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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증산도 도전11:285
증산도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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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학계 "紅山 신석기 유적의 주인공은 동이족"


기원전 4500~2500년 신석기 중·후기 유물 대량으로 쏟아진 곳
중원의 황화문화와는 확연하게 달라
이 유적들 가운데 적석총·동검·치 등은 확실한 동북방 계통
강원도 문암리에서는 홍산문화권과 유사한 옥귀걸이 출토

 



"와, 진짜 붉네. 저 산세 좀 봐!"

마침내 찾은 홍산(紅山·해발 746m)에서 답사단은 또 한번 감탄사를 쏟아놓는다. 홍산은 중국 내몽골자치구 적봉(赤峰)시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뼈대 있는 바위산이다.

"보시다시피 산이 붉지요. 철분 성분 때문이라고 해요. 1900년대초 일본 학자들이 신석기 유물을 발굴해 만주 고고학의 서장을 열었다고 하죠. 고대 흉노족들은 장수가 전장에서 죽으면 말 위에 시체를 올려 홍산 쪽으로 가게 했다고 해요. 옛날부터 신성시했다는 얘기죠."(고고학자 복기대 박사)

적봉·홍산·붉은 산…. 지명이 모두 붉음 일색이다. 설명을 듣고 있자니 마음마저 붉어지려 한다. 적봉(홍산)은 우리말의 '붉은 산' '밝산(밝은 산)' '밝달산'의 한자식 표기로, 단군왕검이 도읍했다는 백악산(아사달)과의미가 통한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단군이 기마대를 훈련시키느라 말 발굽에 짙푸르던 산의 흙이 패여 붉은산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북한에서 나온 얘기다.

붉은 바위산이 한낮의 뙤약볕을 튕겨내고 있다. 산 중턱쯤의 전망대에서 보는 홍산은 장엄하다못해 눈부시다.

 

 

 

내몽골자치구 적봉시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홍산. 세계 학계를 놀라게 한 홍산문화의 발원지이다.붉은 산빛이 신비스럽게 와닿는다. 일부 학자들은여기서 고조선의 기원을 찾는다. 박창희 기자

신석기의 대발견

홍산은 기원전 4500~3000년에 걸친 신석기 중·후기 문화가 태동한 곳으로, 요하문명론의 고고학적 토대다. 최근 홍산 일대에서 쏟아지고 있는 유물들은 동북아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든다. 우리가 필히 주목할 것도 있다. 한민족의 문화적 원류가 감춰져 있다고 믿는 시각이다.

홍산에 대한 연구 조사는 1908년 일본인에 의해 시작됐다. 신석기 주거지와 적석총·옥기·골기 등이 나왔으나 1955년 홍산문화란 이름을 얻을 때까지도 별 이목을 끌지 못했다. 그러다 1979년 랴오닝성 객좌(喀佐)의 동산취(東山嘴)에서 임신한 여인의 소조상을 포함한 대규모 제사유적이 발견되고, 1983년 우하량(牛河梁)에서 초기 국가단계에 들어섰음을 암시하는 제단(壇)·신전(廟)·무덤(塚) 등 3위 일체의 유적이 다양한 옥기(玉器)와 함께 출토됐다. 매스컴들은 '신비의 여왕국'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쏟았다.

우하량 유적은 신석기 만기에 해당하는 기원전 3500년으로 밝혀졌다. 그 동안 중국에서 3황(皇)5제(帝)의 신화시대를 말하던 시기다. 우하량이 황하문명보다 1000년 가량 앞서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중국 학계는 중화문명의 시발을 홍산으로 돌려놓고 있다. 세계 4대 문명(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황하)의 토대가 흔들릴 상황이다.

발굴이 계속되면서 시기는 계속 올라갔다. 조보구문화가 기원전 5000년께, 흥륭와문화가 기원전 6000년께의 신석기 유적으로 드러났고, 1987년 오한기의 소하서(小河西)문화는 기원전 7000년께의 유적임이 확인됐다. 발굴 성과가 잇따르면서 홍산문화는 적봉시와 대릉하 일원의 모든 신석기 유적의 통칭이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중국에 의한 중국인만의 문화가 아니라, 한국인 나아가 동북아 전체의 역사적 뿌리를 더듬게 하고 있다. 뿌리를 찾지 못해 헤매는 고조선이 눈을 크게 뜨고 봐야 할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홍산 자락에 꾸며진 신석기 시대의 움집.

홍산문화의 적통 공방

중간정리를 해 보자. 답사단은 베이징에서 출발해 발해만 연안의 창려현 갈석산과 능원의 우하량, 오한기의 성자산, 적봉의 삼좌점, 조양의 봉황산 등을 돌아 홍산에 이르렀다. 모두 홍산문화권이다. 이들 유적지 가운데는 하가점 하층문화(기원전 2000~1500년), 즉 고조선 문화권으로 꼽히는 곳이 많았다. 실제로 답사단이 둘러본 홍산문화 유적들은 중원의 황하문화와 달랐다. 빗살무늬토기와 피라미드식 적석총, 비파형동검, 치(석성에서 돌출한 방어시설) 등은 누가 봐도 동북방 계통의 문화였다. 홍산문화, 그 중에서도 하가점 하층문화의 적통은 한민족이 잇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항공대 우실하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홍산문화권에서 출토된 옥귀걸이와 강원도 고성 문암리 선사유적지에서 발견된 옥귀걸이는 형태적으로 아주 유사하다. 기원전 6000년 전후의 신석기 시대에 요서와 요동, 한반도가 교류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홍산문화를 동북 및 중앙아시아의 문화적 근원으로 본다면, 한국어와 만주어 일본어 등은 종전의 알타이어족 대신 홍산어족(紅山語族)이란 용어를 사용해야 할지도 모른다. 학계 일각에서 이같은 견해가 나오고 있다.

중국측의 입장은 우리와 판이하다. 그들은 홍산문화를 일으킨 세력을 중화민족의 전설상 조상인 황제(黃帝)로 본다. 지난 2003년 동북공정의 뿌리를 밝히는 '중화문명탐원공정'을 시작한 중국은 최근 이론적 틀을 완료하고 세부 과제를 시행 중이다. 하상주단대공정→중화문명탐원공정→동북공정→요하문명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역사관련 공정(프로젝트)을 착착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최종 목표점은 랴오닝성박물관의 대형 홍보판에 적힌대로 요하문명의 완성이다.

요하문명론은 홍산문화권에서 발원한 예·맥족·흉노족·조선족·여진족 등 모든 고대 민족들을 황제의 후예로 만드는 작업이다. 이런 논리가 인정되면 고조선은 물론 고구려, 발해가 모두 중국화되고 만다. 황제의 손자인 전욱 고양씨 집단이 남만주로 가서 세운 나라가 고구려이고, 그 곳의 적석총은 홍산문화의 적석총을 이어받은 것이 된다. 심지어 고주몽의 고씨도 전욱 고양씨의 후예기에 붙게 된 성씨가 된다. 동북아 상고사 전체가 뒤틀릴 지경이다.


기록은 없고 유물만

우리가 믿을 것은 유물이다. 남아 있는 기록들은 마치 달빛과도 같다. 중국의 사서들은 황하 중류에서 일어난 신석기 문명의 주역을 3황5제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는 홍산문화에 대해선 한 자의 기록도 남기지 못했다. 기록이 없어 답답한 것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그나마 사료 부족의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대안이 고고학 자료다. 홍산문화에 대한 중국측의 발굴 조사와 연구는, 역설적이게도, 단군조선과 그 이전의 한민족 문화 원류를 캐는 탐침 역할을 해준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측이 적극적으로 해석할 부분이 많다는 것. 중국의 허구적 논리를 깨는 순간 단군과 한민족사가 바로 세워질 수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우리 학계의 관심과 연구다. 국학연구원 김호일 원장은 "단군조선만 문제가 아니라, 그 이전의 환인 환웅시대까지 보는 큰 흐름을 잡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문헌이 없는 만큼 인접 보조 학문을 활용하는 지혜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즉, 고생물학 문화인류학 천문학 지질학 등을 동원, 고고학 자료를 새롭게 해석하는 종합연구 체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이족을 깨워라

홍산문화를 남긴 원주민은 누구일까. 실로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동아시아 초기 역사의 주체를 결정하는 중요하고 본질적인 문제다. 학자들은 지금까지 막연히 이들을 홍산인, 고아시아인 등으로 불렀다.

한·중 학계에서 공히 주목하는 종족은 '동이족(東夷族)'이다. 고대 중국인들이 중화 외부의 세력을 업신여겨 기록한 글에 '동이'라는 족속이 있었는데 그들이 위대한(?) 홍산문화를 낳았을 것이란 견해다.

우리 사학계 일각에서는 중원의 황제족과 대결한 치우(蚩尤)집단을 하나의 유력한 후보로 꼽는다. 치우는 중국의 여러 고서와 한국의 '환단고기(桓檀古記)' 등에 등장하는 전설적 인물이다. 몇년 전 국가대표 축구 응원단인 '붉은 악마'가 마스코트로 되살린 치우천왕이 바로 그다. 치우는 중국에서 이미 그들의 3대 조상신(황제·염제·치우) 중 한명으로 모신 상태지만, 일반적으로 '구려(句麗)의 왕'이라 하여 동이족과 더 가깝다. 중국 학자 서욱생(徐旭生)은 1940년대에 이미 '치우는 동이족이다'고 고증했다.

이에 대해 우실하 교수는 "중국이 치우를 조상신으로 끌어안은 것은 한국을 염두에 둔 발상일 것"이라며 이런 논리가 요하문명론으로 구체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유물로 미루어 홍산문화를 주도한 곰 토템족은 웅녀족일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반면 중국 사서를 집중 연구해온 사학자 심백강 박사는 동이족의 한 갈래인 '조이족(鳥夷族)'을 홍산문화의 주역으로 꼽는다. 심 박사는 '춘추' 좌전의 기록을 제시하며 "한민족은 예로부터 새를 토템으로 삼았는데 그런 기록의 자취가 '조이족'이며 후에 삼족오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웅녀족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그는 "그래봐야 우리의 외갓집밖에 안되지 않느냐. 중국이 내세우는 '황제족=유웅씨(有熊氏)'설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고 설명했다.

치우의 사례에서 보듯, 중국은 최근 동이족에 대한 관점을 바꿨다. "동이의 요하문명과 한족의 황하문명이 조화를 이뤘으며 여기에 남방·서북문화가 중원으로 집합해 오늘날의 중국 문명이 완성됐다." 중국 고고학계의 대부 소병기(蘇秉琦)의 이 말은, 동이의 문화를 고스란히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만리장성 이북의 야만족이라 배척했던 동이족이 어느 새 자기네 조상이 됐다. 동북공정의 산물이다.

우리 역사가 위기다. 동북공정 등에 대책없이 밀릴 경우, 고조선은 정말 실체가 없는 한낱 신화로 남게 되고 우리 역사는 끝없이 떠돌게 된다. 홍산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홍산은 왜 저리도 붉은가. 민족사학자인 단재 신채호의 서슬퍼런 외침이 귓전을 파고든다.

"역사만이 희망이다, 고조선 역사가 없으면 한국사도 없다(若無古朝鮮史, 是無韓國史)."

취재 지원 = (사)부산국학원·부산국학운동시민연합


■ 요하문명론에 대한 학계의 대응

- 발해문명론·능하문명론…中에 맞선 이론 많지만 주류 사학계는 뒷짐

 

요하문명론에 대한 한국 학계의 대응은 자못 혼란스럽다. 일부 학자들이 적극적인 대응 체계를 세우고 있으나 후속 연구나 지지가 없고 학계 주류는 무시하거나 방관한다. 중국측은 국가적인 지원 아래 '군단급' 연구 집단이 가담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각개전투식이다. 그것도 주력은 후방에서 싸움을 구경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나마 대응 논리로 제기된 것이 ▶신용하 이화학술원 석좌교수의 '아사달 문명론' ▶이형구 선문대 교수의 '발해문명론' ▶우실하 항공대 교수의 '동북아 문명론' ▶복기대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의 '능하문화론' 등이다.

신용하 교수는 요하문명론에 맞설 문화적 대안으로 '아사달 문명론'을 내세운다. 고조선은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형성된 고대국가이므로 요하문명은 고조선 문명의 일부라는 논리다.

이형구 교수는 발해 연안의 산동·요서·요동·한반도를 동양문명의 발원지로 보고 일찍이 '발해문명론'을 주창했다. 유럽에서 지중해를 중심으로 서양 문명이 탄생한 것처럼 동양문명도 발해 연안에서 싹을 틔워 중국과 만주로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그 곳이 고조선 문화의 터전이라는 것도 이 교수의 주요 논지다.

복기대 교수는 적봉시 남쪽의 능하(凌河)지역에서 출토되는 청동기 유물을 주목해 고조선의 향방을 분석해왔다. 능하지역은 노노아호산 아래의 대릉하와 소릉하 유역을 아우른다. 이곳에서 기원전 800년 전후의 비파형동검과 다뉴세문경 등 청동기 유물이 다량 발굴됐다. 복 교수는 이 곳의 고조선 문화가 만주 및 한반도로 확장됐을 것으로 본다.

요하문명론의 핵심과 의도를 정리해 책으로 펴낸 바 있는 우실하 교수는 "요하문명의 주도 세력은 몽골 만주 한반도 일본으로 이어지는 북방계통이지만, 중국에도 영향을 끼쳤으므로 한·중·일·몽골 등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공통의 시원문명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동북아 문명론'으로 정의한 우 교수는 "요하문명의 주인공이 우리와 연결되어 있고, 그것을 증명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사학계 주류의 시각은 대체로 신중하다. 서울대 노태돈(국사학과) 교수는 "홍산문화에서 우리와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고조선과의 직접 연결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동이족만 하더라도 중심(중화)을 어디에 두고 말하느냐에 따라 얘기가 아주 달라지므로 철저한 현장조사를 통한 고증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단군, 만들어진 신화'(산처럼)를 쓴 한국교원대 송호정(역사교육과) 교수는 "홍산문화는 적석총과 채도 문화가 특징인데, 채도는 우리 문화와 연관이 없고 적석총은 그 성격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우리 문화와 연결시킬 수 있는 요소를 찾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우리 학계는 단군조선의 역사를 계급이 발생하는 청동기 문화 초기의 사회를 반영한다고 보고 있어 홍산문화와는 시간과 공간상으로 연관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논란이 적전 분열로 비쳐서는 안된다. 학계의 대응 전선부터 정리돼야 하겠다. 지금은 냉혹한 역사전쟁의 국면이다.

 

출처 ; 국제신문 2008-09-26  한민족의 뿌리 - 단군조선을 찾아서 <7> 요하문명의 원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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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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