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역사의 진리 해법을 내려주신 상제님 남현수(31세) / 용인 신갈도장 / 도기 139년 3월 22일 입도 진리의 빛, 증산도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헌법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헌법학도 남현수입니다. 제가 처음 증산도를 알게 된 것은 1998년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저는‘나는 누구인가?’그리고‘삶의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명제에 관한 깊은 고뇌의 진흙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하는 진주를 찾기 위하여 떠도는 청소년기 무렵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때 때맞추어 다가온 것이 증산도였습니다. 고등학교 선배인 증산도인으로부터『개벽 다이제스트』와 증산도 관련 책자들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렇게 다가온 증산도는 제게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생장염장으로 운행되는 우주 1년의 원리와, 선천에서 후천으로 넘어가야 하는 인간열매에 대한 원리 등, 인간의 존재 규명과 인생의 목적에 대한 깊은 갈구심을 해결하지 못하여 방황하던 제게 이처럼 감동적이고 희망적인 말씀은 처음이었습니다. 한국의 국통에 관심을 갖다 그 후 저는 법학과로 진학하였습니다. 법학도로서 유달리 헌법에 매력을 느껴 대학생활 4년 동안 헌법 공부에만 전념했습니다. 헌법에 대한 저의 열정은 헌법학 석사과정으로 이어졌습니다. 헌법학 석사과정에 진학하여 저는 새로이 홍익인간 이념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헌법이란 국가의 정체성을 찾고, 국통을 바로잡아 올바른 국가의 이상 내지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을 하나의 중요한 목적으로 삼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삶의 목적에 관심을 갖고“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듯, 한 국가도“조국의 정통성(국통)은 무엇인가?”라는 존재 확인에 관한 의문을 포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가의 존재를 확인하려면, 한국인이 공유하고 있는 공동의 꿈과 이상에 대한 확인, 또 한국인이 갖고 있는 원칙과 삶의 목표에 대한 확인절차를 밟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역사를 거슬러 고찰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그 여정에서 발견 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홍익인간주의(弘益人間主義)였습니다. 이 이념이야말로 한국인이 소유하고 결의해왔던, 한국이라는 집단적 삶의 목표이자 이상이요 원칙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한의 건국이념, 홍익인간 한국인은 홍익인간 이념에 입각하여 집단의 역사와 공동체를 시작하였고, 이 이념을 개개인의 삶의 원리로 삼았던 사람들입니다. 사료『환단고기』에 의하면,“ 옛날 환인은 아들 환웅이 인간 세상에 뜻을 두고 홍익인간 할 만한 땅을 가려 환웅을 내려보내 신시를 세우고 다스리게 하였으며, 후에 환웅의 아들 단군이 조선을 세워 동방의 시조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홍익인간 이념은 환인께서 지상 세계를 열면서 고려했던 조건이자 목적이었습니다. 홍익인간 이념은 광복 후 대한민국 정부수립 당시 우리의 교육이념으로 계승되었으며, 지금까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자 국통으로 천명되고 있습니다. 이는 현재 우리 헌법이 추구해야만 하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입니다. 따라서 한국의 정통성이 홍익인간이라는 건국이념에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그 후로도 이런 확신을 굳히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그것은 경복궁 역 메트로미술관에서였습니다. 그 때는 석사과정 중 제가 참 힘들었던 시기입니다. 무료 전시회를 관람하던 어느 날, 위기가 기회로 전환되는 계기가 주어졌습니다. 환국과 배달국 및 단군조선시대를 소재로 한 만몽 김산호 선생의 무료 사화(史畵) 전시회에서였습니다. 전시회의 소재가 저의 주된 관심 분야였기에 꽤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메모를 해 가며 관람을 하고 있었습니다. 만몽 선생님이 직접 저를 데스크로 안내하여 환국에서 시작되는 우리나라 역사의 참모습에 대해 한 시간 정도 사담(史談)을 들려 주었습니다. 이 만남을 뒤로 하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제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진리에 대한 정열의 씨앗이 다시 싹을 틔우기 시작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다시 열정을 되찾아 연구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야 깨닫는 바이지만, 당시 나태함에 빠져있던 제게 다시 의지를 불어넣어 주려는 조상 선령신의 인도였다고 믿습니다. 각종 제도상의 모순을 넘어서는 깨달음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정체성 내지 국통에 대한 의문은 해결되었다고 치자. 이와는 별도로 인간 세상의 제도적인 모순에서 비롯되는 수많은 의문점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많은 제도들이 인간존중이라는 미명하에 인간경시를 초래하고, 평등을 주창하는 각종 사상(思想) 내지 주의(主義)는 인간을 더욱 불평등하게 만들고 있다는 모순점을 저는 가슴으로 느꼈습니다. 또 인간이 만든 제도로써 인간의 존엄성 존중이라는 헌법학의 최고 정신을 구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점을 통감하고 한탄하였습니다. 가령 인간이 만든 대표적인 제도 내지 이념인 민주주의는 서로 존중받기를 바라는 인간의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에 나를 먼저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배척할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는 것이고, 또 공산주의는 공산당원의 허가 없이는 타인을 먼저 존중한다는 것에 한계가 있기에 헌법의 최고 정신인 인간에 대한 존중이라는 가치가 구현되는 데 많은 모순이 내재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의 결론에 도달하는 순간, 저는 다시 한번 시원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민주주의나 공산주의의 제도적인 모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이념 역시 먼저 남을 잘되게 한다는 홍익인간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내린 결론과 같았습니다. 역사관의 궁극적 관점을 체득하다 여러 의문에 대한 갈구열(渴求熱)로 보내고 있던 즈음, 문득 제 머릿속에 증산도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저의 방황이, 과거 청소년기에 저의 존재와 삶의 목적에 대한 갈구증을 해결하지 못하여 방황했던 시절과 본질상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때 증산도가 상당히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 주었던 것을 기억해 냈습니다. 그래서 증산도 관련 서적과 인터넷 카페 및 각종 자료들을 바탕으로 증산도의 진리를 탐구해 가는 수순을 밟게 되었습니다. 한편, 그 즈음 국가 산하기관의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하다가 연구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는데, 직종의 특성상 자유로이 시간 안배를 할 수 있었고 자료 검색 및 수집을 위한 접근성에 있어서도 유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고맙게도 증산도의 진리를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마련되었던 것입니다. 이 덕분에 높은 연구가치를 지닌 사료인 『환단고기』(桓檀古記)를 비롯해 각종 사료는 물론, 증산도 관련서적『도전』,『 증산도의 진리』,『 이것이 개벽이다』등을 구입해 읽었습니다. 또 계속하여 인터넷 서핑 등을 이용, 자료를 탐구해 나갔습니다. 저는 결국 그 과정에서 증산도에서 밝히고 있는 것이 바로 올바른 우리 고유(固有)의 역사적 진실이요, 우리 고래(古來)의 전통사상(傳統思想)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인간이 인간을 위하여 만든 각 제도들이 인간의 존엄성 실현이라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인간경시를 초래하고 국가간의 이념 대립과 그로 인한 전쟁을 촉발시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끝없는 궁금증도 상제님의 한 마디 말씀으로 깨끗이 해소시킬 수 있었습니다. “선천은 상극의 운이라.”(도전 2:17:1) 제가 그 동안 풀지 못했던 인간 제도의 내재적 모순점 및 비운의 인간 역사에 대한 궁금증을 상제님께서 이 한 마디 말씀으로 간단히 정리해 주셨습니다! 선천의 역사는 “내가 잘 되기 위해서는 남을 이겨야 하는 상극의 역사”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제도와 인사(人事)에 모순과 대립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내가 잘 되기 위해서 먼저 남을 잘 되게 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것이 상제님의 후천의 원리인‘상생의 섭리’임을 알았습니다. 저로서는,‘ 상생’이념이 우리 민족 고유의‘홍익인간’이념과 상통할 뿐만 아니라 더욱 적극적으로 인간의 생명을 해원시켜 마침내 구원해내는 완결판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기뻤습니다. 역사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란 인간이 홀로 주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과 인간의 작용으로 둥글어간다는 상제님 진리를 알게 되면서, 적지 않은 충격과 동시에 인식의 지평이 넓어져 뻥 뚫리는 듯한 기분 좋은 선풍(鮮風)을 느꼈던 것입니다. Interview - 남현수 마침내 길을 찾았습니다 Q입문은언제하셨나요?직접도장을찾아가셨나요? A 위에서 말한 과정을 거치면서 증산도와 확실히 인연을 맺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증산도 진리를 계속 공부하려면 직접 도장을 방문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다 하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 와중에, 우연찮게 김종평 수호사님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수호사님은 제가 탐구 과정에서 품고 있던 적지않은 의문점 및 궁금증들을 온라인(On-line) 또는 오프라인(Off-line)으로 상당부분 해소시켜 주었습니다. 또한 제가 신갈도장에 방문하도록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증산도의 기본 소양을 가르쳐 주신 신갈도장의 이재만 포정님과 소중한 연을 맺었습니다. 이렇게 저의 열정과 그분들의 도움이 결합하여 2009년 2월에 드디어 증산도에 입문을 하였습니다. Q입도하기까지어떤공부를하셨습니까? A 증산도의 진리 및 성도님들과 인연을 맺은 저는, 그런 고마운 도움들로 인해 도리와 진리를 공부하였습니다. 그리고 입문 한달 후인 2009년 3월 입도하여 정식 증산도인이 되었어요. 지금도『도전』을 비롯한『이것이 개벽이다』『개벽 실제상황』『증산도의 진리』『이제는 개벽이다』등의 진리서적들을 반복해 읽으면서 도생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Q도생이된것은어떤인연이주효했을까요? A 지금 돌이켜 보면 제가 증산도와 인연을 맺게 된 여러 계기들이 있었어요. 예컨대 체육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선배가 증산도를 전해주었던 것, 또 체육인에서 법학도로 전속(轉屬)하게 된 것, 헌법학에 매력을 느껴 헌법을 전공으로 선택했던 것, 헌법학자의 사명으로 요구되는 국가 정체성의 확인 작업 때문에 수행했던 역사와 철학 및 사상에 대한 연구, 게다가 우리 역사 탐구과정에서 맺게 된 인적(人的) 인연과 증산도 진리와의 인연 등. 이 모든 사건들은 개별적으로 일어났던 일들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걸어온 탐구의 도정(道程)에서 조상님의 음덕과 인도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또 상호유기적으로 일어났던 일들임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Q도생으로서다짐을말씀해주세요 A 저는 지금 대학원 헌법학 박사과정을 걷고 있습니다. 박사과정의 학업과 별도로, 국가시험을 같이 병행하느라 당분간은 경제적 및 시간적으로 여유롭다고 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마음으로 증산도의 성업(聖業)과 개인적인 사업(私業)에서 모두 최선을 다하는 참 증산도인이 되고자 합니다. 인간을 위하여 이 땅에 내려오신 상제님과 태모님을 일심으로 섬기는 참 신앙인이 되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증산도 본부, 월간개벽 2009.06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