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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활의 민족'이다

[세계일보 2009-04-07 17:18]

[박정진의 武脈]⑤중정(中正)의 무예, 국궁(國弓)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활의 민족이다. 아시다시피 동이족(東夷族)의 이름에도 바로 큰 활, 대궁(大弓=夷)의 의미가 들어 있다. 아마도 고대에서부터 중국 쪽에서 보면 우리 민족은 활로서 대표되고 상징되는 민족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실지로 우리의 활은 그렇게 크지 않았던 것 같다. 활을 잘 쏘고, 활을 주병기로 사용하는 ‘활이 강한 민족’이라는 뜻이다. 활의 크기는 덥고 습도가 높은 해양성 국가일수록 크다. 활의 크기는 우리나라에 비해 중국과 일본, 몽고가 더 크다. 그런데 그 성능은 우리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우리의 활은 작으면서도 멀리 날아가는 것이 특징이다. 말을 타고서도 자유자재로 쏘기 위해서는 활과 화살이 작아야 한다. 특히 마상에서 활쏘기는 우리 민족의 특기이다. 달리는 마상에서 날아가는 새를 쏘아 떨어뜨리는 무용담은 낯설지 않다.

◇의관과 장비를 갖추고 활을 쏘는 장영민 사범.

우리 각궁(角弓, 복합궁)의 경우, 전투용과 습사용이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100m에서 200m 사이를 날아가는데 비해 중국, 일본, 몽골 등 다른 나라의 활은 사거리가 그 반(半)에 불과하다. 활은 사람이 당기는 힘을 탄성에너지로 축적했다가 화살의 운동에너지로 전환하는 기구이다. 긴 활은 살을 메겼을 때 시위의 각도가 넓어서 탄성에너지가 화살에 미치는 힘이 약해진다. 한국은 활이 주 병기이기 때문에 여러 복합적인 재료를 써서 가볍고 작으면서도 멀리 날아가는 최첨단의 활을 개발하였던 것 같다. 도리어 너무 활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서 다른 병기의 개발과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은 불리한 측면마저 있었다. 일본이 칼, 중국이 창이나 전차에 의존하여 전쟁을 한 반면에 우리는 임진왜란 때까지도 활에 의존했다.

한국의 활이 작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쇠뇌(弩)라고 하는 것은 장거리 공격을 위해 제작된 큰 활로서 마치 요즘 화포(火砲)와 같은 구실을 하는 파괴력 있는 무기였다. 특히 신기전(神機箭)은 다발화포, 로켓병기와 같은 것이었다. 대나무로 만들어진 화살대의 윗부분에 약통(로켓엔진)을 부착하고 폭탄에 해당하는 방화통을 약통 위에 올려놓고 도화선을 약통과 연결하여 폭발하도록 하였다. 임난 때 이순신 장군은 쇠뇌를 잘 사용하였던 것으로 기록은 전한다. 또한 일반 화살보다 그 길이가 반도 안 되는 편전(片箭)은 조선의 비밀병기로서 세계적으로도 유일하다. 우리 민족은 활을 좋아하였을 뿐만 아니라 좋은 활을 만드는 과학성을 갖추고 있었다. 여러 재료를 사용하여 우수한 활을 만드는 데 부지런하였다.

활의 생명은 바로 활의 탄력성에 있다. 우리의 각궁은 당시로서는 가장 탄력성이 우수한 무기였다. 활의 탄력성을 높이기 위해 산뽕나무, 참나무, 대나무를 주재료로 하면서 안팎으로 무소뿔과 쇠심줄을 둘렀고, 접착 효과를 높이기 위해 민어 부레를, 방습 효과를 위해 자작나무 껍질을 사용했다. 각궁은 백팔십도 뒤집어서 쓰는 만곡궁(彎曲弓)인 까닭에 다른 민족의 일자형(一字弓)보다는 탄력이 우수하였다. 중국에서는 고조선의 활을 단궁(檀弓), 맥궁(貊弓), 낙랑단궁(樂浪檀弓)이라고 하였다.

◇각궁을 만드는 재료와 과정.

꽃샘추위가 아직도 가시지 않는 봄날, 우리 활의 종가(宗家)라고 할 수 있는 황학정(黃鶴亭)을 찾았다. 서울 시내에서 멀지 않은 사직공원 바로 위쪽이다. 황학정은 갑신정변 후 약화된 상무정신을 진작하고자 고종의 어명으로 경희궁 회상전 북쪽에 세운 사정(射亭)이다. 경희궁이 헐리면서 현재의 위치인 등과정(登科亭) 옛터에 옮겨졌다. 황학정 건물(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5호)로 그때 옮겨왔다. 황학정기에 따르면 인왕산 서촌에는 풍소정, 등과정, 등룡정, 운룡정, 태극정 등 다섯 사정이 있었다고 한다.

황학정 35대 사두(射頭) 신동술(申東述)씨와 사범 장영민(張榮珉)씨가 맞았다. 마침 이날 고문으로 있는 이선중(李善中) 전 법무부 장관도 활 쏘러 오는 날이라고 했다. 몇몇 회원들이 바람이 부는 쌀쌀한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현재 회원이 170여명. 황학정은 전국의 350개 활터의 종가이다. 고종 임금이 활을 쏘던 경희궁의 전통을 잇고 있어서 그런지 활 애호가들의 성소(聖所)처럼 느끼는 곳이다.

이선중(85) 고문은 “예부터 선비들이 몸에 익힌 무예지만 제가 이 나이가 되도록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모두 활 덕분입니다”라고 ‘활 예찬론’을 털어놓는다. 1965년부터 황학정에 오른 뒤 지금까지 40년 넘게 한 달에 20일가량 활쏘기를 해왔다. “정신 집중과 전신 근육 사용이 필요하므로 건강 유지에 매우 적합하다”고 한다.

이 고문은 활쏘기의 요령을 물으니까 사무실 벽에 걸린 ‘집궁제원칙(執弓諸原則)’과 ‘궁도9계훈(弓道9戒訓)’을 가리키고 읽어 내려가면서 해석한다. 활은 잡으면 우선 바람의 세력을 살피고, 가슴을 비게 하고, 줌손은 배에 힘을 주면서 태산을 밀듯이 힘있게 앞으로 미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궁도에서는 겸손과 청렴겸직이 으뜸이다. 활을 쏠 때는 침묵을 지키고, 이긴 사람을 원망하지 않으며, 타인의 활을 당기지 않는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황학정에서 활을 쏜 옛 흔적, 등과정이라는 음각이 새겨져 있다.

황학정은 국궁인 대한궁도협회를 정부 수립을 하자마자 발족한다(1948년 8월25일). 이어 양궁협회 창립도 주도하였다. 1961년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뒤에 대한궁도협회(조선궁술연구회가 전신) 간부들 앞에서 “북한에서는 이미 국제양궁연맹에 가입했는데 우리는 뭐 하는 겁니까?”라는 질책에 따라 서둘러서 1963년 7월27일 일본과 자유중국의 추천과 지지로 국제양궁연맹에 가입하게 된다. 그동안 양궁은 대한궁도협회 산하에 양궁부로 있다가 대한양궁협회로 분가하였다(1983년 3월4일). 양궁은 올림픽에서 우리의 메달 종목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대한민국이 ‘활의 나라’라는 사실을 세계에 선전하고 있는 셈이다. 대외적으로는 ‘활의 나라’의 명성을 양궁이 이어가고 있지만 국궁은 ‘전통 궁예’로서 민간에 의해 잘 계승되고 있다. 국궁 인구는 현재 2만5000여명에서 3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황학정 대한궁도협회는 2002년에 ‘장안 편사놀이 보존회’(서울시 무형문화재 7호)를 서울시에 발족하고, 2007년에는 시대에 맞추어 황학정을 사단법인화하였다. 호국무예 국궁은 그 명성에서 양궁에 밀리기는 하였지만 민간 차원에서 선비 스포츠, 정신 스포츠로서 각광받고 있어 양궁보다 열 배 이상의 많은 동호인들이 즐기고 있다. 생활체육궁도연합회가 주최하는 ‘민족궁대회’,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주최하는 ‘영조 임금, 탕평(蕩平)의 활을 쏘다’ 등이 민간의 국궁보존의식을 고취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활을 잘 쏘기도 하였지만 역시 활의 성능도 우수하였던 셈이다. 문반과 무반 벼슬아치는 물론 일반 백성과 부녀자들까지도 활을 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궁궐은 물론, 도시 주변의 산에는 으레 사정이 있었으며 일종의 국기였다. 활쏘기 대회는 거의 일상사에 가까웠다. 활쏘기는 흔히 관덕(觀德)이라고 한다. “예기(禮記)” ‘사의(射義)’편에 “활쏘기는 인(仁)의 길이다”, “활쏘기는 자기 자신에게서 바른 것을 구한다”, “몸을 바르게 한 후에 쏜다”, “쏘아서 맞히지 못하면 이긴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있다. 바를 정(正)자가 두드러진다. 무예로서 인(仁)을 실천하는 것이 바른(正) 것이고, 그래서 ‘관덕’이라고 하였다.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85세의 황학정 고문 이선중 전 법무부 장관.

황학정의 정기(亭記)에는 “활쏘기는 하나의 재주이지만 하나의 도(道)로서 이어져왔다(射雖一藝循環一道)”, “읍하고 사양하며 활을 쏘는 것은 예를 강하는 것이다(揖讓講禮)”라는 글귀가 있다. 논어나 예기에 나오는 대목이 눈에 띄는 것은 그만큼 활쏘기가 선비들의 무예이기 때문이었다. 궁도장에는 으레 ‘정간(正間)’이라는 글귀가 있었다. 이 글자를 놓고 궁도인 사이에도 해석이 분분하지만 궁도의 성질상 ‘순간(瞬間)에 과녁을 바로 맞혀야(正) 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성싶다. 사이 간(間)자라는 것은 시간(時間)과 공간(空間)과 인간(人間)에 두루 쓰이는 것으로 이 세 간자가 삼위일체가 되어야 궁도가 완성된다는 의미일 것 같다.

활은 선비들의 육예(六藝: 禮樂射御書數)에 들어갈 정도로 문무가 모두 수련한 것이어서 무예로서의 대접이 때로는 소홀하였지만 활은 적과의 먼 거리에서 승부를 낼 수 있는, 오늘로 말하면 우수 병기였으며 인류 전쟁사에서 총이라는 것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병기의 총아였다. 중국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 고구려의 활과 북동풍(北東風)의 바람이다. 이것이 불어오면 중국에 큰 변이 생기는 징조였다. 이것은 우리가 중국의 전차와 북서풍(北西風)을 싫어하는 것과 대조된다. 중국의 전차와 북서풍은 바로 중국이 한반도로 쳐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언제나 국경을 접한 나라는 가깝고도 먼 사이일 수밖에 없다. 일본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을 쏘는 수렵도는 고구려 벽화에도 보이지만 바로 마상에서 쏘는 활이었기에 활은 작고 화살은 짧은 것이 효과적이었다. 적이 오면 재빨리 활을 쏘아대면서 응전을 할 수 있었다. 때로는 성안에서 멀리 다가오는 적을 사전에 궤멸해버리는 것이 무서워서 중국도 우리 민족을 침범할 때는 항상 활의 사거리를 감안하여 공격하곤 했다. 중국과 한국은 언제나 두려워하면서 지냈던 것이 양국의 고대사였다.

◇황학정 회원들이 활시위를 당기고 과녁을 바라보고 있다.

황학정과 같은 사정(射亭)은 본래 병사들이 훈련을 하는 곳이었다. 궁성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면서 평소에 각종 무예를 훈련하고 유사시에 궁성을 지키는 책임을 맡는다. 사정으로는 황학정 이외에도 남산의 석호정(石虎亭)과 비파정(琵琶亭)이 유명하다. 황학정이 왕과 문무백관이 활을 쏘던 곳이라면 석호정은 민간이 주로 활을 쏘던 곳이다. 특히 비파정은 활터일 뿐 아니라 조선 정예 별기군의 무예 훈련 장소이다. 남산의 북쪽 자락에는 중앙 삼군영이라 불리는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의 군사들의 무예 수련장이 집중되어 있었다. 비파정에서는 훈련도감 군사들이, 남소영에서는 어영청 군사들이, 남별영에서는 금위영 군사들이 무예를 갈고닦았던 것이다.

오늘날 장충단(奬忠壇)공원은 1895년 일제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당시, 이를 저지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훈련대장 홍계훈과 궁내부대신 이경직 등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고종이 설치하도록 지시한 곳이다. 이후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으로 순직한 문·무신들까지 추가하여 장충단은 대한제국 당시 오늘날의 ‘현충원’ 역할을 했다. 장충단에서는 봄가을로 엄숙한 제사가 거행되었으며 이는 대한제국의 장병들과 일반 백성들의 저항의식을 고취했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십팔기 옛터’로 알려진 비파정은 조선 후기 최대 군영인 훈련도감의 군사들이 무예를 훈련하는 곳이었다. 당시 십팔기를 전문으로 익히는 별기군(別技軍)이 있었는데 2월부터 9월까지는 비파정에서, 10월부터 정월까지는 하도감에서 훈련을 하였다. 별기군에서 국왕을 밀접 경호하는 무예별감을 선출하였으니 한국무예의 정수가 서린 곳이다. 비파정의 자리는 오늘날 바로 동국대학교의 자리이다. 석호정도 이웃하고 있다. 이 일대가 바로 도성을 지척에서 바라보는 가장 높고 위악한 자리로서 무예의 본산이었다. 이 일대를 우리나라 상무정신의 본거지로 복원하는 일이야말로 민족의 주체성을 살리는 지름길일 것이다.

장충단공원은 아직도 쓸쓸히 ‘비 내리는 장충단 공원’일 뿐이며, 남별영 자리에는 수방사 이후 남산골 한옥마을이 들어서 다양한 전통문화 공연을 벌이고 있지만 기개 넘치는 조선시대 무인들의 기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의 남산공원 일대에서 벌어지는 춤과 음악 위주의 전통공연들은 일제가 조성해 놓은 그대로를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번 거세된 무예문화의 복원은 해방된 지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하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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