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반도에서 발굴된 고조선족의 팽이형 토기와 아사달 모양(네모 안). 아침 단(旦)을 나타내는 그림 아래 산(당시에는 ‘달’이라고 불렸음)이 그려져 있다. 중국 측은 기원전 4300년∼기원전 2200년의 유물로 추정한다. 사진 제공 신용하 교수 |
부족들은 서로 통합하여 고대국가와 고대문명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형성된 고대국가가 ‘고조선(아사달)’이고, 뒤이은 것이 고중국(夏)이다. 고조선은 ‘한’ ‘맥(貊)’ ‘예(濊)’ 세 부족이 결합해 수립한 고대국가이다.
‘한’족은 원래 한강 중상류에서 기원해 북으로는 대동강 유역, 남으로는 금강 일대까지 거주했던 부족이다. 한족은 가장 일찍 농경문화로 들어간 선진 부족이었으며, 태양 숭배와 천손(天孫)의식을 가진 부족이었다. ‘후한서’ 동이열전의 ‘양이(陽夷)’가 이 부족으로 해석된다. 중국 고문헌에는 ‘한(Q)’ ‘한(韓)’ ‘한(寒)’ ‘환(桓)’ 등 여러 한자로 기록되어 나오는데, 이는 ‘한’이란 명칭이 순수한 한족 말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고기(古記)’에는 ‘환(桓·환웅족)’으로 기록되어 나온다. 이들은 팽이형토기, 빗살무늬토기, 고인돌무덤, 각종 발달된 신석기 도구와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들을 유물로 남기고 있다.
‘맥’족은 지금의 요하(이전 이름 패수) 중류에서 기원하여 요동·요서와 동으로는 송화강, 압록강, 대동강 유역까지 넓게 퍼져 살던 곰 토템 부족이다. 모계 중심 유목문화와 옥문화를 발전시키고 적석총을 남긴 신석기 부족으로, ‘후한서’ 등에 ‘맥이(貊夷)’ ‘웅이(熊夷)’라고 기록되어 나온다.
‘예’족은 요하의 지류인 예하(濊河)에서 기원하여 요동반도와 한반도 서북해안에 거주하던 범(호랑이) 토템 부족이다. ‘후한서’ 예전에 “해마다 10월이면 하늘에 제사지내는데, 주야로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며 춤추니 이를 무천(舞天)이라고 한다. 또 범을 신으로 여겨 제사지낸다”고 기록하였다.
이 세 부족의 거주지역이 만나 중첩된 지역인 대동강 중류 강동(江東)지역에서 한족이 왕을 내고 맥족은 왕비를 내며 예족은 소왕을 내는 결합 방식에 의해 동북아시아 최초의 고대국가인 고조선이 건국되었다.
‘삼국유사’에 인용된 중국 고문헌 ‘위서(魏書)’를 옮기면 “위서에 이르되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단군(檀君) 왕검이 있어, 도읍을 아사달(阿斯達)에 정하고 나라를 개창(開創)하여 조선(朝鮮)이라 하니 고(高·중국 요임금)와 같은 시기이다”라고 하였다. 이병도 박사의 지적과 같이 ‘조선’은 ‘아사달(아침 땅·아사는 아침, 달은 산·땅)’의 한자 번역이다. ‘아사달’은 순수한 고조선말 나라이름이었다.
이 중국 고문헌은 기원전 24세기경 고조선(아사달)이 건국되었음을 명료하게 기록하고 있다. 중국 역사가들은 외국 역사를 깎아내리는 악습이 있으므로, 만일 의심한다면 고조선 건국 시기가 중국 요임금 시대인 기원전 24세기보다 더 이전일 가능성도 있다. 예컨대 소호(少昊)족의 ‘삼족오태양신(三足烏太陽神)’ 전설에는, 이미 바다 건너 동방의 천제(天帝) 준(俊)이 구이(九夷)를 통치할 무렵 한발이 극심하여 요임금이 천제 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기록했다. 중국에서 요임금이 소왕국의 작은 왕이었을 때 동방의 천제 준은 9개 동이족을 모두 통치하는 천제가 되어 있었으므로 고조선이 요의 소왕국보다 훨씬 이전에 건국되었음을 시사한다.
또한 중국 고고학계는 산동반도의 동이족 대문구(大汶口) 문화 유적에서 ‘아사달’ 문양이 그려진 팽이형토기(고조선의 독특한 양식 토기) 11개를 발굴했는데, 중국 측은 기원전 4300년∼기원전 2200년의 것으로 연대 측정했다. 이는 고조선 사람들이 고조선 건국 후 건너가 제작한 것이므로, 고조선 건국이 적어도 기원전 43세기∼기원전 22세기 이전의 일이었음을 알려 주는 고고 유물이다.
‘고조선’의 건국은 한강신석기문화(한족, 왕 배출)와 요하신석기문화(맥족, 왕비 배출), 대동강신석기문화(수도 설정)의 세 강의 신석기문화를 통합해서 한 단계 더 높인 동북아시아 최초의 고대국가 건국이었다고 볼 수 있다.
고조선은 이 지역 최초의 고대국가였으므로 빠른 속도로 만주 요동·요서지방으로 영역이 확대되었다. 이에 따라 수도도 ‘강동’에서 요하 부근 개평현 험독(險瀆·검터)으로 천도하였다. 또한 3경5부(三京五部)제를 실시해서 지금의 중국 요령성 조양(朝陽·아사달), 영평부의 조선현(아사나, 고죽국) 내몽고 자치주의 적봉(赤峰·붉달, 밝달)을 부수도로 하여, 넓은 지역을 5개 구역(부)으로 나누어서 그 안에 포함된 부족들을 직접 간접으로 통치하였다. 그리고 이 통치지역에 공통의 ‘아사달(고조선)문명’을 창조하여 발전시켰다.
중국 요동 출토 옥귀고리 중국 요동 지역의 흥륭와 문화 유적지에서 발견된 옥 귀고리. 기원전 6000년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제공 소나무 |
중국 측이 최근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요서·요동지방의 고고 유물을 발굴하다가 신석기시대 맥족문화의 발전에 경악하고 있다. 우실하 교수와 심백강, 복기대 씨의 저서 및 답사보고서를 종합하면, 이른바 소하서(小河西)문화, 흥륭와(興隆.)문화, 사해(査海)문화, 부하(富河)문화, 조보구(趙寶構)문화, 홍산(紅山)문화, 소하연(小河沿)문화 등의 발굴, 특히 홍산문화 후기의 우하량(牛河梁) 유적 발굴에 기초하여 요하문명의 개념을 정립하고 이집트문명보다 앞선 세계에서 가장 오랜 중국 문명이 요하문명이라고 홍보하고 있다고 한다.
강원 고성 출토 옥귀고리 강원 고성군 죽왕면 문암리에서 발굴된 옥 귀고리. 국내 최초 신석기 시대의 옥 귀고리로 중국 흥륭와 유적의 옥 귀고리와 유사하다. 사진 제공 소나무 |
여기서 중국 측의 ‘문화’는 서양 고고학의 ‘터(site)’를 과장 표현한 것이다. 이 발굴 유물·유적들은 고중화문명에 속한 것이 아니고 아사달(고조선)문명에 먼저 속한 것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위의 유물·유적이 모두 맥족과 예족의 신석기시대 것들이다. 맥·예족은 고조선을 형성한 부족이다. 중국 역사학자들은 맥족, 예족을 ‘동이(東夷), 북이(北夷)’라 하여 고대 중국 형성에 속하지 않는다고 배척해 오지 않았는가?
둘째, 가장 발전된 ‘우하량’ 유적에서는 실물의 약 세 배 크기 여신(女神) 또는 여성 토상이 발굴되었다. 이것은 그들이 신석기시대 모계사회에 관련되어 있으며, 고대문명을 만든 가부장 사회 이전 단계임을 시사한다. 고조선 건국 때 한족이 왕을 내고 맥족이 왕비를 내는 혼인동맹으로 결합하여 최초의 고대국가를 세우고 아사달 문명 단계로 들어갔음을 고려하면, 우하량의 맥족 유적은 고조선 건국과 아사달 문명의 형성 요소로 보아야 한다.
셋째, 우하량 유적에서 대량 발굴된 잘 간 ‘옥’ 장식물은 지배층의 것인데 곰의 형상이 많고 곰 토상의 일부도 발굴되어, 이들이 곰 토템 부족임을 알려 준다. 곰 토템 부족(맥족)이 고대국가의 지배층으로 들어간 것은 이 지역에서는 고조선과 아사달문명뿐이다.
넷째, 발굴된 옥돌 가운데 환옥은 우실하 교수가 비교한 바와 같이 한반도 강원 고성군 문암리에서 발굴된 환옥과 동일 형태이다. 이 옥 문화는 맥족과 예족이 공유한 문화로서 한반도와 요서지방이 동일 고대문명권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다섯째, 함께 발굴된 토기들이 검회식 민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 평저(平底) 화분형 토기(팽이형토기 말기에 나오는 토기)로서 한반도에서 발굴되는 토기와 같은 유형이다. 채도 등 고중국 토기 유형과는 다르다.
여기까지만 보아도 요하문화는 고조선의 아사달문명의 구성 요소의 일부이다. 요하문명은 과장된 것이며, 더구나 이것을 고중국문명이라고 해석해 홍보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다.
여러 하위문화가 모여 문명 단계로 발전했음을 증명하려면 종합적으로 반드시 고대국가 형성이 동시에 증명되어야 한다. 이 시기에 동북아시아에서 형성된 고대국가는 고조선뿐이며, 고조선 아사달문명이 한강문화, 대동강문화, 요하문화를 통합하여 한반도와 요동·요서에 걸친 새 문명을 개창한 것이다.
-신용하 이화학술원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