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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왕조 은나라, 동이족 일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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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 기사입력 2008.11.03 17:46 | 최종수정 2008.11.03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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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中 '은허' 발굴 80주년 기념 현장을 가다

지난 10월29일부터 31일까지 중국 안양 은허(殷墟)유적에서 은허발굴 80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중국내외의 학자 160여명이 갑골문으로 대표되는 은허발굴의 의의를 되돌아보고 발굴성과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학술대회에는 계간 '한국의 고고학' 주관으로 답사단이 파견됐는데, 기자는 이 답사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이곳은 은허(殷墟) 유적보다 이른 시기의 상(商)나라 성이 존재했던 곳인데요. 1호 궁전터는 이미 1999년 발굴되었고, 이곳은 지금 막 확인된 제2호 궁전터입니다."

지난 10월30일 오후 5시, 중국 허난성(河南省) 안양(安陽) 은허(殷墟).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할 무렵.

은허 발굴 8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 모인 국내외 참석자들의 눈이 빛났다. 이곳은 유명한 은허 유적에서 강(환수·洹水)을 사이에 두고 강북으로 약 2㎞ 정도 떨어진 원북상성(洹北商城) 터. 탕지건(唐際根) 중국사회과학고고연구소 연구원은 설명을 끝낸 뒤 참석자들을 이끌고 한참 더 갔다.

"자, 이 판축한 흔적 좀 보세요. 이것이 이번에 새롭게 확인한 원북상성의 북성벽입니다."

따끈따근한 발굴 성과를 보면서 유난히 감상에 젖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1928년부터 은허를 발굴한 리지(李濟)와 둥쭤빈(董作賓), 량쓰융(梁思永) 등의 후손들이었다.

109년 전인 1899년 국자감 좨주이자 금석학자였던 왕이룽(王懿榮)은 지독한 학질에 걸렸다. 그는 처방 받은 용골(龍骨)이라는 약재에 새겨진 글자를 확인했다. 이것은 갑골문자였다. 이후 학자들의 추적 끝에 약재의 원출처가 바로 허난성(河南省) 안양(安陽) 샤오둔춘(小屯村)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1928년 둥쭤빈을 대장으로 대대적인 샤오둔촌 발굴에 나섰고, 마침내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온 은(상·BC 1600~BC 1046년) 말기(BC 1300년부터)의 도성인 은허(殷墟)를 찾아낸 것이다. 무엇보다 완전한 체계를 갖춘 문자(갑골문자)를 확인했다. 이 갑골문은 현재 세계인구의 4분의 1이 사용하는 한자의 원형이다. 은허 발굴은 2001년 중국학계가 선정한 '중국 20세기 100대 고고학 발굴' 가운데 단연 1위로 뽑혔다. 2006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특히 1936년에는 12기의 왕릉과 2500여기의 제사갱, 부장묘가 발굴됐는데 학자들은 이것이 은(상) 말기인 BC 1300년에서 BC 1046년 사이에 재위했던 12명의 왕, 즉 역사서에 나온 반경에서 주왕까지 12명의 왕으로 해석했어요."(이형구 선문대 교수)

답사단의 눈길을 잡아 끈 것은 갑골전시관이었다. 지금까지 은허에서 확인된 갑골은 15만편에 이르는데, 1936년 이 한 곳(YH 127 갑골갱)에서만 무려 1만7000여편의 갑골이 쏟아졌다.

문득 '상서(尙書) 다사(多士)'편에 나온 "오직 은(상)의 선인들만이 전(典)이 있고, 책(冊)이 있었다"는 귀절을 떠올랐다. 중국학계는 "이것을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당안고(당案庫·역사기록을 보관한 창고)"라고 표현했다. 지금의 국가기록원인 셈이다.

은(상)은 갑골에 하늘신과 조상신, 자연의 신령에게 왕실과 나라의 길흉을 점친 것으로 유명하다. 군대, 형벌, 전쟁, 공납, 농업, 수공업, 상업, 축목, 기상, 건축, 질병, 생육, 길흉 등 국가의 대사는 물론 소소한 일상까지 일일이 점을 친 뒤 그것을 버리지 않고 기록으로 남겨두었던 것이다. 확인된 15만 편에서 확인된 갑골문은 4500자에 이르지만 아직 해독된 글자는 1000여자에 지나지 않는다.

답사 내내 경탄에 마지 않은 것은 은(상)의 청동기와 옥기 제작 기술이었다. 은허에서 출토된 청동기는 5000점이 넘는데, 사모술(司母戌)이란 명문이 있는 청동방정(鼎·사각형 모양의 솥)은 무게가 832.75㎏에 이르렀다. 옥기는 2600여건이 확인됐는데, 중국 동북방 차하이-싱룽와에서 발원한 옥기문화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은(상)은 동이족의 일파라는 점이다. 고고학자 푸쓰녠(부사년)은 "은(상)나라는 동북쪽에서 와서 흥했으며, 망한 뒤에 동북으로 돌아갔다"고 단정했다. 이번에 발굴된 원북상성의 경우 중심축이 동북으로 13도 정도 기울어져 있다. 이는 전형적인 상나라 도성의 방향인데, "고향(발해연안)에 대한 짙은 향수를 나타낸 것(궈다순·郭大順 랴오닝성 문물연구소 연구원)"이라 해석되고 있다.

이형구 교수는 "고구려·백제의 선조인 부여 역시 점을 치고, 술과 노래를 좋아하며, 백색을 숭상하는 등 은(상)의 풍습을 빼닮았다"면서 "하늘로부터 왕권을 받았다는 뜻인 역법(曆法)마저 은의 역법을 썼다"고 말했다.

이제 짙게 깔린 어둠에 바람마저 휑하여 더욱 쓸쓸해진 은허 현장. 답사단은 은(상)이 망하자(BC 1046년) 왕족인 기자(箕子)가 은허를 지나면서 불렀다는 맥수지가(麥秀之歌)를 떠올렸다. 하지만 은(상)의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철저히 파괴된 역사지만 그 동이의 역사는 3000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현현하고 있으니까….

< 중국 안양(은허) |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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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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