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추석, 귀향 그리고 코스모스 / 배병삼태고 적에는 사계절이 아니라 ‘두 계절’만 있었다고 한다. 요즘 학생들에게 한 해를 대표하는 두 철을 꼽으라면 대부분 여름과 겨울을 든다. 이때에 방학이 있기 때문이리라. 하나 옛사람들에게는 봄과 가을이었다. 춘추(春秋)라는 말 속에 그 뜻이 잘 들어 있다. 공자가 지었다는 역사서 <춘추>가 세월의 대명사인 데서 그러하고, 또 어르신들 나이를 물을 때 “춘추가 어떻게 되시냐”고 여쭙는 오늘날 말투에도 그런 흔적이 남아 있다. 봄가을이 한해의 대명사였던 까닭은 농경과 관련된다. 봄은 씨를 뿌리는 때요, 가을은 거둬들이는 철인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사는 문제가 절실했기 때문이리라. 이 가을로 접어드는 큰 명절이 추석이다. 한데 음력 팔월 보름을 명절로 삼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중국에선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일본에서는 명절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신라 유리왕 때부터 즐겼던 것이 기록으로 남아 있으니(<삼국사기>), 추석이야말로 이 땅 고유의 풍속으로 여겨도 좋을 것이다. 하나 추석이 추수감사절은 아니다. 도리어 본격적인 가을걷이는 추석을 지난 다음부터다. 한여름 뜨거운 햇살에 잘 자란 오곡백과가 끝까지 잘 무르익기를 바라는 기원의 명절이 추석이다. 채 익지 않은 햇곡식을 거둬 조상께 먼저 올리고, 집터 귀신인 성주님과 부엌귀신인 조왕신에게 인사드리는 것도 수확기를 앞두고 재액이 일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깃든 풍속인 것이다. 곧 태풍 철이 기다리고 있고, 또 때이른 서리가 다 지은 작물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추석이 내일모레다. 이즈음 고향 길을 연상하면 떠오르는 풍정이 빨간 고추잠자리, 황금색으로 일렁거리는 들판, 쨍하니 파란 하늘, 그리고 국도변과 시골길가에 핀 코스모스 군락이다. 본시 이 땅의 가을을 대표하는 꽃은 국화였는데 언젠가부터 코스모스로 바뀌었다. 70년대 이후 귀향길의 설렘을 잘 표현하기로는 나훈아가 불렀던 ‘고향역’만한 것이 없는 듯한데, 거기서도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역”으로 노랫말을 시작한다. 코스모스는 서로 다른 각색의 꽃들이 한데 어울릴 때라야 제대로 된 맛이 난다. 한 송이로는 고작 가냘프고 연약한 들꽃에 지나지 않는다. 가끔 유전자 조작을 한 것인지 노랑꽃만으로 이뤄진 일색의 코스모스를 길가에서 보곤 하는데, 그건 전혀 코스모스답지가 않다. 도리어 빨간 것은 검붉을 만큼 빨갛고, 노란 것은 밀감껍질처럼 짙게 노랗고, 하얀 것은 파스텔이 묻어날 것같이 하얄 때, 그리고 그 선명한 색깔들이 잘 섞여 있을 적에야 코스모스답다. 아, 그렇다면 알 것 같기도 하다. ‘조화·질서’를 뜻하는 희랍어 코스모스(kosmos)를 제 이름으로 얻은 것도 각색의 꽃들이 어울려 빚어내는 아름다움 때문이지 싶다. 서로 다른 색깔들의 어울림 속에 그 꽃다움이 있는 것이다. 농경이 무너지니 추석도 옛날 같지가 않다. 돌아갈 고향인 시골도 늙은 어미의 젖가슴처럼 바짝 말랐다. 추석은 백화점의 선전판 속에서나 요란하고, 서로 나누던 정은 상품권 속으로 숨어들었다. 추석이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다. 껍질(형식)이 속살(현실적 삶)과 유리되어 그 틈이 커지면 질곡으로 변하는 법이다. 허나 수천 년을 이어온 전통을 또 어찌 내다버리랴. 추석이란 넉넉한 날이기보다 넉넉하기를 기원하는 날임을, 모자란 중에도 서로 나눠 먹는 날임은 잊지 말 일이다. 잘살고 못살고를 떠나 사람 그 자체를 중히 여기고 대접하는 날이 추석임은 계속 이어갈 일이다. 코스모스가 추석 즈음에 한창인 것도 우연치 않은 일이다.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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