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9일 방송된 KBS ‘역사스페셜’의 만주대탐사 2부작 중 제1부 ‘제5의 문명, 요하를 가다’. 장쾌하게 펼쳐진 만주 대평원을 배경으로 한 이 프로그램은 8000여 년 전인 서기전 6000년경 요하 상류지역에 중국 문명의 뿌리인 황하문명보다 1000년 앞선 고대 문명이 존재했다고 소개한다. 이 고대 문명은 현재 이 지역을 영토로 하는 중국의 역사 기록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오랫동안 역사 교과서는 황하-메소포타미아-나일-갠지스 강 문명을 세계 4대 문명으로 불러왔다. 중국 또한 만리장성 이북은 ‘오랑캐의 땅’으로 “문명이 없다”고 주장해왔는데, 만리장성 서북쪽 1000여km 지점에서 고대 문명이 발견됐으니 이를 ‘제5의 문명’으로 부를 수밖에 없다. 이 고대 문명에서 발견된 것이 지금으로부터 5500년 전인 서기전 3500년경에 꽃핀 ‘홍산문화’다.
지금의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츠펑(赤峰)시 홍산(紅山)구에 있는 ‘붉은 산(紅山)’ 일대에서 처음 발견된 유물과 유적이기에 ‘홍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시기에 인류는 아직 금속기를 개발하지 못했다. 돌, 흙, 나무, 풀, 동물 뼈 등을 이용해 도구를 만들고 집을 짓던 후기 신석기 사회였다. 이런 홍산문화가 꽃핀 지역으로 뉴허량(牛河梁)이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에서 돌을 쌓아 만든 무덤인 적석총이 숱하게 발견됐다. 그
리고 이빨이 있는 곰의 아래턱뼈를 박아 흙으로 만든 ‘곰상(像)’의 얼굴 아래쪽과 발 부분이 발견됐다. 흙으로 빚은 젖가슴을 드러내고 눈에 푸른 옥(玉)돌을 박아 형형한 느낌을 주는 여신상의 머리, 가슴, 무릎 부분도 찾아냈다.
중국 언론에 ‘동북공정’ 논리 다시 등장
곰과 여신상을 숭배했다면 이들은 웅녀족이 아니었을까. 황하지역보다 1000년 앞서 문명이 시작된 이곳에서는 청동기 역시 황하지역보다 1000여 년 앞서 시작됐다. 청동기기를 개발한 것이 환웅족이고 이들과 결합한 족이 웅녀족이라면, 이곳은 단군을 낳은 고조선의 무대일 수도 있다.
9월5일 방송된 제2부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는 신라의 후예였다’도 발상의 전환을 요구했다. 거란이 세운 요나라를 무너뜨리고 고려를 굴복시켜 고려에게서 ‘형님국가’란 소리를 들었던 금나라를 신라 사람인 김함보의 후예가 세웠다고 밝힌 것. 발해와 신라가 남북조시대를 형성했듯, 금나라와 고려 역시 우리 민족이 형성한 남북조시대였다는 것이 이번 ‘역사스페셜’이 보여준 요체였다.
그런데 중국에서도 ‘역사스페셜’을 시청하는 모양이다. 중국어로 ‘변강(邊疆)’은 타국에 접한 국경선 가까운 변경이라는 뜻이다. 9월5일자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역사스페셜’의 내용을 요약보도한 뒤 랴오닝(遼寧)성 사회과학원 연구원이자 변강연구소 소장인 뤼차오(呂超)의 말을 빌려 “일부 한국인들이 역사, 특히 요하문명을 왜곡하는데, 현대의 고고학적 발견에 의하면 요하문명은 장강(양쯔강)과 황하문명에 이은 또 하나의 중국 문명 발원지다.
지금 한국 민족은 한반도 남부에 토착해 있던 사람들이 한반도 북부와 중국 북방에 있던 (중국의) 소수민족과 혼혈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지금 한국인들이 중국 북방에서 일어난 고대 문명을 그들의 것이라고 하는 주장은 실로 황당무계하다”고 지적했다. 뤼차오 소장의 이 말이 바로 ‘동북공정’ 논리의 핵심이다. 사마천이 ‘사기’를 쓴 이후 중국은 황하 중류에서 일어난 3황5제의 문명을 그들 문화의 뿌리로 봐왔고, 이 문명이 일어난 곳을 ‘중원’이라 불렀으며, 중원을 위협하는 북방민족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다.
그런데 만리장성 밖에 있던 여진족이 중원을 장악해 청나라를 세운 뒤 티베트, 위구르, 몽골 등 만리장성 밖의 다른 민족들을 복속시켰다. 이런 청나라를 신해혁명(1911년)으로 무너뜨리고 청나라 영토 위에서 중화민국을 연 사람이 쑨원(孫文)이었고, 쑨원의 중화민국을 마오쩌둥(毛澤東)의 중국이 이어갔다. 청나라 영토를 고스란히 이어받았기에 지금 중국은 황하문명의 후예인 한족 외에 55개 소수민족을 아우르게 됐다.
그런데 위구르와 티베트 사태처럼 소수민족들이 독립을 시도할 경우 나라 전체가 크게 흔들릴 수 있기에, 중국은 지금의 영토 안에 있는 모든 종족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는 논리를 만들었다. 순혈주의적인 황하문명론을 버리고 양쯔강에서 일어난 문명도, 요하에서 일어난 문명도, 티베트와 위구르에서 일어난 문명도 모두 중국 문명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만든 것.
제2차 한-중 역사전쟁 불붙나
그리고 이 사관을 구체화하기 위해 펼치는 것이 동북공정, 서북공정, 서남공정이며 뤼차오 소장은 이러한 역사 왜곡을 ‘환구시보’ 기자에게 정통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중국의 이런 공정에 티베트와 위구르인이 시위로 역사 왜곡에 맞선다면, 독립국가인 한국은 역사 추적을 통해 중국의 허구를 밝혀내고 있다. 한국의 역사 추적으로 중국이 느끼는 ‘불편함’은 ‘국제선구도보(國際先驅導報)’ 9월10일자 기사에 잘 나와 있다.
이 잡지는 “한국은 요즘 스스로를 ‘대한민국’ ‘대한민족’이라 부르며, 언론과 학술계 모두가 과거에 그들이 이룬 전성기의 휘황함을 찾는 데 노력하고 있다. 한국인 다수는 지금 중국의 동북지역이 과거에는 한국에 속해 있었다고 믿으며, 이러한 토대 위에서 중국에 과거의 한국 영토를 내놓으라는 충동을 해나가고 있다. 지난 9월4일은 한국에서 간도협약이라고 부르는 ‘도문강중한계무조간(圖們江中韓界務條款)’ 체결 100주년이었는데, 일부 한국인은 간도협약은 법률적으로 효력이 없다며 한국은 만주 고토를 회복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또 “한국인들은 역사연속극에서 한국 역사를 위대한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전성기 때 그들이 동북아 전체를 차지한 것 같은 망상을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지난 20여 년간 한국은 경제를 빠르게 성장시켰고 민주화도 이뤘기에 민족주의와 문화우월주의 정서도 함께 성장해 극단적 민족주의 및 극우세력이 등장했다. 그에 따라 ‘국사 찾기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 운동의 실체는 ‘국토 회복’이다. 간도 문제는 국토 회복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내용이다. 일부 한국인은 서양인들이 그린 고지도를 찾아내 간도가 그들의 영토였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한다.”
“1983년과 93년 한국의 일부 국회의원들은 두 차례나 장백산(백두산) 영토 귀속권을 조사하는 법안과 간도 문제 법안을 제출했는데, 이는 모두 한국 정부의 배후 지지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은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지시하고 국회가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동북아역사재단을 만들었으며, 그동안 이 재단은 연구를 종합하는 일은 물론 새로운 연구 성과도 상당히 내놓고 있다. 한국에서 일고 있는 이러한 역사 문제 주장은 한-중 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
한국과 중국 언론 간의 대립은 ‘국제선구도보’의 판단처럼 한-중의 역사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중국 언론이 동북공정을 펼치는 중국 정부의 논리를 대변하는 한 이 싸움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둘러싼 한-중의 제2차 역사전쟁은 불붙게 될 것인가.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