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민열 / 증산도사상연구회 서울지회 / LG연구소 상임연구위원 증산 상제님의 도는 무극대도(無極大道)입니다.
무엇 하나 포용하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무엇 하나 거스르는 것도 없습니다. 해와 달의 운행처럼, 우리 생활의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아주 큰 것까지
모두에게 적용 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물고기가 물에서 자유스럽게 놀지만 물이 자신을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듯이,
우리가 호흡을 통해 우주 자연과 함께 생명을 영위하지만 그 호흡을 가능하게 하는
공기의 존재를 잘 모릅니다.
상제님의 도는 항상 우리 곁에서 우리의 생명이 천지자연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지만
우리는 그 고마움을 잘 모릅니다.
우리의 지각문과 우리의 오감과 육감을 모두 열고,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 수만 있다면
항상 우리들이 천지의 주재자이신 상제님의 은혜 속에 살고 있음을, 자연과 우주가 함께 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증산도의 도통세계, 조화造化 ≪≪≪≪≪≪≪≪≪≪≪≪≪≪≪ 안경전 종정님께서는 증산도의 도(道)의 경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핵심 말씀을 내려 주셨습니다.
“도전을 보면 조화(造化)라는 말이 천지조화, 신명조화, 도통조화, 풍운조화 해서 몇 군데 나온다.” “우리 상제님의 도의 정체, 우리 증산도의 도의 경지, 도통세계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조화사상이다. 증산도에는 조화사상이 있다.
이것은 불교에도 없고, 기독교에도 없고, 유교에도 없고, 이슬람교, 어디에도 없다.
우리 상제님 도의 세계에만 있는 것이다” “상제님의 도통세계, 우리 증산도가 지향하는 세계가 조화선경(造化仙境)이다.
그리고 우리 상제님을 조화주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월간개벽』 2003년 9월) 조화造化의 문자적 의미 ≪≪≪≪≪≪≪≪≪≪≪≪≪≪≪ 『우주변화의 원리』에는 ‘변화’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변화의 작용이라고 하는 것은 천지의 작용인데 천기天氣의 작용은 상象을 나타내고 지기地氣의
작용은 형形을 만드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칠요七曜를 우리가 하늘에 있다고 인식하는 것은 곧 허공에 있는 것을 말함이요,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오행五行이 땅에 있다고 인식하는 것은
오행소속지물五行所屬之物을 전부 땅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虛 라는 것은 다만 하늘에 응하는 정기인 칠요를 달아놓은 것이요,
지地라는 것은 다만 생성하는 형질을 만들고 있는 것뿐이다.” (『우주변화의 원리』 138쪽)
이상의 내용에서 변화의 의미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곧 천지天地의 작용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경전 종정님께서는 조화造化를 다음과 같이 정의해 주셨습니다.
“조화(造化)란 변화를 자유자재로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지을 조造자에 변화할 화化자, 변화를 짓는다, 변화를 일으킨다, 변화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영어 『도전』에서는 creating change라고 했는데, 이것이 조화다.”(『월간개벽』 2003년 9월호)
천지 변화란 음양 법칙의 바탕 위에서 일어납니다.
따라서 조화란 우주변화 원리의 근본인 음양(陰陽)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화란 우주가 돌아가는 가장 근원적인 기본 원칙인 음양의 법칙과 하나가 되고,
그 이치 위에 우뚝 서 있을 때에만 비로소 무궁한 조화세계가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조화란 변화를 자유자재로 일으키는 것이며,
이는 곧 천지 변화를 자유자재로 일으키는 것을 말합니다. 증산 상제님은 조화주 하느님 ≪≪≪≪≪≪≪≪≪≪≪≪≪≪≪ 상제님의 조화세계를 알려면 먼저 증산 상제님이 누구이신가에 대하여 철저하게 알고 있어야 됩니다. 상제님의 다음 말씀을 통해서 상제님이 누구이신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나는 생장염장(生長斂藏) 사의(四義)를 쓰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해와 달이 나의 명(命)을 받들어 운행하나니 하늘이 이치(理致)를 벗어나면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느니라. (道典 2:20:1∼3)
● 나는 천지일월(天地日月)이니라. (道典 4:111:14) 이 말씀을 통해서 보면 상제님은 본래부터 있는 우주의 근본 법칙, 천지의 자존원리와 더불어
존재하며, 그 속에 내재된 우주의 창조 목적이 달성될 수 있도록 우주의 이법을 주재하시는
주재자 하나님, 곧 우주 질서인 리(理)를 맡아 다스려 우주의 이상을 완성하시는
통치자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생장염장, 하늘의 이치, 해와 달의 차고 기우는 자연의 이치속에서
상제님은 우주 변화의 근본 원리 속에 존재하시며, 그 이치와 더불어 동정어묵을 같이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천지일월이니라”는 말씀에서
상제님은 천지일월로 무극대도를 펼치시고 있음도 알 수 있습니다.
초목과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이 그 생명현상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하늘과 땅과 해와 달이 운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지와 일월은 체(體)와 용(用)의 관계로서 존재합니다. 서로 음양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천지일월을 다른 말로 건곤감리(乾坤坎離)라고 부릅니다.
건곤감리는 8괘의 모체입니다. 8괘의 근원처는 태극입니다. 태극은 음양으로 존재합니다.
『우주변화의 원리』 저자인 한동석 선생도
이 우주 변화의 근본 법칙은 바로 음양 오행의 법칙이라고 결론을 맺었듯이
“나는 천지일월이니라”라고 하신 말씀에서
상제님은 실제로 이 우주 변화의 가장 근본 법칙인 음양 변화 법칙의 주재자이심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습니다.
상제님이 곧 천지이치이시며 우주의 질서이시며 천지일월이심을 알고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생활하는 순간 순간이 모두 상제님의 품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산천초목, 하늘, 바람, 새, 그리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미물 곤충이라도
모두 상제님의 무극대도 안에서 함께 숨쉬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와 그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 그리고 우리의 눈에 보이는
하늘을 포함한 우주 모두는 곧 상제님의 무궁한 조화 덩어리입니다. 천지일월을 마음대로 하시는 상제님의 조화권능 ≪≪≪≪≪≪≪ 해를 멈추게 하신 조화 권능 ● 구릿골 약방에 계실 때, 하루는 아침 일찍 해가 앞 [제비산] 봉우리에 반쯤 떠오르거늘,
상제님께서 여러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러한 난국에 처하여 정세(靖世)의 뜻을 품은 자는
능히 가는 해를 멈추게 할 만한 권능을 가지지 못하면 불가할지니, 내 이제 시험하여 보리라.”
하시고 축인 담배 세 대를 갈아 피우시니 해가 산꼭대기에서 솟아오르지 못하다가,
상제님께서 담뱃대를 떼어 땅에 터시니 눈 깜짝할 사이에 수장(數丈)을 솟아오르더라.
(道典 2:121:1∼5)
안경전 종정님께서는 상제님께서 해와 달의 운행을 마음대로 명령하시는 것에 대하여
“내가 천지일월 위에 있다. 천지일월을 자유자재로 한다.”는 의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지일월과 함께 하시지 못하면 보여줄 수 없는, 해와 달의 운행을 마음대로 조정하시는 모습을
통해 상제님께서는 진정한 우주의 주재자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한 가정의 일을 볼 때 주인만이 모든 대소사의 결정과 운행을 마음대로 할 수 있듯이,
이 천지의 주인이신 상제님이기 때문에 해와 달을 마음대로 운행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밖에 도전에 보이는 상제님의 조화세계 ≪≪≪≪≪≪≪ 비를 멈추게 하심 ● 큰비를 그치게 하실 때는 말씀으로도 하시고, 담뱃대나 술잔을 두르기도 하시며,
혹 성도들에게 명하여 화로의 불덩이를 문밖에 던지게도 하시니라. (道典 4:139:2) 날씨와 기후를 마음대로 하심 ● 덕찬이 아들의 혼사를 치르려 하매 여러 사람이 물품과 돈으로 부조(扶助)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조할 것이 없으니 날씨로나 부조하리라.” 하시니
이 즈음 연일 날씨가 험악하여 매우 염려하였는데 혼인날에 이르러서는 뜻밖에 온화하여지니라. (道典 3:281:1∼3) 천둥과 번개를 마음대로 하심 ● 이에 읍리가 크게 놀라 사색이 되어 상제님의 등 뒤로 와서 살려 달라고 애걸하거늘
상제님께서 물리치시며 말씀하시기를 “모진 놈 곁에 있다가 애매한 사람 벼락 맞겠다.” 하시니
천둥과 번개가 더욱 심하여지매 읍리는 거의 죽을 지경이 되니라.
그제야 상제님께서 손을 드시며 “그만 하라.” 하시니 천둥과 번개가 바로 멈추니라.
(道典 4:135:4∼7) 화기를 옮겨 불길을 거두심 ● 6월에 형렬을 데리고 태인 신배(新培)에 있는 김 모의 집에 가실 때 그 마을의 어떤 집에
불이 났는데 모진 바람을 타고 기세가 크게 일어나거늘 상제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며
“저 불을 그대로 두면 이 바람에 온 마을이 재가 되리니 맞불을 놓아 끄리라.” 하시고
형렬에게 명하시어 섶으로 불을 피우게 하시니 곧 바람이 자고 불기가 쇠하여지니라.
이에 형렬이 여쭈기를
“이곳에 섶을 쌓아 놓고 불을 붙였는데 저 집의 불이 꺼지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화기(火氣)를 옮겼기 때문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4:41:1∼6) 산운(山運)을 옮겨 놓으심 ● 하루는 공사를 행하실 때 “백두산의 기운을 뽑아 제주 한라산(漢拏山)에 옮기고,
덕유산에 뭉쳐 있는 기운을 뽑아서 광주 무등산(無等山)으로 옮기고, 금강산의 기운을 뽑아
영암 월출산(月出山)으로 옮긴다.” 하시니 한 성도가 그 이유를 여쭈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백두산에 천지(天池)가 있고 한라산에도 못이 있으며,
금강산이 일만 이천 봉이요 월출산도 일만 이천의 기운이 있음이로다.” 하시니라. (道典 4:42:1∼2) 바닷물 위로 걸어 다니며 공사 보심 ● 하루는 바닷가로 나가시니 해녀들이 물질을 하러 오거늘, 상제님께서 한 사람에게 다가가시어
“어깨에 두른 것은 무엇이고, 배에 차는 것은 어째서 차는가?” 하고 물으시니,
“배에 차는 놈은 물에 가라앉으라고 차는 것이고, 어깨에 맨 놈은 제가 어디에 있다고
사람들한테 알리는 것입니다.” 하니라.
상제님께서 “나는 그런 것 안 하고 저 물속에 그냥 들어간다, 봐라!” 하시며
마치 땅 위를 걷듯이 바닷물 위를 활개치며 다니시니, 모두 크게 놀라며
“아, 우리는 죽을까 봐 등에 두름박을 차고 들어가는데 저 어른은 어찌 버선발로 들어가도
안 젖을까? 대체 저 어른이 귀신인지 사람인지 모르겠네.” 하며 수군거리니라. (道典 5:29:1∼6) 물도 되고 불도 되어 공사 보심 ● 강경 강가에서 호둔(虎遁)하시고 큰 불덩이가 되어 공사 보심 (道典 3:101)
● 잠시 후 호랑이는 금세 어디로 가고, 강물 가운데에 큰 불덩이가 동이처럼 솟아
강물이 마치 밥이 끓어 넘치는 것처럼 버글버글 끓으니… (道典 3:101:6) 글을 맺으며… 이상 간단하게나마 상제님의 조화권능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외에도 『도전』을 보면 상제님께서 병자를 고쳐주시고 죽은 자를 살려주시는
조화법을 쓰신 횟수는 부지기수이며, 그 방법 또한 너무도 다양합니다.
뒷산에 있는 조그만 암자의 절간 종을 세 번 치시게 하시어 죽을 운명의 아이를 살려주신
상제님의 조화를 보면 절대 조화권능으로 “살아라” 하고 기적적으로 살리시는 것이 아니라,
꼭 크고 적고 간에 정성을 들이게 하시어 상제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정도에 따라
조화를 열어 주십니다.
절간 종을 세 번 친다고 죽을 아이가 어떻게 살수 있겠습니까 만은
그 부인은 상제님의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그대로 행동하여 며칠 후 아이는 살게 됩니다.
앉은뱅이를 고쳐주실 때에도 앉은뱅이로 하여금 마당에서 빨리 달리게 하시고,
회초리로 다리를 때려 빨리 걷게 하시어 고쳐주시기도 하시고, 물을 떠 오라 시키시어
고쳐 주시기도 합니다.
앉은뱅이보고 달리라고 하고 심부름을 시키니, 앉은뱅이는 어떠한 생각을 하였을까요?
하지만 믿고 그대로 행하여서 다리를 고치게 됩니다. 상제님의 동정어묵 곧 모든 말씀과 행동이 병든 인간, 병든 세상, 병든 천지를 뜯어고치는
치병의 법방인 것입니다.
이제 안경전 종정님의 다음 말씀으로 이 글을 매듭짓겠습니다. “증산 상제님의 조화권은 상상할 수가 없다.
동서의 종교 문화권에서 들어본 어떤 조화와도 비교할 수 없다.
어린 호연이 보니까, 구릿골 약방 안에서 상제님 옥체가 없어지고 금방 불이 되어 계신다.
그러다 금방 또 물이 되시어 방이 강으로 변한다.
참, 상상을 못한다.
아, 태양 크기가 지구의 몇 배인가?
그런데 상제님께서 담뱃대를 툭툭 터시면 해가 가다가 멈추잖는가.
그러다 다시 터시면 쑥 올라가고 말이다.
상제님은 “해와 달도 나의 명을 받아 이루어진다.”고 하셨다.
아, 상제님 성도들이 전부 바보인가?
그분들은 우리보다도 더한 격동의 세월을 살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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