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산의 아름다운 정경
북창 정염 선생의 『궁을가(弓乙歌)』의 개벽소식
일명 용호대사(龍虎大師)로 불리는 정북창(鄭北窓, 1506∼1549) 선생은 조선 중종, 명종 때의 학자로 충청도 온양사람이다. 25세(1530년)에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고 포천 현감까지 지냈으나 후일 벼슬을 사양하고 산천을 주유하였다. 소시에 산사(山寺)에서 선가(仙家)의 육통법을 시험해 보려고 3일 동안 정관(靜觀)하더니, 이로부터 배우지 않고 저절로 통하여 천리 밖의 일도 생각만 일으키면 훤히 알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체질이 허약하여 아침에는 입을 꼭 다물고 정좌하여 식사를 기다리고 해가 뜨면 비로소 입을 열어 말을 하였다. 밤에도 단정히 앉아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고 수도에 열심일 뿐만 아니라 마음씀을 고명하게 하고 의리를 지키는 데도 뛰어났다. 또한 새소리, 벌레소리, 짐승소리를 비롯하여 어느 나라, 어느 지방의 말도 배우지 않고 듣는 대로 통한 것으로 유명했다. 14세 때 북창 선생이 부친을 따라 명나라에 들어갔을 때 천기를 보고 찾아온 유구국(琉球國, 지금의 대만) 사람과 나눈 유창한 대화가 소문이 나자 많은 외인(外人)들이 몰려 왔는데, 이들이 제각기 북창 선생에게 자기 나라말로 수작을 걸어와도 통하지 않음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북창 선생이 돌아가신 연고에 얽힌 이야기를 간단히 적으면 이러하다. 친구의 부친이 찾아와서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애소하자 북창 선생은 아들의 천명이 다했음을 고백했다. 그래도 3대 독자인 아들을 꼭 살려달라고 눈물로 하소연하자 그는 자신의 수명에서 10년을 떼어 그 아들의 명을 이어주는 한 가지 방법을 설명하면서, 아무 날 저녁에 아무 산에 올라가면 산 위에서 푸른 도포와 노란 도포를 입은 두 노인이 바둑을 두며 놀고 있을 테니 바둑이 끝날 무렵에 그들에게 술과 안주를 지성으로 권하며 사연을 고하면 마침내는 승낙을 받아 아들을 살릴 수 있으리라 하였다. 이렇게 하여 용호대사 북창 선생은 친구의 수명을 이어 주고 자신은 44세에 스스로 만장(輓章) 한 수를 지어놓고 단정히 앉은 채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우 고옥(古玉) 정작(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