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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증산도 도전8:35
증산도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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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공자·기자·백이·숙제 모두 동이족의 후예

이젠 미스터리의 세계다.

29년 전 폭풍을 일으켰던, 그렇지만 지금도 미해결로 남아있는 고대사, 즉 기자와 기자조선, 고죽국, 그리고 고조선의 세계로 빠져들자.

랴오닝성 카줘 베이둥에서 확인된 방정(方鼎·사각형 솥). 이 방정의 바닥에 ‘기후(箕侯)’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기자와 기자조선의 흔적을 짐작할 수 명문이다. 지금 선양 랴오닝성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선양 | 김문석기자>

1973년 랴오닝(遼寧)성 카줘(喀左)현 베이둥(北洞) 구산(孤山)에서 확인된 ‘기후(箕侯)’명, ‘고죽(孤竹)’명 청동기부터 이야기 하련다.

“임시로 집어넣은 교장갱에서 발견된 청동기들을 보면 이상한 점이 있었어요. 두 곳 다 청동기 6점이 질서정연한 세트를 이루고 있잖아요. 또 발견 지점이 다링허(大凌河)와 그 지류가 서로 만나는 지점의 구릉 위였어요. 이것이 주는 의미는 매우 큽니다.”(이형구 교수)

그것은 이 교장갱이 모종의 특수 목적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즉, 지배층이 하늘신 혹은 조상신에게 제사 같은 의례를 행하고 매장한 예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천도시야비야

제사? 제사라면 바로 동이족의 유별난 풍습이다. 적어도 훙산문화(홍산문화·紅山文化·BC 4500~BC 3000년) 때부터 제정일치 사회를 열었던 발해문명의 창조자들. “동이족(東夷族)은 군자의 나라요, 불사의 나라(후한서 동이열전)”가 아니었던가.

더욱 흥미로운 대목이 있으니 바로 은(상)의 왕족인 기자(箕子)와 고죽국의 왕족인 백이(伯夷)·숙제(叔齊)이다. 이 세 사람은 공자에 버금가는 군자이다. 공자·기자·백이·숙제 모두 군자의 나라, 불사의 나라인 동이의 후예들이라는 게 재미있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孤竹國)의 왕자들이었다. 왕위를 서로 양보한 두 형제는 북해지빈(北海之濱), 즉 지금의 발해연안을 떠돌았다. 그러다 주나라 문왕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주나라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미 문왕은 죽은 뒤였다. 뒤를 이은 무왕은 은(상)의 주왕 정벌에 나설 참이었다. 백이·숙제가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간했다.

“아버지 장례도 치르지 않고 전쟁을 일으키니 어찌 효(孝)라 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려 하다니 어찌 인(仁)이라 할 수 있습니까.”

백이·숙제는 끝내 수양산(首陽山)에서 고사리를 먹고 살다가 굶어죽었다. 그들이 남긴 채미가(采薇歌)는 지금도 회자된다.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었으니(以暴易暴兮), 그 잘못을 모르는 구나(不知其非矣)~.”

사마천은 ‘백이열전’을 쓰면서 백이·숙제의 죽음을 애도하며 울부짖었다.

“천도(天道)는 늘 착한 이만 돕는다고 했다. 그런데 도척 (盜蹠·춘추시대 때 횡행한 큰 도적) 같은 자는 천수를 누리고 백이 · 숙제는 굶어 죽었다. 근자에도 나쁜 짓만 하면서도 대를 이어 호의호식하는 이들이 있는데, 과연 천도란 게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天道是耶非耶)?”

이 사마천의 한탄이 2000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으니, 기자(記者)도 사마천처럼 감히 외치고 싶다. 과연 “천도시야비야(天道是耶非耶)?”

■ 동이족이 낳은 군자(君子)들

또 한 사람 동이가 낳은 군자가 있었으니 바로 기자(箕子)이다. 공자는 일찍이 “은에는 미자(微子)와 기자, 비간(比干) 등 3인(仁)이 있었다”고 했다. (사기 송미자세가) 3인 모두 은(상) 마지막 왕 주(紂)왕의 친척이다.

기자는 주왕이 상아 젓가락을 사용하기 시작하자 장탄식 했다. 기자의 한탄.

“상아 젓가락을 쓴다면 조금 뒤엔 옥잔을 쓸 거고, 더 조금 뒤엔 수레와 말, 궁실의 사치로움이 도를 넘을 것이다.”

간언이 통하지 않자 기자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미친 척했다. 그러다 주왕에게 들켜 노예가 되었다. 풀려난 뒤에는 슬픔에 잠겨 거문고를 두드리며 세월을 보냈다. 참담했던 시절 거문고를 타며 시름을 달랬던 것은 훗날 공자도 마찬가지였으니, 역시 동이의 핏줄은 통하는 것일까.

주나라 무왕이 은(상)을 멸한 지 2년 뒤 기자를 찾았다. 망한 은나라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인 기자를 포섭하기 위해서 그랬을 것이다. “은나라가 망한 까닭이 무엇입니까.”(무왕)

그러나 기자는 차마 주왕의 죄악을 고하지 못한 채 국가 존망의 도리만을 이야기했다. 머쓱해진 무왕도 화제를 바꾸어 천도(天道)에 대해 물었다. 이 때 기자가 전한 가르침이 그 유명한 ‘홍범구주(洪範九疇·백성을 안정시키는 하늘의 큰 법칙 9가지)’이다.

기자는 “정치란 하늘의 상도(常道)인 오행(五行)·오사(五事)·팔정(八政)·오기(五紀)·황극(皇極)·삼덕(三德)·계의(稽疑)·서징(庶徵)·오복(五福) 등 구주(九疇)에 의해 인식되고 실현된다”(기자·사기 송미자세가 참조)고 설파했다.

“국가에 도움 되지 않은 자에게 작록을 하사하면 왕의 행위를 죄악으로 몰고 갑니다. 사적인 것에 치우치지 마세요. 그래야 성왕의 길이 넓어집니다. 간사한 것으로도 기울지 마세요. 그래야 성왕의 길은 정직해집니다.”(홍범구주 가운데 ‘황극’ 부분)

한수 지도 받은 무왕은 기자를 조선(朝鮮)에 봉했다. 그러나 그를 신하의 신분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기록은 2000여 년 뒤인 지금에도 엄청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대목이다.

■ 비운의 기자(箕子)

망국의 한을 품고 눈물을 삼킨 기자(箕子). 그는 민족적·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되어 시대마다 상반된 평가를 받아가며 역사적인 유랑을 이어가는 딱한 처지에 놓였다.

우선
“무왕이 기자를 조선 땅에 봉했지만, 그를 신하로 대하지는 않았다(武王乃封箕子於朝鮮, 而不臣也)”는 사기 송미자세가의 내용을 보자. 하지만 ‘而不臣也’라는 대목은 “기자가 조선땅에 봉해졌지만 신하 되기를 거부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전자의 해석이라면 무왕이 기자를 조선땅에 봉했지만, 신하로 여기지 않을 만큼 존경했거나 아니면 조선을 주나라의 제후국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뜻도 된다. 후자의 해석이라면 봉했지만, 기자가 주나라 제후국임을 거부하고, 독립된 나라를 세웠다는 얘기가 된다.

이 문제는 나중에 거론하기로 하자. 여기서는 일단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는 것, 즉 기자조선의 존재에 대해 풀어보자.

기자는 무왕을 만난 뒤 과연 어디로 갔을까. 중국학계는 기자가 은나라 유민을 이끌고 한반도 대동강 유역에 둥지를 틀었으며, 그것이 바로 기자조선이라 했다. 이것은 중국학계의 흔들림 없는 정설이었다. 우리 학계는 어땠을까. 구당서 동이전 고려(고구려)조는 “음식을 먹을 때~ 기자(箕子)의 유풍이 남아있다. ‘기자신(箕子神)’을 모신다”는 내용이 보인다.

“제왕운기는 전기조선-후기조선-위만조선기로 인식했는데, 전기조선의 시작은 단군, 후기조선의 시작은 기자로 보았지요. 단군-기자-위만조선이란 인식체계는 제왕운기에서 비롯됐어요.”(이형구 교수)

소중화(小中華) 의식이 강했던 조선에서는 기자는 고조선의 시조로 추앙되기도 했다. 기자가 정치적인 사대(事大)의 대상으로 이용된 것이다. 하지만 일제 침략기에 들자 양상이 180도 바뀐다. 대대적인 ‘고조선사’ 말살작전에 나선 것이다. 시라도리 구라기치(白鳥庫吉)는 1894년 ‘단군고’를 펴내면서 “단군사적은 불교설화에 근거하여 가공스러운 선담(仙譚)을 만든 것”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그뿐이 아니었지. 시라도리는 1910년 ‘기자는 조선의 시조가 아니다’라는 글에서 기자 기록도 조작됐다고 했어요. 이마니시 류(今西龍)는 또 어떻고. 1922년 ‘기자조선전설고’에서 ‘조선에 전해지는 기자전설은 연구의 가치가 조금도 없는 전설’이라 주장했고, 29년 발표한 ‘단군고’에서는 ‘중국과 조선민족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목청을 높였지.”

일제는 왜 ‘모화사상(慕華思想) 타파’의 기치를 올려 고조선의 존재를 부인하고, 우리 민족과 기자의 관련성을 극력 부정했을까.

조선의 자주성 회복을 위해서? 천만의 말씀이다. 기자(記者)는 이 대목에서 2003년에 읽었던 책(‘부끄러운 문화답사기’·다큐인포)의 구절이 떠오른다.

“독립협회와 독립신문, 독립문의 ‘독립’은 실은 중국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뜻한 것일 뿐이다. 독립협회를 장악했던 이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이완용·윤치호(모두 협회 회장을 역임) 등 친일파가 대부분이었다.”

대륙 침략을 앞둔 일제는 내선일체(內鮮一體), 일조동조론(日朝同祖論)을 펴기 위해 조선과 중국을 분리시키기 위해 ‘모화사상 배격’ 운운하며 고조선과 기자를 한꺼번에 뭉갠 것이다. 민족주의 사학은 그 나름대로 민족사의 유구함과 주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독립투쟁의 수단으로 단군을 부각시켰다.

“물론 단재 신채호 선생은 ‘삼조선 분립의 시대’(조선상고사)를 기술하면서 삼조선 중 ‘불朝鮮’의 시조를 기자라 했어요. 기자의 동래설(東來說)을 인정한 거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민족주의 학자들은 중국인이라고 생각한 기자의 존재를 부정했어요.”

■ 터부시된 기자·기자조선

해방 후에는 더욱 얽히고 설켰다.

‘기후(箕侯)’명 방정과 ‘고죽(孤竹)’명 청동 술그릇이 출토된 베이둥 유적.
“뿌리깊은 일제 식민사관의 영향으로 단군과 단군조선은 신화로 변질되었어요. 고조선의 국가적 성격과 사회·경제적인 측면은 연구 대상에서 빠졌고…. 더불어 기자와 기자조선은 완전히 부정되었지. 한반도 대동강까지 중국인(기자)이 와서 나라(기자조선)를 세웠다는 것을 인정할 리 만무했어요.”

결국 식민사관의 짙은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단군은 신화로 변질되고, 기자는 역시 식민사관과 해방 후 정권 이데올로기 홍보차원에서 강조된 지나친 민족 주체성 때문에 허구의 인물로 치부된 것이다.

물론 은(상)나라를 동이의 문화로 봐야 한다고 일찍이 설파한 정인보·홍이섭 선생 같은 이와, 기자동래설을 인정한 단재 선생 같은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웬만한 내공을 갖추지 않고서는 기자와 기자조선을 운위한다는 자체가 터부시되었다. 기존의 학설을 뒤엎을 만한 학문(자료)과 기개를 갖춘 이가 없었다. 그러던 1979년 이형구 교수의 석사논문이 소개된 것이다.

이 논문이 폭풍을 일으킨 이유는 두가지였다. 발해연안에서 쏟아진 은말 주초 청동기들을 토대로 기자조선의 실체를 논증했다는 점이 하나고, 두번째는 기자조선이 그동안 알려진 대동강이 아니라 발해연안 북쪽에 둥지를 틀었다는 점이었다.

<선양 |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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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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