(通志)ㆍ태평어람(太平御覽)ㆍ책부원구(冊府元龜) 등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부여국의 뿌리는 고리국(?離國)이다. 본래 고구려는 고리국(?離國)의 뿌리에서 유래되었었다.

그러기에 고구려는 고리국(?離國)에서 고리국(?離國)으로, 또는 구려(句驪)에서 고리(高?)로 이어져 내려왔다.
  고리국(?離國)과 부여국이 있던 곳에서 고구려가 발생했다.



  ★ 양서(梁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高句麗者, 其先出自東明, 東明本北夷?離王之子, 離王出行, 其侍兒於後任娠, 離王還欲殺之, 侍兒曰, 前見天上有氣, 如大?子, 來降我, 因以有娠, 王囚之, 後遂生男, 王置之豕牢, 豕以口氣噓之, 不死, 王以爲神, 乃聽收養, 長而善射, 王忌其猛, 後欲殺之, 東明乃奔走, 南至淹滯水, 以弓擊水, 魚鼈皆浮爲橋, 東明乘之得渡, 至扶餘而王焉, 其後支別爲句驪種也, 其國漢之玄?郡也』

  고구려의 선조는 東明으로부터 나왔다. 동명은 본래 북이(北夷) 고리국(?離國)의 왕자이다.
  고리국왕이 출타한 후 그 시녀가 후에 임신을 하였다. 고리왕이 돌아와 죽이려고 했다. 시녀가 말하기를 전에 天上의 기운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큰 계란같은 것이 내게 내려왔다. 그로인해 임신을 한 것이라 했다.
  하지만 고리왕은 듣지 않고 가두어 버렸다.
  그 후 아들을 낳았다. 왕은 그 아들을 돼지우리에 두게 했으나 돼지는 입으로 기(氣)를 불기만하고 죽이지 아니했다. 고리왕은 이상히 여겨 神이 위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 그 얘기를 듣고는 거두어 길렀다.
  아이는 점점 성장하면서 명사수가 되었다.
  왕은 그 용맹스러움을 꺼려 다시 죽이려 했다.
  東明은 달아나 남쪽인 엄체수(淹滯水)에 이르렀다. 군사들이 뒤쫓아와 활을 쏘았으나 물에 떨어졌다. 물고기와 자라 등 모두 떠올라 다리를 놓았으므로 東明은 그 등에 올라타고는 무사히 강을 건넜다.
  그리고 부여에 이르러 왕이 되었다.
  그 후 가지로 떨어져나가 구려(句驪)가 되었다. 그 나라는 한(漢)나라 때의 현도군(玄?郡)이다.

 ◇ 고리국(?離國)은 지금의 북경(北京) 남쪽인 고안현(固安縣)이며, 고리국에서 갈라져나온 부여국은 고안현 서남(西南)에 있는 신성(神城)이라고, 중국고금지명대사전(中國古今地名大辭典)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부여국은 고리국 서쪽인 지금의 여현(?縣) 지방에 있었다(梁書 高句麗編 참고).

  본래 고리국(?離國)에서 갈라져 나온 부여국은 나라가 커짐에 따라 동부여(東扶餘)와 남부여(南扶餘), 그리고 북부여(北扶餘) 등으로 갈라지게 된다.




  ★ 그러므로 高句麗의 建國은 고리국에서 생겼다는 說, 扶餘 解夫婁王의 庶子로 생겼다는 說, 또한 扶餘의 별종(別種)는 몇 가지의 建國說로 볼 수 있다. 그러나 高句麗는 三韓의 君長으로부터 高氏로 이어져 왔으며 高氏의 먼 祖上은 堯, 舜임을 通典에는 紀錄하고 있다.
  여하간 高句麗의 建國은 三韓의 뿌리인 韓에서 고리국(藁離國)으로부터 扶餘, 句驪로 基源되었음을 正史에서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고리국(?離國. B.C.260∼230년)에서 파생된 구려(句驪)는 獨立하여 나라를 세우고 大陸 여러 곳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後漢書 句驪편을 보면 句驪는 一名 맥이(貊耳)라 했으며 河伯의 後裔로서 강물을 위주로 살았다고 했다. 그로 인해 소수맥(小水貊)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했다. 句驪人들은 활을 가지고 다니기를 좋아했으므로 맥궁(貊弓)이라고도 했다고 적고 있다

 

 http://www.yulgon.kr/html/history02-2-1.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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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2.12.02
16: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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