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역사의 비밀 “삼평양(三平壤)”
1. 장당경
가. 장당경은 북평양
대변경에 이르기를 “단군 구물이 나라 이름을 대부여로 바꾸고 도읍을 장당경으로 옮겼으니 지금의 개원開原이요 역시 평양平壤이라 부른다.”고 했다. 환단고기 소도경전본훈>
장당경은 현재의 요령성 개원시에 위치하고 있다. 중국 지도를 보면 요하가 중류에서 꺾어지는 지점에서 청하 하류와 만나는데 그 곳에 개원이 있다. 이곳이 곧 단군조선 44대 구물 단군의 도읍지로서 첫 평양이다.
북평양이란 이름은 환단고기에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삼평양 중에서 가장 북쪽에 있었으므로, 편의상 구분하기 위하여 북평양이라 한 것이다. 또, 시기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앞섬으로 달리 전평양 또는 원평양이라 부를 수 있다.
나. 장당경의 다른 이름
장당경은 앞서 소도경전본훈에 기록된 바와 같이 개원開原이다. 그리고 그 개원의 원래 이름은 개사원蓋斯原이다.
49년 임진에 개사원 욕살 고등이 몰래 군사를 일으켜 귀방을 습격하여 멸하니 일군국과 양운국 두 나라가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단군세기 21세 단군 소태 49년 임진>
개사원의 약칭은 개원이다. 그리고 그 역사에 기록된 별칭으로 개성開城이 있다. 달리 개원에 있는 성을 개원開原의 성城이라는 의미에서 개성이라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이해에 고등이 반란을 일으켜 개성에 웅거하여 천왕에게 항명하였다. 삼한관경본기 마한세가 상>
개사원蓋斯原의 개는 한자로 개蓋이나 개원開原과 개성開城의 개는 한자로 개開다. 고구려국본기에서 “당산 서남에 있는 개평蓋平을 다른 말로 개평開平이라 한다.”고 기록했으니, 신교의 기록에 있어 개蓋와 개開를 혼용하여 썼음을 알 수 있다.
다. 대부여의 수도 장당경
개사원 욕살 고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21세 단군 소태가 우현왕右賢王으로 삼아 달랜 바 있는데, 그 손자가 바로 22세 단군이 되는 색불루다. 색불루 단군은 해성海城 욕살 서우여, 마한馬韓 임금 아라사 등과의 권력 투쟁에 성공하고 그 도읍지를 개사원과 아사달의 중간 지점인 백악산으로 옮긴다.
백악산으로 천도를 단행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권력 기반이 되는 개사원과 멀리 떨어지지 않게 됨으로써 정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고, 아울러 옛 도읍지인 송화강 아사달의 구세력을 견제하고 포용할 수 있게 된다. 쿠데타로 우현왕에 오른 개사원 욕살 고등에 이어 다시 쿠데타로 단군에 오른 고등의 손자 색불루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많은 논란을 일으킨다. 그 논란의 중심인물은 신지 육우다. 신지는 당대 지식층의 대표이며 오가 및 구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런 까닭으로 색불루 단군 6년에 신지 육우는 “아사달이 천년 제업의 땅이기는 하지만 대운이 이미 다하였고, 영고탑은 왕기가 농후함이 백악산보다 훨씬 나을 듯하오니, 성을 쌓고 도읍을 옮기시기를 바라옵니다.”라고 말씀드리며, 아사달에 보다 가까운 영고탑으로의 천도를 주청하게 된다.
하지만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색불루 단군의 생각은 이와 달랐으므로 “새 도읍이 이미 자리 잡았는데 어찌 다시 다른 곳으로 가리오.”하며 윤허하지 않는다.
실제로 지도를 들여다보면 백악산은 아사달보다는 조금 더 장당경에 가깝다. 이것은 색불루 단군의 심리를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더불어 색불루 단군은 그의 조부 고등에 이어 적극적인 중원 정벌책을 썼으니, 대단군의 수도는 보다 중원에 가까워야 했던 것이다.
실제로 색불루 단군은 원년 11월에 몸소 출전하여 은나라 서울을 쳐부수었고, 또 20년 을묘에 제후 람국군藍國君이 여러 적들을 물리치고 엄독홀奄瀆忽에 옮겨갔을 때, 장수 여파달黎巴達로 하여금 빈기 지방을 점령하여 ‘려국黎國’을 세우게 한 바가 있다.
색불루 단군의 백악산 천도 이후 그 왕조 발생지인 개사원은 그 이름을 높여 장당경이 된다.
가을 9월에 친히 장당경으로 거동하여 고등왕의 사당을 세워 제사지냈다. 단군세기 22세 색불루 단군 원년 병신>
단군조선은 제1기 아사달에 도읍한 왕검 단군의 황조에 이어, 단군조선 제2기 색불루 단군의 황조가 백악산아사달에 들어서고, 다시 구물 단군에 의하여 제3기 단군조선이 들어서는 바 그 도읍은 장당경이 된다.
단군조선 44세 단군 구물은 국호인 조선을 바꾼 분이다. 조선의 국호를 고쳐 대부여大夫餘라 하고, 삼한三韓의 명칭을 바꿔 삼조선三朝鮮이라 불렀으니, 대부여의 수도는 바로 장당경이다.
라. 장당경과 부여신궁
우현왕 색불루가 즉위한 곳은 부여신궁夫餘新宮이다. 이 부여신궁은 다른 이견이 없는 한 장당경이다.
색불루 단군은 소태 단군에게 서우여의 섭정을 중지토록 건의했으나 거절당한다. 그러자 색불루 단군은 이에 대항하여 부여신궁에서 제위에 올랐으니, 그가 다스리고 있는 개원은 다름 아닌 부여신궁이 된다. 신궁이란 새로운 궁궐을 뜻하니 그의 조부 고등이 우현왕에 올라 새로 지은 궁궐임을 뜻한다.
우현왕이 좌우 측근과 사냥꾼 무리 수천을 거느리고 드디어 부여신궁에서 즉위하니 황제께서 마지못하여 옥책과 국세를 전하였다. 단군세기 21세 단군 소태 52년 을미>
달리 “이 부여신궁이 백악산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틀린 생각이요, 기록의 정황으로 개원으로 보는 것이 옳다.
마. 녹산의 높임말 백악산
참고로 백악산의 원래 이름은 녹산鹿山이다.
원년 병신 정월에 드디어 녹산에서 즉위하였는데 이곳이 곧 백악산 아사달이다. 삼한관경본기 마한세가 하>
앞서 색불루 단군은 소태 단군 52년 을미에 자기를 따르는 신하들의 추대로 즉위하였으니 이 곳을 부여신궁이라 하였다. 그리고 그 해 정식으로 소태 단군으로부터 제위를 물려받고 정식으로 제위에 오르게 되니, 그 곳은 백악산이다. 백악산은 녹산을 높인 말이다.
바. 영고탑 천도 논쟁
“녹산의 성을 고쳐 쌓도록 명하고 관제를 개정했다”는 단군세기 색불루 단군 원년의 기록은 천도를 단행하기 위한 사전 조치를 뜻한다. 이와 같이 녹산에 이미 성이 개축되고 그 해 천도를 단행하였음으로, 신지 육우를 비롯한 오가와 제후들이 색불루 재위 6년 신축에 영고탑으로 천도할 것을 주청해도, “이미 새 도읍이 들어섰는데 어찌 다시 다른 곳으로 가리요”라 말씀하시며 영고탑으로의 천도를 허락하지 않으시게 된다.
이 영고탑 천도 논란은 그 후 색불루 단군 36년에 변장 신독이 반란을 일으킴으로 영고탑의 이궁으로 14년간이나 피신함으로써 더욱 힘을 얻는다. 영고탑의 이궁은 20세 단군 고홀이 36년 병신에 쌓은 것이다. 그러나 이 논란은 피난지에서 색불루 단군이 돌아가시고, 그 태자 아홀이 23세 단군에 올라 그 원년에 반장 신독을 죽이고, 백악산으로 돌아옴으로써 힘을 잃게 된다.
그리고 그 4년 뒤인 무자년에 단군께서 마한의 주청을 받아 들여 영고탑으로의 논의를 중지토록 함으로써 끝을 맺게 된다. 이 때 마한은 색불루 단군의 1등 공신인 여원흥이니 아홀 단군의 밀명을 받들었던 것이라 하겠다.
반면에 식지 육우가 천도할 것을 주장한 영고탑 일대는 훗날 대진국 발해 의 중심지가 되었으니, 그 도읍지 동모산과 홀한성은 영고탑에서 그리 멀리 않은 곳에 있다. 흑룡강성 영안시와 경박호의 중간에 있는 발해, 동경성 등의 지명이 바로 그 흔적이라 할 것이다.
사. 대부여와 장당경
부여란 말의 시작은 단군 왕검으로부터 비롯된다. 단군 왕검의 네 아드님은 부루, 부여, 부우, 부소이니, 태자 부루는 조선의 2세 단군이 되고, 나머지 세 분은 모두 조선의 제후가 된다. 부여는 생전에 뭇 제후 가운데 탁월한 공을 많이 세운 인물이다. 그러므로 “색불루 단군이 부여신궁에서 즉위하였다”란 기록은, 부여신궁이 위치한 개사원이 옛 부여국의 땅에 있음을 뜻한다.
44세 구물 단군은 조선이란 이름을 버리고 대부여를 선포하신 분이다. 그리고 그 수도를 장당경으로 삼았다. 이것이 곧 제3기 단군 조선이다. 장당경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색불루 단군이 처음 군사를 일으키고 제위에 올랐던 땅이다.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이 땅은 옛 제후 부여국의 관경이었다.
원시 부여국으로부터 800년이 지날 때까지 이 부여가 발전하였음은 단군세기 17세 여을 단군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단군께서는 나라를 두루 순행하시다가 개사원의 관경에서 만난 한 청포노인에게 헌사들 받았으니, 이 노래를 통해 우리는 부여국의 문명이 얼마나 발전하였는가를 가늠하여 볼 수 있다.
늘 선인의 나라에 살면서 즐거움은 선인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황제는 덕에 허물이 없고, 왕은 도에 치우침이 없습니다. 백성이여! 이웃이여! 그 근심과 괴로움을 볼 수 없도다! 재앙을 책임짐으로써 믿음을 심고, 나라의 경계를 잘 관리하여 은혜를 베푸니 성이여! 나라여! 전쟁과 다툼을 볼 수 없도다! 단군세기 17세 단군 여을 52년 경신>
개사원 출신 색불루 단군이 22세 단군이 되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옛 부여의 명성을 이어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부여국은 계속해서 발전하는데 그 문화적 역량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왕문이 있다. 왕문은 31세 등올 단군 때의 사람이다. 왕문은 부여인이라 하였으니, 왕문이 이두법을 비롯하여 한문과 은학을 창시하였음은 소도경전본훈에서 살필 수 있다.
2. 해성
가. 해성은 중평양
해성은 또 하나의 평양이다. 장당경보다는 아래쪽에 있고 북한 대동강에 있는 평양보다는 위쪽에 있다. 그러므로 이곳은 그 지리학적 위치로 보았을 때 중평양이다. 또한 시기적으로도 장당경이 처음 평양으로 불린 이래 두 번째로 등장한 평양임으로 중평양이 된다.
삼한조선 44세 구물은 원년에 평양인 장당경에 도읍한 이래 해성에 별궁을 짓는데 그곳의 별칭도 또한 평양이다.
7월에 해성海城을 개축하여 평양으로 삼고 이궁을 지었다. 단군세기 44세 단군 구물 원년 병진>
나. 아사달과 평양
단군조선 시대 때 단군 조선의 수도를 뜻하는 말은 아사달이었다. 조선의 관경은 삼한으로 이루어지니, 대단군인 진한은 마한과 번한의 부단군을 두고 대리 통치를 하였다. 진한은 대단군이 직접 통치를 하였는데 그 수도를 아사달이라고 불렀다. 그런 까닭으로 색불루 단군이 수도를 백악산으로 천도해도 역시 새로운 도읍을 아사달이라고 부르게 된다. 이것을 옛 아사달인 송화강의 아사달과 구분하여 백악산 아사달이라고 부른다.
수도를 뜻하는 말인 아사달은 훗날 평양으로 대체되게 되는데, 그 시기와 정황을 살펴보면 원래 평양이란 말은 변방인 개사원의 사투리로 보여 진다. 개사원은 지방장관인 욕살이 다스리는 하나의 제후국으로서 그 수도인 개성을 평양이라 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구물 단군에 의하여 장당경이 새로운 수도가 되자, 그 지방의 말이 표준어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부터 평양은 명실공이 새 나라의 도읍지, 대부여의 서울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고 하겠다.
다. 평양의 의미
평양의 평平을 파자 해보면 간干과 팔八이 더해진 글자다. 간干이란 우주변화원리로 십십일일지공十十一一之空을 뜻한다. 십십일일지공의 공空이란 삼일신고의 제1장 허공과 같으니, 이 우주가 허허공공虛虛空空함을 삼극三極의 수리數理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십십일일十十一一이란 삼극원리의 일태극一太極과 십무극十無極이 합해진 것을 뜻한다. 또 팔八이란 팔방을 뜻한다.
합하여 생각해 보면, 평平이란 팔방으로 벌려진 이 지구를 십무극과 일태극의 정신으로 다스려 평정하고 안정시키는 것을 뜻한다. 달리 평의 점 두개를 팔이 아닌 일월日月의 점 두개로 본다면, 이것은 십무극과 일태극의 정신을 집행하는 일월군주日月君主, 또는 십무극과 일태극의 정신에 의하여 정음정양의 운동을 펼치는 해와 달이란 뜻을 가지게 된다.
부연하면 음양을 주재하는 신수神獸는 용龍과 봉鳳이며, 음양의 본원은 일월이다. 일월은 천지를 대신한 광명의 본체이니, 그 중심에는 항상 신수神獸인 삼족오와 두꺼비가 있다.
아사달이란 아침 해가 비추는 땅이다. 이 아사달은 계절로서는 봄이고 숫자로는 3, 8이다. 이 아사달의 빛과 열기는 시간의 순환법칙에 의하여 서방의 가을에 이르면 반드시 통일을 이루게 된다. 그것은 열매이고 알곡이니, 이것을 수자로 표현하면 십일十一이다. 이 십일은 달리 십십일일지공이라 부르는데, 일은 일태극이며 십은 10무극을 뜻한다. 무극은 뭇 천지 조화의 근원이고, 태극은 모든 우주 조화의 본체이니, 태극은 무극의 기운을 통일함으로써 무극을 계승한다.
그러므로 이 땅은 천지일월을 대신하여 인간과 생명을 통일하는 태극국太極國이다.
라. 새로운 평양 태극전
주역의 첫괘인 중천건괘의 두번째 양효를 보면 "현룡재전見龍在田 이견대인利見大人"이란 말이 있다. 용龍이란 한 모금의 물로 능히 천하의 비를 지어내는 신수이니 곧 태극제太極帝를 상징한다. 그리고 이 용이 바로 대인大人이다. 신시본기에 의하면 대인이란 신령한 주문呪文으로 수행하여 삼신三神의 얼을 되찾고, 인간과 만물을 개벽시키는 사람이다.
그리고 전田이란 그 태극국의 평양平壤을 뜻한다. 이 전田은 십十을 일一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니, 이것은 무극을 계승한 태극을 뜻한다. 그러므로 전은 태극전太極田이다. 약칭하면 태전太田이니, 충남의 대전大田은 원래 태전이다. 원래 한밭 태전이었으나 이등방문이 태太를 대大로 바꾼 이후 아직까지 왜곡된 지명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利란 "이롭다. 추수하다"는 뜻이니, 이利는 "대인을 만나보면 이롭다. 가을에 추수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평양의 양은 양陽이 아닌 양壤이니 ‘토지’란 말이며, 땅을 뜻하는 아사달의 ‘달’과 그 뜻이 일치한다.
오제설에 의하면 평이란 태평太平의 약자다. 환웅천황께서 사후에 태평천으로 돌아가셨으니, 태평천이란 동방의 하늘이며 대광명을 주재하는 곳이다.
동방의 사명은 태목太木이고 그 황제는 청淸이며 그 호는 동인호생同仁好生이며 그 보좌는 대웅大雄으로 태평천太平天에 계시니 이를 일러 대광명大光明이라 한다. 삼신오제본기>
또한 신교에는 성기成己, 자유自由, 개물開物, 평등平等의 이념이 있다. “성기, 자유, 개물, 평등”이란 “몸을 완성하여 자유를 얻고, 물질을 개벽하여 평등을 누린다.”는 뜻이다. 하늘의 광명을 열고 빛과 열을 받아 내려 곡식과 물질을 얻으며, 그 하늘의 무한한 창조성을 본 받아 제도와 문물을 발전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개물이다. 그리고 평등이란 이 모든 혜택을 온 나라 백성들이 골고루 누리는 것을 뜻한다. 연개소문 또한 성기, 자유, 개물, 평등을 외쳤으니 이는 고구려국본기에서 발견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일전에 윤내현 교수 등이 평양의 뜻에는 “펴다. 펴라. 펼친다.”의 뜻이 있다고 밝힌 바 있고, 신교의 평양에는 “광명을 여는 땅, 천지를 개벽시키는 땅, 한 없이 평등한 땅, 크게 평화로운 땅”이란 뜻이 있으니, 합하면 “광명을 만 천하에 펼치는 땅”이란 뜻이 된다.
마. 남옥저의 수도 해성
중평양인 해성 평양은 북부여에 이르러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도적 위만이 번한을 강탈한 이래 한나라의 지원에 힘입어 서쪽 변방인 대능하와 구려하를 넘어 영토를 계속 침탈했기 때문이다.
이 해성은 대진국 본기에 의하면 대진국의 남경 남해로 본래 옛 남옥저의 수도다.
대진국의 남경 남해로 본래 옛 남옥저의 수도였으며 현재의 해성현이다. 대진국본기>
환단고기에 등장하는 옥저를 살펴보면 동서남북의 옥저인 동옥저, 서옥저, 남옥저, 북옥저가 있다.
여기에 보면 “남옥저의 수도가 현재의 해성현이다” 하였음으로, 옥저의 함경도 설은 모두가 새빨간 거짓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두 번째 평양인 해성은 지금의 해성이다. 해성은 현재 요령성 해성시로서, 요하구로부터 5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바. 평양도와 사출도
대부여 1세 구물 단군에 세워진 평양이 된 해성은 북부여 2세 단군 모수리 단군 3년 기유에 평양도에 속하게 되는데, 여기서 평양도란 사출도四出道의 하나인 평양도로 봄이 타당하다 하겠다. 전기 북부여 시대에는 전국을 오행五行의 이치에 의하여 오방五方으로 나누어 다스렸으니 이것이 곧 사출도다.
3년 기유에 해성을 평양도平壤道에 속하게 하고 황제의 아우 고진에게 해성을 수비하도록 하니, 중부여 일대가 모두 북부여를 따랐다. 환단고기 북부여기 상편 모수리 3년>
또 단군 모수리 겨울 10월에 수도인 중앙과 지방인 사방을 지키는 경향분수지법이 마련되었으니, 경향분수지법이란 수도는 천왕이 직접 수비하고 지방은 넷으로 나누어 군대를 주둔시켜 지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흡사 윷놀이와 비슷하고 하도낙서와 닮았음으로 달리 사출도柶出圖라 부를 수 있다.
더 나아가 북부여가 전국을 5도로 나누었음으로, 신라와 고려 그리고 조선 시대에 지방의 경계인 도란 말의 효시는 북부여라 하겠다.
3. 남평양
가. 북한의 평양
개원은 북평양이요, 해성은 중평양이요, 평양은 남평양이다.
실제 개원과 해성과 평양을 지도상에서 보면 개원에서 해성에 이르는 위도의 차이와 해성에서 평양에 이르는 위도의 차이가 거의 같다.
환단고기에는 북평양, 중평양이란 말은 없다. 필자가 인위적으로 만든 말이다. 하지만 이런 구분을 한 까닭은 같은 음과 동일한 한자로 기록된 각기 다른 지명을 구분함으로써 혼란을 줄이고 인식을 명확하기 위함이다.
필자가 이런 구분을 한 근거는 환단고기에 있다. 환단고기에 대동강의 평양을 남평양이라 기록했기 때문이다. 동서남북이란 것은 모두가 상대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남의 상대는 북이다. 그 최북단에 있는 것은 장당경임으로 북평양이라 부른 것이며, 또 장당경의 서남, 남평양의 서북에 있는 해성은 그 중간이 됨으로 중평양이라 한 것이다. 만일 동쪽에 또 하나의 평양이 발견된다면 해성은 서평양이 될 것이다.
환단고기에는 개원, 해성, 평양 세 곳 외에는 평양은 발견되지 않는다. 하지만 환단고기가 한민족의 모든 역사를 기록한 것은 아니므로 윤내현 교수의 고조선사 연구처럼 더 많은 평양이 발견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언급한 환단고기의 평양은 우리의 기록을 토대로 하였음으로, 중국의 기록을 중심으로 한 윤교수의 평양과는 많이 다르다고 하겠다.
또 신라 매금, 백제 어하라와 더불어 남평양에 모여 납부할 공물과 국경 수비병의 수를 약정하였다. 환단고기 고구려국본기>
세 번째 평양은 지금의 평양이다. 현재 북조선의 수도로 쓰고 있는 평양은 고구려 20대 황제 장수열제 15년에 천도한 곳이다.
이 평양은 원래 전마한의 왕검성이 위치해 있던 곳이다. 알고 보면 진조선眞朝鮮의 법통을 이은 고구려가 처음 수도를 마한의 땅에 옮긴 것은, 조선 일 만년 역사에 있어 제일 대사건이라 할 수 있다.
고구려 광개토대제는 한민족사의 국력을 가장 크게 신장시키는 분이다. 삼한과 선비, 거란, 지나, 왜, 흉노, 돌궐, 몽골 등을 평정하여 9환을 통일하고 명실공이 다물을 완성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역사의 절정은 삼대에 걸쳐 지속되었으니, 그 삼대란 19대 광개토대제, 20대 장수열제, 21대 문자열제다. 그리고 그 절정의 순간에 장수열제는 천도를 단행하였으니 그곳이 바로 평양이다.
나. 평양과 삼극 원리
만물은 무한히 번성하면 반드시 통일을 준비한다. 그 통일의 결과가 바로 열매다. 그 만물의 번성은 황극皇極이 주도하며, 그 사물 발전의 극에 이르면 반드시 무극이 창조된다. 그리고 그 무극에 의하여 인간과 만물을 통일의 기원을 이루게 된다. 무극을 계승하여 통일을 완성하는 것은 태극이다.
남평양으로 천도하신 분은 장수열제다. 장수열제는 고구려 제20대 황제다. 20이란 수는 무극無極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수가 20에 이르면 무화됨으로 실제적으로는 19에 이르러 최대 분열을 하고 수장收藏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무극이란 정남방正南方을 궁으로 삼고 분열을 중재하여 통일을 매개하는 존재임으로, 장수열제의 남평양 천도는 무극의 창조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남평양 천도란 이 땅 한반도에서 무극이 창조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여 준 일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다. 평양의 풍수원리
옛 한민족의 신교 세계에 있어서 태백산이 있는 이 땅 동북방은 신시본기에서 “대우주의 신명이 머무는 곳”이었으며, 삼신오제본기에 의하면 “삼신상제가 강림하여 360만 대주천의 우주를 뜯어 고치는 곳”이었다. 그런 점에 있어 삼신상제는 무극제라 하겠다. 태백산은 백두산이며 삼신산이다.
유가의 공자에 의하면 한반도는 동북 간방이다. 공자는 그의 주역의 설괘전에서 “동북 간방이란 만물의 끝남과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지는 곳이라. 고로 말씀이 간방에서 이루어지느니라.”라고 언급하였으니, 동북 간방이란 우주 만물이 끝을 맺고 다시 시작하는 핵심 혈자리를 뜻한다.
남평양으로의 천도란 정동인 진방辰方의 참 군주가 간방艮方으로 자리를 옮긴 것을 뜻한다.
한민족은 북방의 환국에서 동방의 배달국이 건국된 이래 다시 동북방의 한반도로 그 핵심이 이동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괘적은 “북방의 감坎 -> 동방의 진震 -> 동북 간艮”이니, 이것은 우주가 변화하는 섭리를 따른 것이다.
원래 혈자리라는 용어는 풍수지리에서 쓰는 말이다. 지구의 풍수지리를 대관하면 남북아메리카는 외청룡이 되고, 아프리카는 외백호가 되며, 일본은 내청룡이 되고, 중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는 내백호가 되며, 호주는 안산이 된다. 그러므로 그 중심은 한반도가 되는 것이다.
라. 삼신의 저울 삼평양
이와 더불어 소도경전본훈에는 칭간추극기秤?錘極器의 기록이 있다. 칭간추극기란 저울대, 처울추, 저울접시를 말함이니, 이것은 조선 초대 단군 왕검께서 삼한의 첫 도읍지를 풍수의 원리에 따라 세웠음을 뜻한다.
저울대는 부소량이고, 저울추는 오덕지고, 저울접시이니 백아강이다. 부소량은 지금의 하얼삔인 송화강아사달이며, 오덕지는 개평부 동북 칠십리에 있는 탕지보이며, 백아강은 지금의 북조선에 있는 평양이다.
삼한이란 하늘에 있는 삼신의 원리를 땅에 펼친 것을 뜻한다. 삼신三神이란 삼신일체상제님에 의하여 섭리되는 하늘과 땅과 사람의 지극함이니 그 모습을 나누어 보면 “천일天一, 지일地一, 태일太一”이다. 삼한三韓은 마한馬韓, 진한眞韓, 번한番韓이니, 마한은 천일, 번한은 지일, 진한은 태일의 정신을 각기 본받는다.
평양성 천도란 천지를 섭리하는 태일의 수도가 천일의 수도로 들어 온 것을 뜻한다. 이는 다시 말해 분열되었던 삼신이 간방에서 통일되기 시작한 것을 뜻한다.
더불어 번한조선의 기준이 도적 위만에게 패한 후, 그 상장 탁이 남쪽 마한 땅에 중마한中馬韓을 세웠으니, 이것은 또한 지일의 수도가 한반도에 들어오기 시작한 일대 사건이 된다. 이 때 상장 탁의 중마한은 삼한으로 이루어져 백제, 신라, 가야로 계승되었으니, 이 중마한이 곧 남삼한 성립의 초석이 된다.
그런 점에 있어 달리 생각해보면 지금 한민족사에 있어 남북한의 대치란 동북東北 간방艮方에서 각기 복잡다기한 역사적 통일 과정을 거친 삼남조선三南朝鮮과 세 북조선北朝鮮의 대결이라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마. 고대의 풍수전쟁
옛일을 더듬어 보면 상고시대 한민족사에 있어 가장 위험했던 전쟁은 한무제와 당태종과의 전쟁이다.
당대 천하 막강한 한문제가 쳐들어와 도적 위만의 손자 우거를 무너트리고 사군四郡을 설치하려 했을 때, 이를 막아내신 분은 후북부여의 시조 고두막한 단군이다. 이 때 북부여 5세 단군 고두막한은 한무제의 침략만을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옛날 위만이 강탈했던 옛 번한의 수도 번한성을 비롯하여 그 관경이었던 난 하이동의 땅을 모두 탈환한다.
그리고 그 뒤 약 700년 후 당태종이 다시 이곳으로 쳐들어 왔으니, 안시성安市城에서 상고시대 동아시아 최대의 혈전이 벌어지게 된다. 그 최대의 혈전이 벌어진 곳은 안시성이다.
안시성은 고려국본기에 “개평부 동북 칠십리”에 있었다고 하였으니 이곳이 곧 탕지보이며 번한성이고 오덕지다. 그러므로 안시성 전투란 한편으로 저울추를 지켜 낸 전쟁이었으니, 가히 풍수 전쟁이라 말할 수 있다.
이 때 당태종은 처참하게 패하여 쫓겨 돌아갔으니, 고구려국본기의 기록에 의하면 장안성에서 고구려 대막리지 연개소문에게 항복하고 산동, 산서, 하북, 강좌의 땅을 모두 내어 놓게 된다.
바. 고려의 남개성
저울추는 삼신의 추였으니 그 의미하는 바는 지일로서 땅이다. 결국 이 땅을 잃는다는 것은 한민족이 계속해서 영토를 잃는다는 것을 뜻한다. 한민족은 고구려가 망할 때 다시 이 땅을 잃게 된다. 그리고 이 곳 번한성에서 멀지 않은 서압록 일대 지금의 서요하를 지키던 대중장 장군이 개원을 지나 동모산에 이르러 대진국을 건국한 이래 이 땅을 잠시 되찾았었고, 안타깝게도 고려, 조선에 이르러서는 다시는 이 곳 번한성을 밟아보지 못하게 된다.
대진국의 멸망으로 잃었버린 삼신의 저울은 또 하나가 있다. 그것은 저울대이다. 대진국 애제 15대에 이르러 요나라에 의하여 멸망함으로써, 한민족은 아사달을 비롯한 백악산, 장당경, 서란, 졸본 등 거의 모든 옛 저울대를 잃어버리게 된다. 한민족이 지일의 저울추를 잃어버린데 이어 천일의 저울대를 잃어버린 대가는 너무도 엄청났다. 그 뒤 고려, 조선에 이르러 황제의 칭호와 연호를 내던져 버리고 중원 제국의 신하를 자처하였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이 발해 멸망 사건은 발해 왕족이 고려에 투항하게 되었음으로 북진한의 정통성이 고려에 넘어오게 된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때 천일의 저울대는 개성開城이 되니 남개성이며, 북개성인 장당경과 다른 곳이라 하겠다.
사. 삼일원리
신교의 삼일원리는 집일함삼執一含三, 일석삼극一析三極, 회삼귀일會三歸一의 세 논리가 있다. 모든 문명은 한 뿌리에서 나오는데, 그 이치는 집일함삼이다. 이 뿌리문명은 계속하여 발전하게 되는데, 그 이치는 일석삼극이다. 그리고 그 세계 문명이 발전의 궁극에 다다르면, 반드시 그 발전을 정지하고 수렴하게 되는데, 그 이치는 회삼귀일이다. 다시 수렴과정을 거쳐 통일을 완료한 모습은 집일함삼이다.
그러므로 현재 한반도로 모든 종교와 문물이 들어오고, 세계 4대 강국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힘을 겨루고 있음으로 지금은 회삼귀일의 과정이다.
다시 말해 세계 각 지역에 흩어져 각기 다른 환경 하에서 발전한 전 세계의 모든 문명이, 그 근본 뿌리를 찾아 돌아오는 때인 것이다. 그 근본 뿌리는 한민족의 조상인 태호 복희씨다.
마찬가지로 세계 초강대국들의 무력이 그 근본 뿌리를 찾아 한반도로 집중하고 있다. 그 근본 뿌리는 한민족의 황제인 치우천황이다.
아. 태극국의 황제
수의 원리로 보았을 때 20이란 수는 무극을 상징한다. 우주변화원리도에서 80생성도로 보면 10이 바로 무극이지만, 360생성도로 보면 체體와 용用이 각각 10으로 합하여 20이 되는 10토土가 바로 진정한 무극이 된다. 남평양으로 천도하신 분은 장수열제이며, 장수열제는 고구려 제20대 황제가 된다. 수는 20에 이르면 무화됨으로 실제적으로는 19에 이르러 최대 분열을 하고 수장收藏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러므로 무극無極은 정남방正南方을 궁궐로 삼아 분열을 중재하고 통일을 매개한다.
삼재三才란 천, 지, 인을 뜻한다. 하늘의 이치는 땅의 이치로 드러나고 사람에 의하여 집행된다. 그러므로 세계의 분열을 중재하여 통일을 매개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 하겠다. 뭇 황제들의 뿌리는 태극제다. 그러므로 이 때는 우리나라 태극국에서 태극제가 출현하는 때라 하겠다.
자. 평양의 별궁
고구려국본기에 “평양에 을밀대가 있는데 여러 대를 전하여 내려오기를 을밀선인이 세운 것이라고 한다.”, “평양 모란봉 중턱에 동천제 조천석이 있다.”는 기록은 현재의 평양이 방위상으로는 남평양이며, 시간적으로는 ‘후평양’임을 뜻한다.
단군조선 시대에 있어 처음 대단군의 이궁이 설치된 때는 제4세 오사구 단군 때의 일이다.
10월에 이궁을 모란봉 중턱에 지어 천왕이 순행 중에 머무를 곳으로 삼았다. 삼한관경본기 마한세가 상 오사구 단군 29년 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