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탄소연대 측정 결과 1만4,300년 전 제작 추정돼 초미의 관심
한국인 김희용씨 2006년 발견… 중국 국가문물국 공식발굴 의사 밝혀
제작 연대 사실로 확인되면 고대 문명사 완전히 뒤집는 '대발견' 될 듯
흑피옥은 말뜻 그대로 ‘검은 칠을 한 옥’을 의미한다. 주목할 것은 흑피옥이 단순히 옥에 검은 칠을 한 정도가 아니라 매우 정교하고 세련됐으며 어떤 상징을 나타내는 조각상이라는 점이다. 형상은 주로 사람이나 동물의 모습을 본뜬 것들이 많다.
김 씨가 그 동안 중국 현지의 골동품 중개업자 등으로부터 닥치는 대로 수집해 소장 중인 흑피옥은 수백여 점에 달한다. 크기는 작게는 수십cm의 소형 조각상에서 크게는 1m를 훌쩍 넘는 대형 조각상까지 매우 다양하다.
우란차푸 인근의 고대 분묘로 보이는 매장지를 파고 들어가 석실에서 발견한 흑피옥 조각상도 그가 수집해온 것과 거의 같았다. 주변 일대에는 또 다른 여러 기의 분묘가 눈에 띄었고 인근 산꼭대기에서는 신전의 흔적과 비슷한 터도 발견됐다. 그 순간 김 씨의 막연했던 신념은 고고학적 확신으로 굳어졌다.
더욱 놀라운 것은 흑피옥의 제작 연대다. 전남과학대 정건재 교수가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원에 흑피옥 1점의 시료를 채취해 탄소연대 측정을 의뢰한 결과, 흑피옥의 제작 연대가 지금으로부터 무려 1만4,300년 전쯤으로 추정된 것이다. 이는 구석기시대 후반에 해당되며 기존의 4대 고대문명보다 거의 1만 년 이상 앞서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정확한 사실로 확인된다면 기존의 인류 역사를 다시 써야 할 ‘대사건’이라는 게 정 교수의 시각이다. 그는 자신의 흑피옥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학술집에서 “한국의 단군조선, 중국의 신농, 복희 등 세계 각국과 민족들 사이에 전해져 오는 신화나 전설이 단지 인류의 허구적인 상상의 결과물이 아니라 머나먼 과거에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전대미문의 결정적 단서가 발견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또 흑피옥 조각상의 정교함으로 미뤄 1만4,300년 전 인류사회가 결코 미개하거나 야만적인 상태가 아니었으며, 상당한 정도의 문명사회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흑피옥 문화를 ‘초(超)고대 문명’ 또는 ‘제1차 인류문명’으로 규정하고 있다.
흑피옥에 관해서는 한국항공대 우실하 교수도 깊이 탐구를 진행해 왔다. 그에 따르면 중국에는 흑피옥 소장자가 꽤 많다. 이들 민간 소장자들은 흑피옥이 ‘홍산문화’(紅山文化ㆍ상자기사 참조) 유적지에서 출토되는 ‘흑피옥?아닌 옥기(玉器)’들과 모양이 비슷하거나 똑같아 흑피옥을 홍산문화의 유물로 봐왔다.
반면 학자들은 흑피옥이 후대에 홍산문화를 모방해 만든 가짜라는 입장이 많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유적지에서 공식 발굴된 적이 없고
▲흑피옥 조각상이 너무나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홍산문화 유적지에서 발굴되는 것보다 오히려 더 발달된 단계의 옥기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 교수는 보다 엄밀하고 과학적인 연대측정을 통해 실제 흑피옥의 제작 시기가 1만4,300년 전으로 판명되면 “어마어마한 파장을 낳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흑피옥 출토지에서 발견된 인골을 분석하면 연대측정은 보다 정확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흑피옥을 둘러싼 뜨거운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발굴조사 작업이 내년 초쯤 시작될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김희용 씨는 흑피옥 출토지 발견 이후 중국 당국에 자신이 소장한 흑피옥 전부를 기증하는 대신 한국과 세계 각국 학자들을 포함시킨 조사단의 공식발굴을 제안한 바 있는데, 최근 중국 국가문물국이 현장조사 의지를 담은 공문을 보내온 것이다.
이 같은 중국 당국의 반응에 대해 정 교수는 “흑피옥 규명과 관련한 대단한 진전이며, 중국에서 국가가 직접 움직인다는 것은 인류사 대발견이라는 나름의 확신이 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 교수 역시 “내년 3~4월께 세계 각국 연구자들이 흑피옥 출토지에 집결할 텐데, 현장 발굴 자체가 세계적 특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연 흑피옥은 기존 인류사의 지식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새로운 장을 쓰는 획기적 발견으로 이어질 것인가, 아니면 엄청난 해프닝으로 끝날 것인가. 그 해답을 내놓을 카운트다운이 이제 시작됐다.
■ 흑피옥 발견자 김희용 씨
"한국인으로서 세계적 발견한 게 자부심"
김희용 씨는 현재 중국 베이징에 체류 중이다. 그는 흑피옥에 ‘미친’ 이후 거의 중국에서 살다시피 해왔다. 지금도 내년 봄 개시될 공식발굴 작업을 앞두고 현지 관계자들과 의견조율 작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김 씨는 흑피옥의 비밀을 풀기 위해 거의 전 재산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내가 돈 때문에 이런 일을 하겠는가. 단지 미지에 대한 도전 욕구 때문에 지금까지 온 것”이라고 말할 만큼 태연하다.
하지만 지난 17년의 여정은 ‘고독한 전쟁’이나 마찬가지였다. 고고학자나 역사학자들은 흑피옥을 잘 알지 못해 외면하기 일쑤였다. 워낙 자주 중국을 드나들다 보니 국정원 요원에게 조사를 받는 황당한 일도 있었단다.
이제는 그 동안의 고생을 보상 받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다소 흥분돼 있다. 그가 가장 뿌듯하게 생각하는 것은 “한국인으로서 인류사를 새로 쓸 수도 있는 세계적 발견을 했다”는 점이다. 그 자부심 덕에 사는 게 재미있다고도 한다.
혹여 흑피옥 출토지 발굴조사 결과가 기대와 다르게 나오면 어떡할까. 하지만 그는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내가 큰소리 치는 이유가 있다. 직접 현장을 파헤쳐 흑피옥 조각상 30여 점을 발굴한 데다 인골도 발견했다. 확신이 없고서야 남들이 말하듯이 ‘미친 짓’을 하겠는가.”
사재를 털어 애써 모은 흑피옥을 중국 당국에 기증하려는 것은 “찾고 보니 내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에 중국에 반환하는 것”이라고 이유를 말했다.
그는 서울 인사동에서 화랑을 운영한 적도 있지만 이후로는 유물 수집에 전념했다. “그럼, 직업이 유물 수집가인가”라고 물으니 “그저 유랑객이라고 써달라”고 답변한다. 그 낙천성 속에서 전설 같은 흑피옥을 찾아 다닐 수 있었던 이유를 알 듯도 하다.
■ '홍산문화'는 우리 것인가, 중국 것인가
흑피옥은 한두 점 정도 가진 소장자를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을 만큼 중국에서는 흔한 유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동안 고고학적 발굴조사가 이뤄진 적은 없다. 다만 홍산문화(紅山文化) 옥기(玉器) 유물의 일종으로 여겨져 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홍산문화는 만주 일대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문화로 1955년 동명의 이름이 붙여졌다.
세계 4대 문명의 하나인 황하문명보다 앞선 BC 3,500년경까지 존속한 것으로 추정되는 홍산문화는 청동기시대에 이르러 출현한 분업적 사회구조의 국가형태를 이미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큰 주목을 받았다.
국내 학계에서는 한반도 일대에서 발견되는 적석묘 형태의 분묘라든지 곰의 형상을 띤 가면과 옥 장식 유물 등이 홍산문화 유적지에서 다수 발견된 점을 주목해 단군조선의 뿌리와 연결시키기도 한다.
반면 현재 중국 국경 내의 모든 민족 역사를 중국의 것으로 만들려는 중국 학자들은 홍산문화를 요하(遼河)문명에 포함시키고 있다. 요하지역은 우리 선조들의 오랜 활동 무대였기 때문에 양국 학자들의 논리싸움이 치열하다.
중국은 지금 국가 전략 차원에서 요하문명을 이집트 문명이나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훨씬 앞선 중화문명의 발상지로 삼으려 하고 있다. 요하문명은 기존 4대 문명보다 최대 4,000년 앞선 BC 7,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