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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증산도 도전9: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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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문화의 뿌리 신교문화

 #  제목:  유럽신학의 근황         

              -- 박아론 박사 (총신대 교수)

    1. 자유주의 삼총사의 몰락과 칼바르트의 등장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유럽신학은  리츨과 하르낙 헤르만자유주의 신학의 삼총사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다. 이들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는 쉴라이에르 마허였다.  이들의 신학은 한마디로 倫理主義 神學(ethical theology)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윤리주의  신학의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 않고 인류의 도덕적 선생으로 생각했으며 성경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다만 인류를 위한 [위대한 도덕  교과서] 여기면서 진리의 척도로서의 종교적이며 윤리적인 경험을 내세우는 데 있었다.

   칼 바르트는 1919년 그의 저서 {로마서 강해}를 통해 고전적 자유주의를 공격하고 이 저서를 통해  유럽의 신학계는 새로운 물결이 밀려 왔던 것이다.

 ............... (중략)....................

 

 

* 근래에 들어와 언약신학에 대한 관심의 고조는 해석상 상호 비판적 관계를 맺고 있는 세대주의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유발시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본 강의안은 2011년 8월 20일(토), 대구 조에성경신학연구원에서 '언약신학과 세대주의'란 주제로 강의(강사:김성주)할 특강자료 중 세대주의에 관한 내용을 일부 발췌해 올린 내용입니다.

   

언약신학에서 본 세대주의 신학

김성주(언약교회)

 

언약신학과 세대주의 신학은 성경을 하나님의 자기계시서로 인식하며 이를 신앙과 삶의 절대가치와 최고의 규범으로 삼아 믿는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서로 다른 두 관점이며 두 교리체계이다. 그러므로 이 두 신학의 성경 해석적 관점의 차이는 정통과 이단의 관계로 규정해 비판하기보다는 정통신학 안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론의 차이로 분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이런 사실은 언약신학적 관점에서 세대주의 신학의 문제점을 건설적이며 생산적으로 지적할 수 있듯이, 세대주의 관점에서 언약신학의 문제점을 동일한 방식으로 지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신학이란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나 관점들을 집대성한 학문적 논리체계로서 인간의 주관적인 사상이 개입될 수 있는 여지가 아주 없지 않다. 그러므로 특정 신학을 절대화시키거나 신봉하기보다는 반성적 사고를 통해 부단히 연구 정진함으로 신학의 체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더욱 심화시키고 발전시켜 나가는 선의적인 작업이 부단히 요청된다고 하겠다.

 

언약신학은 성경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언약을 방편삼아 친히 말씀하신 언약적 자기계시서로 이해한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에는 오실 메시아가 약속돼 있고 신약에는 '선 언약-후 성취'라는 맥락에서 오신 메시아를 증거한다. 혹자는 이런 신구약의 언약적 연속성에 근거해 구약의 중심 주제를 '하나님은 여호와'로, 신약의 중심 주제를 '예수는 그리스도'로 집약해 해설한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류(창 2:17, 3:1-6)의 구속(창 3:15)을 위해 창세전에 수립하신 구속언약(엡 1:4-14)의 당사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때가 차매 마침내 대속물로 보내주심으로(갈 4:4-5, 막 10:45, 눅 19:10)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만천하에 계시하신 것이다(엡 1:6).

 

구속의 결과로 성취될 언약의 중심 내용은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선언에 집중된다(창 17:8, 레 26:12, 렘 31:33, 겔 37:27, 고후 6:16, 계 21:3, 7절). 이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는 임마누엘 신학의 구체적인 성취를 의미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통해 현실화되고(마 1:21-23).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사역을 통해 성취의 절정을 맞게 된다. 그러므로 언약은 자체 속에 그리스도를 내포하고 그리스도는 언약의 근간을 이룬다.

 

이런 맥락에서 언약신학(엡 1:4-14)은 성경계시의 궁극적 목적을 하나님의 자기영광 구현과 현시로 삼는 가운데 계시의 최종 목표를 하나님 나라로, 계시의 핵심 주제를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시는 구속의 은혜로, 그리고 구속계시를 푸는 열쇠와 방편을 신적 언약을 중심으로 정리해 설명한다.

 

필자는 이상의 언약신학적 관점에서 세대주의 신학을 선의적으로 비판하는 가운데 ①세대주의의 역사적 배경과 영향, ②성경해석적 관점들, ③세대주의의 분류와 동향, ④평가 및 맺는말로 정리해 설명코자 한다.

 

1. 세대주의의 역사적 배경과 영향

 

세대주의 신학의 교리적 체계는 1800년 11월, 런던에서 아일랜드의 귀족 부모 사이에서 출생한 John Nelson Darby(1800-1882)의해 이루어졌다. 다비(J. N. Darby)는 어린 시절을 아일랜드에서 보냈으며 그 곳에서 웨스트민스터 학교를 다녔다. 15세에 더블린에 있는 명문 대학 Trinity College에 입학했으며 18세가 조금 넘은 1819년 여름에 고전의 최우수자(Classical Gold Medalist)로 트리니티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후 한 동안 법률가로 활동했으나 뒤이은 회심으로 목사 안수를 받고 Church of Ireland에서 다년간 목회활동에 전념하면서 영국 국교회의 성직자의 길을 걸었다. 이 과정에서 다비는 더블린을 중심으로 독립교회로 존재하는 당시의 여러 형제모임들과 사적인 교제를 병행했다.

 

한편 다비는 국교회의 성직자로 목회를 하면 할수록 제도화된 기성교회의 여러 문제점들을 확인하게 돼 마침내 1827년에 기성교회의 문제점들을 공개적으로 지적한 'Considerations on the Nature and Unity of the Church of Christ'(그리스도 교회의 본질과 연합에 관한 연구) 소논문을 발표한 후 1828년에 담임했던 국교회의 목사직을 사임하고 본격적으로 더블린의 형제모임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다비는 Benjamin W. Newton(1807-1899)이 인도하고 있던 잉글랜드 플리머스의 형제단과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 그동안 소규모 모임들을 통해 산발적으로 진행돼 오던 형제단(Brethren) 운동(어린양의 피와 성도의 연합)을 본격적으로 조직화시키면서 마침내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에 합류하게 된다.

 

다비의 동역으로 인해 플리머스 형제단은 한 때 1,200여명에 이를 정도로 양적 부흥과 성장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중도에서 뉴톤과 다비는 종말적 예언(교회의 환란 통과 여부)과 교회론(이스라엘과 교회와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인 해석적 관점의 차이와 사역권의 남용 여부에 대한 논쟁으로 관계가 악화된 나머지 마침내 1848년 당시 형제단 운동에 중심을 이루고 있던 플리머스 형제모임은 open brethren과 exclusive brethren으로 양분되기에 이른다. 이후 다비는 exclusive brethren의 지도자로서의 사역을 담당하는 가운데 그의 출중한 어학실력을 십분 발휘해 성경을 불어와 독일어로 번역했으며 그의 교리체계는 후에 세대주의 신학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게 되었다.

 

Darby는 19세기 말에 미국으로 건너왔고 그의 세대주의 신학은 미국의 Cyrus. I. Scofield(1843-1921)와 C. S. Chafer에게 전수돼, Scofield는 수년간의 연구와 준비 끝에 마침내 1909년 Scofield Reference Bible을 발간해 보급함으로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급속도로 세대주의가 전파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당시 스코필드 관주성경은 KJV(1611년)의 연구를 위한 해설판 형식으로 발행되었다. 반면에 Chafer는 후에 달라스 신학교(Dallas Seminary)를 설립하고 세대주의 신학에 기반을 둔 8권의 조직신학 책을 집필함으로 달라스 신학교를 명실상부한 세대주의 신학의 요람으로 성장시켰다. 스코필드는 군출신 변호사로 1882년에 변호사 직업을 그만두고 텍사스 주에 있는 달라스 제일회중교회를 맡았고, 1883년 10월 17일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한 번도 정규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았을 때 놀라운 지혜와 능력의 조명을 받았다. 그는 무디(D. L. Moody)와 친구였으며, 무디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의 장례식을 집전하기도 했다.

 

스코필드 관주성경이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미국 전역으로 보급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유럽의 자유주의 신학과 종교사학파 등 신신학이 급속도로 미국의 신학교(프린스톤)를 비롯해 보수교단을 잠식함으로 상대적으로 위기에 처한 미국의 정통 개혁주의 신학이 쇠퇴되는 것과 맞물린 일종의 반사작용으로 분석된다. 당시 다양한 신신학의 유입과 발흥으로 인해 영적 암흑기를 방불케 했던 미국의 기독교계의 입장에서는 스코필드의 관주성경이야말로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강조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인본주의적 신신학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해 보전할 수 있는 최선책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로 인해 스코필드 관주성경은 미국 전역에 세대주의 신학과 신앙을 대중화시키는 데 첨병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돼 펑양 신학교를 설립(1901년)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으며 주임 교수로 봉직했던 미국 북장로교 목사 Allen Clark(곽안련)도 세대주의 신학자였다는 사실은 그의 문하생들이 처음부터 불가피하게 세대주의 신학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추정하게 된다. 혹자의 글에 한국 목사들의 80-90%는 교단의 배경을 불문하고 자의든 타의든 세대주의 신학적 배경에 접촉돼 있다고 피력한다(세대주의란 무엇인가? 김명도, 튤립교육선교회). 이런 식으로 선교 초창기부터 세대주의 일변도의 신학이 성행했었던 한국의 기독교회에 개혁주의 신학이 유입되기 시작한 것은 1945년 해방 직후와 1950년 6.25사변을 전후해 화란과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돌아 온 소위 유학파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영향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2. 세대주의로 특징되는 성경해석적 관점들

 

세대주의 신학자 찰스 라이리(Charles H. Ryrie)는 그의 저서 Dispensationalism Today(세대주의의 바른 이해, 전병은 역, 전도출판사)에서 세대주의를 특징짓는 필수 요건으로 교회와 이스라엘의 구분을 제시한다. 라이리에 의하면 결국 하나님의 백성은 둘이 되는데 구약시대의 이스라엘과 신약시대의 교회로 나누어진다. 이 둘은 본질상 다르다.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님은 당신의 왕국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려고 했으나 선지서에 예언된 메시아의 당사자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거부로 불가피하게 왕국의 도래는 지연되었으며 대신 교회시대를 도래시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교회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경륜 속에 없었던 대상인 데 그리스도에 대한 이스라엘의 거부로 인해 일종의 삽입구(Parenthesis) 형식으로 율법시대(모세와 그리스도의 탄생까지)를 뒤이어 새로운 세대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지론이다.

 

결국 라이리에 의하면 세대주의의 근본 개념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하나님의 백성은 둘이다. 둘째, 하나님의 백성들인 교회와 이스라엘은 구분돼야 한다. 셋째, 그리스도의 왕국은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며 교회시대가 마감된 이후에 도래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철저히 미래적이다.

 

그런가 하면 세대주의로부터 개혁주의로 돌아선 Clarence B. Bass는 그의 저서 Backgrounds of Dispensationalism(세대주의란 무엇인가?, 황영철 역, 생명의 말씀사)에서 세대주의의 특징을 다양한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몇 가지만 선별적으로 소개하면 세대주의는 문자적 성경해석(특히 선지서의 새 언약 예언), 이스라엘과 교회의 이분법(두 종류의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중심의 왕국개념(아브라함 언약의 문자적 성취), 7년 환난 전 휴거와 문자적 세대주의 전천년설 등을 제시한다.

 

한편 J. N. Darby의 세대주의를 미국 전역에 대중화시킨 Cirus I. Scofield는 그의 역저(力著) Scofield Reference Bible(1909년)을 통해 "세대란 성경역사에 계시된 각각의 시대마다 인간이 하나님의 어떤 특정한 국면(particular phase)에 대한 순종과 관련해 시험을 받는 일정한 기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성경에는 일곱 개의 그러한 세대가 있다"고 피력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신구약의 인류의 역사를 종말 지향적으로 다루시는 과정에서 자신의 총체적인 계획의 어느 특정 국면을 7세대로 구분해 섭리하시는데 곧 ①무죄시대(innocence, 창조-인류 타락), ②양심시대(conscience, 타락-노아), ③인간통치시대(human government, 노아-아브라함), ④언약시대(covenant, 아브라함-모세), ⑤율법시대(law, 모세-그리스도), ⑥은혜(교회)시대(grace, 그리스도-7년 환난 전 교회 휴거), ⑦왕국시대(kingdom, 7년 환난 후 지상재림-심판)로 분류된다고 피력한다.

 

3. 세대주의의 분류와 동향

 

19세기 영국의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을 중심으로 John Nelson Darby에 의해 발흥된 세대주의 신학의 체계를 발전시킨 영미권의 학문적 세대주의(academic dispensationalism) 신학자들을 구분해보면 고전적 세대주의(Classical), 수정 세대주의(Revised), 점진적 세대주의(Progressive)로 분류할 수 있다. 이외에 독일의 대표적인 세대주의 신학자(점진적)로 에릭 사우어(세계 구속의 여명/영원에서 영원까지/십자가의 승리의 저자, 권혁봉 역, 생명의 말씀사 출판)를 들 수 있다(우리의 복스러운 소망-세대주의 종말론, 전도출판사/문영권).

 

① 고전적 세대주의(Classical Dispensationalism)

고전적 세대주의는 초기형태의 다양한 세대주의적 교리들을 체계적인 형태로 조직화시킨 최초의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19세기의 J. N. 다비를 비롯해, 스코필드 관주성경(1909년)을 발간해 미국 전역에 세대주의를 대중화시킨 C. I. Scofield, 1948년에 세대주의에 기초한 8권의 조직신학 책을 저술했고 미국에서 세대주의 신학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달라스 신학교를 설립한 C. S. Chafer 외에도 윌리암 켈리, C. H. 매킨토시(모세오경 주석). H. A. 아이언사이드 등이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활동하던 플리머스 형제단 진영의 고전적 세대주의에 속한다.

 

이들은 이스라엘과 교회를 철저히 구분하는 가운데 이스라엘과 교회의 종말론적 운명을 전자(이스라엘)는 새 땅에서 영원히 존재하고 후자는 새 하늘(교회)에서 영원히 존재한다고 보았다. 결국 이들은 천국(왕국)개념과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이원화시켜 영원 세계를 이중 구조적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이들은 구약의 선지서에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약속한 신(新)다윗왕조의 회복에 근거한 신정왕국의 개념을 문자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될 이 땅에서의 천년왕국(계 20장)의 의미로 이해했다. 그러나 마 19:23-24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예수님께서도 천국과 하나님 나라를 호환적으로 언급하시는 것을 통해 이 둘의 관계를 본질상 동일시하고 계심을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이들 고전적 세대주의자들은 교회시대의 끝에 발생하게 될 '7년 환란기'와 관련해 이스라엘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거절한 죄책으로 인해 환란기를 마땅히 통과해야 하지만 교회는 이스라엘을 대신해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 가운데 삽입구(parethesis)형식으로 출현하게 된 특별한 무리들이기에 환란 전에 공중으로 끌어올려져 공중에 재림하시는 주님과 만나 공중에서 어린양의 결혼식에 참여하는 것으로 환란기를 실제로 겪지 않는다고 해석한다(살전 4:16-18, 계 19:1-10).

 

② 수정 세대주의(Revised Dispensationalism)

 

수정 세대주의는 19세기 말 이후의 고전적 세대주의에 뒤이어 20세기 중반에 나타난 세대주의 진영의 한 흐름이다. 대표적인 학자들로는 Charles Ryrie, John Walvoord, Dwight Pentecost. 등이 있다. 수정 세대주의라는 명칭은 이들을 포함한 9명의 학자들이 1901년에 발간된 스코필드의 관주성경을 1967에 개정판으로 재출간함으로써 붙여진 이름이다. 수정 세대주의는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세대주의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으며 현재까지도 그 영향력을 막강하게 행사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출간된 세대주의와 관련된 도서로는 C. 라이리가 쓴 Dispensationalism Today(세대주의의 바른 이해, 정병은 역, 전도출판사)와 D. 펜티코스트가 쓴 Things to Come(세대주의 종말론, 임병일 역, 대한기독교서회) 등이 국내에서 번역돼 소개되었다.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새로운 흐름의 점진적 세대주의와 비교하기 위해 고전적 세대주의와 수정 세대주의를 통틀어 전통적 세대주의(Traditional Dispensationalism)라 부르기도 한다.

 

이들 수정 세대주의자들은 하나님 나라와 천국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님 나라가 천국을 포함하거나 둘을 동의어적으로 취급한다. 따라서 이스라엘과 교회의 종말론적 운명은 영원 세계에까지 구분되지 않고 함께 연합된다고 피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에서의 이스라엘과 교회 사이에 주어지는 이분법적 정체성의 구별은 여전히 고전적 세대주의자들의 견해와 크게 다르지 않다(문자적 해석). 나아가 지상에서의 천년왕국(계 20장)을 다윗왕권의 회복으로 말미암는 이스라엘에 대한 미래적 예언의 성취로 이해했으며, 천년왕국 이전에 주님의 재림이 실현되므로 환란기 전에 교회의 휴거가 있게 된다고 주장해 여전히 고전적 세대주의자들과 많은 부분에서 견해를 같이 한다.

 

③ 점진적 세대주의(Progressive Dispensationalism)

 

점진적 세대주의는 수정 세대주의 이후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흐름이다. 점진적 세대주의 학자로는 로버트 소시(Robert L. Saucy), 크레익 블레이싱(Craig Blaising), 대럴 벅(Darrel Bock) 등을 들 수 있다. 로버트 소시는 1972년에 The Church in God's Program이라는 책을 저술함으로 점진적 세대주의의 서막을 알렸다. 이 책의 논지가 점진적 세대주의라는 이름으로 자리잡은 것은 크레익 블레이싱과 대럴 벅이 1993년에 공동으로 집필한 Progressive Dispensationalism(하나님 나라와 언약, 기독교문서선교회)이라는 책과, 1993년에 로버트 소시가 저술한 The Case for Progressive Dispensationalism이라는 책이 발간되면서부터이다. 이런 도서들 외에도 크레익 블레이싱과 대럴 벅이 1992년에 쓴 Dispensationalism, Israel and the Church를 추가로 들 수 있다.

 

점진적이라는 뜻은 전통적 세대주의에서 세대(dispensationalism)라는 의미를 '다른 세대와 명확히 구분되는 하나님의 특정한 목적이 실현되는 하나의 경륜'으로 정의하는데 비해, '시간의 경과에 따라 연속성을 가지고 세대끼리 점진적인 진보(progress)를 드러낸다'고 본다. 다시 말해 각 세대 간에 섭리적 차별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전 세대에는 다음 세대의 출현을 위한 인자(因子)가 내재돼 있어서 이 인자가 다음 세대에 발전적으로 나타나면서 각각의 세대를 거쳐 미래의 최종적인 종말론적 목표인 영원한 왕국을 향해 전진한다고 본다.

 

점진적 세대주의는 1986년 11월 20일 미국 복음주의신학회(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의 연례회의와 연계되어 있던 세대주의 스터디 그룹(Dispensational Study Group)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등장했다. 이들은 역사적 전전년주의를 기반으로 하면서 전통적 세대주의와 견해를 달리하는 새로운 세대주의 학파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점진적 세대주의는 언약신학자이면서 전천년주의를 주장했던 죠지 래드(George E. Ladd)의 사상과 유사점을 보이는 측면이 많다.

 

점진적 세대주의자들은 교회가 이스라엘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에서 삽입구적 위치를 차지한다는 전통적 세대주의자들의 견해를 거부한다. 이들은 교회를 다윗왕국의 현재적 시작으로 보면서 다윗왕국은 미래의 천년왕국에서 문자적으로 완전히 성취될 것으로 주장한다. 이 점에서 천년왕국의 개념을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로 대체할 수만 있다면 언약신학적 관점에서 견지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 도래의 이중 구조성 곧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의 논리와 유사한 관점으로 볼 수 있다. 교회공동체의 정체성 또한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 않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자들로 구성된다고 이해한다. 이런 관점에서 '전체적인 구속'과 '하나님의 한 백성'을 주장한다. 그렇다고 교회와 이스라엘 사이에 기능적인 구분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미래의 천년왕국에서 이스라엘이 상대적으로 차별화되는 단위로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으로 보며, 천년왕국기간에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들이 온전히 성취될 것으로 전망한다. 종말론과 관련해 점진적 세대주의자들은 다른 전통적 세대주의자들처럼 세대주의 전천년주의자들이다. 휴거의 시기에 대해 대체로 환란전 휴거론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휴거의 시기에 관해서는 내부적으로 일치된 견해가 없다.

 

세대구분과 관련해 전통적 세대주의는 7세대로 분류하는데 비해 점진적 세대주의에서는 족장시대(아담에서 시내산까지), 모세시대(시내산에서 메시아의 승천까지), 교회시대(메시아 승천에서 재림까지), 시온시대(천년왕국과 영원한 상태까지) 등 넷으로 구분함으로 비교적 단순한 형태로 성경의 역사를 이해한다고 볼 수 있다.

4. 평가 및 맺는말

 

위에서 지적한 대로 언약신학과 세대주의 신학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세주로 믿는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서로 다른 두 관점이며 두 교리체계이다. 그러므로 이 두 신학의 성경 해석적 관점의 차이는 흑백논리보다는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론의 차이로 분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올라가심을 본 그대로 문자적/육체적/인격적으로 재림하신다는 사실은 이 중심적인 진리를 공유하고 있는 자들이라면 서로 간 배타적이고 반목적이며 불신하기보다는 사랑과 관용과 인내심을 가지고 상호 생산적이고 긍정적이며 미래지향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언약신학적 관점에서 본 세대주의 신학에 대한 평가와 관련해 세대주의 신학에서 주장하고 있는 몇 가지 핵심 주제들을 중심으로 상고해 보려고 한다.

 

첫째, 아브라함 언약과 관련해 자손언약의 성취를 문자적으로 해석해 적용하면 당연히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인 역사적 이스라엘을 가리키게 된다. 또한 선지자들의 새 언약 사상과 관련해 남북 이스라엘의 통합적 회복과 관련된 예언의 성취는 일차적으로 바벨론 포로로부터 귀환한 역사적 이스라엘에게 적용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성경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고 이면적 유대인이 참 유대인이라고 피력할 뿐 아니라(롬 2:28-29),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또한 다 이스라엘이 아니라고 강조한다(롬 9:6). 더욱 갈라디아서 기자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찌어다"(갈 3:7)라고 설파하며, 갈 3:29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를 자니라"고 강변한다. 이는 아브라함 언약이 구조상 이중적 성격을 띠고 구성돼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부분적으로 성취될지라도(바벨론 포로귀환) 보다 온전한 성취는 미래에 참 아브라함의 씨(자손)와 참 다윗의 아들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마 1:1) 안에서 믿음으로 그에게 연합된 자들을 통해 성취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시사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갈 6:16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이스라엘' 또한 문맥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새(영적) 이스라엘 곧 신약의 교회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최초의 아브라함 언약을 지칭하는 창 12:1-3 중, 특별히 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열국(모든 족속)의 복의 근원이 될 것을 예언적으로 약속해 주신다. 이는 아브라함 언약 중 후손(단수)의 당사자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마 1:1, 갈 3:16) 안에서 베푸실 미래의 구속의 은혜를 의미하는 것으로 구속의 수혜자는 아브라함의 후손(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를 포괄적으로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엡 2:11-16). 결국 이들은 유대인과 이방인들 중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속함을 받게 된 신약의 교회공동체를 총체적으로 가리킨다(엡 2:11-16).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과 교회는 언약적 구속사의 점진적인 진행상 분리된 두 부류의 하나님의 백성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통합된 하나님의 한 백성(한 새사람) 곧 신약의 교회공동체를 총체적으로 지칭한다고 봐야한다(엡 2:11-16). 결국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인 역사적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을 구약적 배경 속에서 구속사의 점진적인 진행을 통해 모형적이고 예표적으로 담당해 준 계시의 도구로 선용되었음을 간파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의 신분으로 역사적 이스라엘은 개별적으로가 아닌 민족적/국가적 차원에서 더 이상 구속계시의 도구로 선용될 수 있는 유효기간은 이미 만료되었다고 봐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은 본질상 구약의 모형적/예표적 계시의 마침이며 동시에 실체적 계시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시그널(signal)이다.

 

둘째, 선지자들의 새 언약 사상의 문자적 성취는 성전회복의 문자적 성취와 이로 인한 각종 구약 제사와 절기와 규례의 문자적 재현의 불가피성을 주장한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솔로몬 성전 재건을 위한 일체의 건축 재료들을 상당 부분 이미 준비 완료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사실상 세대주의 신학에서 주장하는 성전건축의 문자적 회복과 각종 제사 및 절기 준수의 회복은 본질상 이들의 실체로 오셔서 우리의 죄 값을 대속적으로 담당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신약성경은 신구약의 구속계시의 연속성 안에서 예수님을 성전과 각종 제사와 절기에 담긴 예표적 계시의 실체로 해석하면서 이들 구약계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의미적으로 온전히 성취되었음을 증거한다(요 2:19-22, 갈 4:10, 골 2:16-17, 히 10:11-14). 그러나 세대주의 신학에서는 언약신학적 관점에 적극 동의하면서도 성전과 제사 및 각종 절기의 문자적 회복과 성취의 당위성을 주장하면서 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기념하기 위함(in remembrance of His redemption)이라고 강변한다. 예표와 모형적 계시는 실체가 도래하면 당연히 한시적인 임무를 끝내고 구속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되지 않겠는가.

 

셋째, 제한된 교회관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세대주의 입장에서 보면 천국백성의 신분은 이스라엘 외에 교회는 하나님의 구속경륜 속에서 처음부터 계획되지 않았던 불청객과도 같은 대상이다. 다만 그리스도에 대한 이스라엘의 거부로 인해 불가피하게(?) 삽입된 일종의 막간 극(parenthesis, 아이언사이드)에 등장하는 들러리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세대주의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그리스도의 몸/하나님의 처소로 해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교회를 처음부터 하나님의 전체 구속계획에서 분리시킴으로 교회의 역할과 의미를 훨씬 제한시켰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절대 주권성을 인정함으로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감을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다면(롬 11:36), 하나님의 창세전 작정과 무관하게 예기치 않은 돌발적인 상황이 피조세계 속에서 필요에 따라 임시방편적으로 발생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역사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며 시작과 끝, 처음과 나중이 되신다(계 22:13)는 의미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가 되심으로 역사 속에서 발생하는 일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창세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 섭리적으로 시행되고 마감되는 것으로 해석돼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교회의 출현 또한 이스라엘의 그리스도 거부란 돌발적인 상황이 야기시킨 불가피한 비상강구책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창세전 하나님의 구속경륜의 성취의 일환으로 발생한 필연적인 상황으로 해석해야 한다.

 

만의 하나 교회의 출현이 하나님의 창세전 계획과 무관하게 역사 속에서 예기치 않게 일어난 돌발적인 사건의 산물이라면 '창세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엡 1:4의 의미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본 절에서 '우리'의 정체는 누구인가. 이들을 이스라엘에게만 차별적으로 제한시켜 적용시킬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신구약 성경 전체 속에서 아담의 후손들 중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택함 받은 모든 민족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되지 않겠는가. 갈라디아서 기자는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고 강변한다. 본문은 그리스도 안에서 민족 간의, 신분상의, 성별상의 차별성이 극복돼 한 권속으로 통합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천명한다. 이들이야말로 에베소서 기자가 바르게 논증하고 있듯이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져 둘(유대인과 이방인)로 한 몸을 이루게 된 '한 새 사람'(one new person, THE LIVING BIBLE), 곧 신약의 교회공동체가 아니겠는가. 어찌 이들 교회공동체가 하나님의 필연이 아닌 우연의 산물이 될 수 있단 말인가(롬 11:36, 마 10:29). 실제로 세대주의 신학에서는 교회의 기원을 문자적으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고(마 16:18) 그 구체적 성취의 일환으로 가시화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행 2장) 이후로 본다. 그러나 이런 식의 논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란 문자적 표현이 성경에 없다는 이유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교리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경우나 본질상 다를 바 없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언약신학과 세대주의 신학의 해석적 관점의 차이를 전반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성경해석과 관련해 언약신학은 성경의 역사를 구속사관으로 접근하면서 언약을 성경해석의 도구로 삼아 역사적-문법적(문맥적)-신학적으로 해석하려는 데 비해, 세대주의는 특별히 예언부분과 관련해 문자적 해석을 강조한다.

 

2. 세대주의는 이스라엘과 교회와의 관계를 이분법으로 구분해 하나님의 백성을 둘로 이해한다. 반면에 언약신학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남은 자들의 총화를 민족/신분/성별의 구별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한 새사람 곧 주님의 몸 된 교회로 해석한다(엡 2:11-16, 갈 3:28-29).

 

3. 세대주의적 관점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구속경륜 속에서 처음부터 포함되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 삽입구(parenthesis) 형식으로 등장한 대상에 불과하다. 반면에 언약신학에서는 창세전 삼위하나님의 구속경륜이 그리스도 안에서 약정될 때부터 교회는 이미 선택적으로 예정된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구속경륜의 중심이며 면류관인 셈이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행 20:28)란 표현이 이런 사실을 구체적으로 증거해 준다.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적 임재방식으로 존재한다.

 

4. 천년왕국(계 20장) 개념과 관련해 언약신학은 문자적 실현이 아닌 영적으로 해석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 사이의 전 교회시대를 천년의 상징적 기간으로 해석한다(무천년설). 그러나 세대주의는 주님의 재림 이후에 문자적으로 이루어질 미래적인 천년왕국으로 주장한다. 이 천년왕국 시기를 아브라함 언약(신정왕국)이 이스라엘의 문자적 회복을 통해 총체적으로 성취될 때로 해석한다(천년왕국과 영원세계를 분리한다).

 

5. 종말의 7년 환란기와 관련해 언약신학은 7년 환란기를 인정하지 않지만, 세대주의는 7년 환란기가 교회의 휴거와 동시에 문자적으로 도래할 것을 주장한다. 교회는 7년 환란전에 휴거함으로 환란의 고통과 피해를 받지 않는다. 오해려 공중에서 주님께서 배설한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된다고 믿는다(살전 4:16-17, 계 19:1-9). 그러므로 지상에서 발생한 7년 환란기의 고통과 피해는 주님을 거절한 이스라엘이 죄책의 형벌로 받게 된다고 주장한다. 7년 환란기의 출처는 단 9:27에 언급된 '한 이레'란 표현에 근거한다.

 

6. 세대주의 신학은 단 9장에 소개된 한 이레를 7년으로 해석한다. 반면 언약신학적 관점은 다니엘이 70이레란 용어를 70년간의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이스라엘의 해방(단 9:1-2)이라는 사상에 상응시킴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도래와 그 사역으로 말미암는 영원한 의의 성취로서 곧 예레미야의 새 언약의 수립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단 9:24). 그런 의미에서 70이레란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원히 사라지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게 될" 하나님의 섭리적 작정의 기한을 상징적으로 가리킨다. 70이레의 마지막 '한 이레'는 햇수로 7년이 아니다. 예레미야의 새 언약의 기간인 교회시대 전체를 상징적으로 의미한다고 본다. 결국 세대주의의 7년 환란기의 설정은 언약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작위적일 수밖에 없다.

 

7. 언약신학은 주님의 재림을 단회적 사건으로 수납하지만 세대주의는 이중 재림을 주장한다(공중재림과 지상재림). 7년 환란기의 도래로 교회의 휴거가 발생할 때가 바로 주님의 공중재림의 시기라고 주장한다(살전 4:16-17). 7년 환란기가 끝날 때 주님은 교회와 더불어 지상으로 오시게 되는 데 이 사건을 지상재림이라 부른다. 저들은 주님의 지상 재림을 이 땅에 문자적인 천년왕국을 세우기 위함이라고 해석한다.

 

세대주의자들이 성경의 축자영감설과 이로 인한 성경의 무오성을 인정함으로 성경을 문자적으로 수납해 자신들의 신학적 교리체계를 정립하려는 노력은 긍정적인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문자로 기록된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할 부분이 있는가 하면, 많은 경우에 문자적 해석보다는 문자에 담긴 본래적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다양한 해석적 방법이 적용돼야 할 줄 안다. 일례로 직유법과 은유법 및 다양한 비유법이 적용된 시가서들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려 고집한다면 저자의 의도가 한참 왜곡될 수 있을 것이다(시 91:11-12, 마귀의 예수님 시험). 묵시문학적 기법으로 기술된 요한계시록의 수많은 상징과 표상과 숫자들과 사건들을 문자적으로 일관되게 해석한다면 하나님의 본의에서 한 참 빗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계 20:1-3, 용의 무저갱 감금/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 144000명/짐승의 수 666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대주의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유일한 구주로 신앙고백 한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구속사역의 완성 및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과 재림을 문자적으로 믿는다. 이점에 있어서 언약신학적 신앙관을 견지하고 있는 개혁주의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개혁주의 안에서도 천년왕국설과 관련해 역사적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로 해석적 입장이 나뉘며, 택자의 선택 시기와 관련해서 타락 전 선택과 타락 후 선택으로 해석의 차이를 보일지라도 말이다.

 

이처럼 비록 지엽적인 주제와 관련해 견해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기독교의 핵심교리를 함께 신앙으로 고백하며 동질성을 추구할 수 있다면 동지의식을 가지고 부단히 미래지향적인 합의를 도모하는 일에 긍정적으로 연대해야 할 줄 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적전천년주의자도, 후천년주의자도, 무천년주의자도 그리고 세대주의자들을 포함해서 저들 간에 비록 해석상의 상호 간 견해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들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여러 방편들을 통해 그 이름이 낯설지 않은 죠지 뮬러, D.L. 무디, Charse Swindoll, John McArthur, Warren Wiersbe, W.A. Criswell 등도 세대주의 신학자요 목회자란 사실은 새롭지 않다. 선의적인 비판은 가능하되 독선적인 비난을 자제할 줄 아는 자가 진정으로 진리 편에 서 있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참고도서

 

1. 강병도 편 호크마 주석(1991)

2. 김성주 언약(2007)

3. 박용기 성경신학개론(1990)

4. 송영찬 파노라마 구약성경(2007)/하나님의 언약(2007)

5. 서철원 하나님의 구속경륜(1996)/하나님의 나라(1993)

6. 정훈택 하나님 나라와 교회(1993)

7. 양용의 하나님 나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2005)

8. 이한수 언약신학에서 본 복음과 율법(2003)

9. 이광호 구속사로 본 창세기(2007)

10. 장수민 개혁교회지(1991~)/단 9:27과 7년 대환란의 관계

11. 정성욱 성경신학과 개혁신학(1994)

12. 유해무 개혁교의학(1997)

13. 루이스 벌코프 조직신학(고영민 역, 1999)

14. 헤르만 리델보스 하나님 나라의 도래

15. 체스터 레만 성경신학(김인환, 1993)

16. 그레엄 골드워디 복음과 하나님 나라(김영철 역, 1988)

17. 게할더스 보스 성경신학(이승구 역, 1985)

18. O. 팔머 로벗슨 계약신학과 그리스도(김의원 역, 1983)/

하나님의 이스라엘(오광만 역, 2002)

19. W. J. 덤브렐 언약과 창조(최우성 역, 1999)

20. 아더 핑크 하나님의 언약(김의원, 1989)

21. E. J. 영 창세기 1-2-3장 강의(서세일 역, 1985)

22. 알버트 윌터스 창조-타락-구속(양성만 역, 1992)

23. 피터 A. 릴백 칼빈의 언약사상(원종천 역, 2009)

24. Clarence Stam 사랑의 언약(박상현 역, 2010)

25. 마이클 호튼 언약신학(백금산 역, 2009)

26. 클라런스 배스 세대주의란 무엇인가?(황영철 역, 1988)

27. 챨스 라이리 세대주의의 바른 이해(정병은 역, 전도출판사)

28. Vers S. 포이쓰레스 세대주의 이해(권성수 역, 1990)

29. 안토니오 A. 후크마 개혁주의 종말론(유호준 역,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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