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중국은 한국을 [천상(天上)]이라 불렀다.
황제 헌원의 역사기록 중국인들은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 부터 자신들의 나라가 생겼다고 수천년 동안 주장해 왔습니다.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는 약 4천6백년전 인물로서, 황제(皇帝 )란 천자가 아니라, 황제(黃帝 : 누를 황, 임금 제)라고 사용하는 칭호임을 유념해야 합니다.(일반적으로 천자로 칭하는 황제의 한문표기 : 皇帝)
중국 고전 "초사[楚辭] " 에 보면 "[황제헌원씨]는 백민(白民 - 배달민족의 한자식 표기) 즉 동이족(한민족)이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가 전하는 [황제헌원씨]의 성은 '웅(熊)'씨. 즉 '곰'씨라고 말하며 여러 가지로 보아 단군신화에 나오는 '웅씨족 할머니'의 후손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만주서부 홍산문명에서 내려온 사람들의 후손입니다 또한 중국사기(史記)를 보면 [황제헌원씨]는 원래 "소전(少典)의 아들" 이라 이야기 합니다[黃帝者少典之子] (史記ㆍ五帝本紀) 소전(少典)이란 지금의 도지사, 군수 정도되는 직책으로 다시말해 [황제헌원씨]가 "어느 큰나라의 작은 제후(아래)나라의 왕자" 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큰나라"는 어디였을까요. [황제헌원씨]가 나라를 세울 때 이를 막으려 대결했던 것이 바로 [치우]라는 인물인데 사기(史記)에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 치우는 옛 천자(天子: 황제)이다." [蚩尤古天子] " 치우(蚩尤)는 구리(九黎)의 임금이다." [九黎君號蚩尤是也] = 구리(九黎) =구이(九夷) = 동이(東夷) = 고대한국의 별칭). 즉 중국의 국가적 시조라는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는 구리(九黎)의 [군수, 도지사]의 아들이었고 대국인 구리(九黎)의 임금이 [치우천자] 였으며, [치우천자] 즉 구리(九黎)의 임금을 [제(帝)]라 불렀고 [황제헌원씨(黃帝 軒轅氏)]가 따로 독립을 한 이후 [황제(黃帝: 누를황, 임금 제)]라 불렀던 것입니다. 다시말해 그냥 [제(帝)]는 전통적으로 동이족(한민족)의 임금에 대한 칭호였으므로 [황제헌원씨]는 [제(帝)]라 하지 않고 [황제(黃帝: 누를황, 임금 제)]라 한 것입니다 중국황제의 시원 중국임금이 황제(皇帝 - 천자)]를 칭하게 된 것은 [황제헌원씨]로 부터 2천 수백년이 지난 후인 서기전 약 2백년전 진시황때 처음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진시황은 [시황제]라는 칭호를 쓰게 됩니다. 시황제(始皇帝)는 처음 시작하는 황제라는 뜻입니다 [황제헌원씨]는 중국을 건국한 '훌륭한 배달민족'입니다 그 후로 [황제헌원씨의 나라]는 그 후손인 요, 순임금을 거치면서 발전하여 중국의 뿌리가 되는데 중국 역대 왕조는 대부분 배달민족인 [황제헌원씨]의 후손인 것입니다 "천상(天上)" 칭호의 유래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천하(天下)라는 말을 많이 썼습니다. 천하(天下)는 원래 중국 대륙을 가리키는 말인데, 반대로 천상(天上)은 물론 하늘(天)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고대 중국 입장에서는 [땅위의 천국]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곳은 바로 한민족의 조상인 [환인씨 환웅씨의 나라] 입니다 환웅씨 홍산문명은 6천년전에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홍산문명 기간 : 6천년전 ~ 4천3백년전) 그 홍산문명이 중국 동부지방으로 내려오고, 그 문명을 전한 분 중에 치우임금이 있었고 그 치우임금의 배달국에서 독립해 나간 분이 황제헌원씨 입니다 중국에서는 그 [황제헌원씨]를 자기나라의 시조로 받들고 있습니다.
중국 산해관의 의미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중국에는 [산해관]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산해관(山海關)에다가 예로부터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습니다. (산해관의 전경]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이란 천상에서 천하(하늘아래)로 내려오는 첫번째 관문이라는 말입니다 다시말해 천상(天上)인 [환인씨 환웅씨의 나라]에서 천하(天下)인 중국대륙으로 들어가는 첫번째 문이 산해관(山海關)이라는 말입니다 만리장성의 또다른 의미는 천상(天上)과 천하(天下)를 가르는 경계선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우연의 일치인가 만리장성은 [산해관]에서 끝이 납니다 철기문화의 시작은 한민족 쇠를 뜻하는 철(鐵)자의 옛 글자는 金(금) + 夷(이) 즉 [金夷]자 (이 글자는 지금은 잘 안쓰기 때문에 컴퓨터의 한자지원이 안됨.)입니다 쇠 즉 철(鐵)은 원래 동이(배달)민족의 것이란 뜻이며 즉 철(鐵)도 동이(배달)민족이 처음 쓰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사마천의 사기(史記 -사기 권2) 에 보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철고이자야(金夷 古 夷 字 也) - " 철(金夷)자는 옛날에는 이(夷)자 였다." 고 말합니다. 동이(東夷) 민족을 뜻하는 '이(夷)'자 자체가 옛날에는 쇠를 뜻하는 글자로 쓰였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사기(史記)에 이어 중국 제 2의 역사책이라는 '한서[漢書 : 한서 권28 -이통차작철(夷通借作金夷), 철고문철자(金夷古文鐵字)에 보면 "철(金夷)자는 이(夷)자에서 나온 것이다." "철(鐵 : 철) 자는 옛날에는 [金夷]라 썼다." 라고 말합니다. 이는 철 즉 쇠가 원래 동이(東夷)민족만이 쓰던 것임을 나타낸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사기(史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치우가 노산(盧山)의 쇠(金)로 오병(五兵)을 만들었으니 분명히 보통사람이 아니다"(蚩尤受盧山之金 而作五兵 非庶人) 치우는 형제가 81명인데 구리머리에 쇠이마(동두철액 : 銅頭鐵額)를 하였으며, 모래와 돌을 먹고 칼,창, 커다란 활 등의 무기를 만들었다 (有蚩尤 兄弟八十一人 竝獸身人語 銅頭鐵額 食沙石子 造立兵仗刀戟大弓)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으로 보아도 철 즉 쇠가 원래 동이(東夷)민족만이 쓰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동이(東夷)의 치우임금과 그 형제들이 철을 만들기 위해서 철광석을 퍼가는 것을 보고 모래와 돌을 퍼다가 먹는다고 생각했으며, 구리와 쇠로 투구를 만들어 쓴것을 보고 그들은 '구리머리에 쇠이마' 로 착각한 것입니다. " 치우가 노산(盧山)의 쇠(金)로 오병(五兵)을 만들었다." 는 표현은 철갑옷과 투구등을 만들어서 병사들에게 사용하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금속 '구리'의 이름도 사실은 배달한국의 옛 이름인 [구리(九黎)]에서 나온 것으로 보여집니다. 리(黎) 자를 풀어보면 사람이 [人] 물가에서 [水] 벼농사를 짓기 위해 [禾] 쟁기질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리(黎)라는 글자 자체가 리(黎)족 (배달민족)이 처음 농사를 지었다는 것을 나타내며, 나중에 리(黎) 의 발음이 '려'로 바뀌는데 지금도 해가 처음 떠오르는 것을 [려(여)명(黎明)]이라 합니다. "리" 라는 말은 1. 동쪽에 사는 사람들이고 2 . '떠오르는 해'와 같은 최초의 문명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실제로 한국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농사를 지었다는 증거가 이미 예전에 발견되었습니다 1만 5천년전에 쌀농사를 지은 증거(재배 볍씨)가 발견되어 국제 학계의 공인을 받았으며. 국제적으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인정 받아왔던 중국 후난(湖南)성 출토 볍씨보다도 약 3천년이나 더 오래된 세계 최고(最古)의 볍씨가 한국에서 발견됐다고 영국 BBC 인터넷판이 2003년 10월 22일 보도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 (충북 청원서 발견 - 약 1만 5천년전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